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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Dec 19. 2022

오랜만에 그려보는 새해 계획

(1) 무인양품 리빙 다이닝 테이블 내 방으로 데려오기

새해 목표나 계획 따위를 세우지 않은지가 꽤 오래되었습니다. 아마 스물여섯, 아니면 일곱. 그때부터였겠죠. 어차피 내 마음대로 될 리 없는 삶, 어느 정도 포기해야 편하다고 믿게 된 것은. 분명 나를 위해 조금만 내려놓으려고 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일상에 대한 작은 기대와 희망마저 사라졌어요. 무감각하게 흐르는 시간들. 요즘은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조차 제게 말해요. 감각을 깨울 필요가 있겠다고.


그래서 생각해봤죠. 마비된 감각을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지.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가장 오래 포기했던 제 방이더라고요.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2.9평의 아주 작은 방. 매년 보지 않는 책을 알라딘에 처분하고, 나오는 볼펜과 그렇지 않은 볼펜을 분류해 버리는 작업을 하긴 했지만, 잦은 이사로 여전히 구깃구깃 어지러운 방.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사주신, 그러나 너무 높아서 잘 앉지 않게 되는 책상과 딸린 책장. 칸칸이 채워진 엄마의 종교 도서와 아버지의 오래된 경영서들. 그리고 오래된 방황의 흔적처럼 적재된 스포츠, 경제, 광고/홍보 관련 전공서와 각종 수험서. 나를 채찍질하던 자기 계발서와 마음이 힘든 날에 꺼내 들었던 단편소설집. 잔뜩 욕심을 부려 사두고 읽지 않은 기술과 돈에 대한 책들. 대학 시절 썼던 LG 컴퓨터, 버리지 못하고 들고 나온 첫 직장의 흔적들. 심지어는 초등학교 때 보던 옥편과 새 사전도 여전히 남아있더군요.


우리 가족의 사연 그리고 제 불안의 역사가 뒤죽박죽 엉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는 이 오래된 문제부터 해결하기로 했어요. 이 작은 공간을 어떻게 내 감각에 맞춰 버리고 채울 수 있을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방이 많이 작아서 고민할 여지가 많지는 않았지만요.


2년마다 이사를 다니는 셋방 살이의 설움으로 언젠가 내 집이 생기면 꼭 채워 넣겠다고 오래전부터 다짐했던 무인양품의 리빙 다이닝 테이블과 의자. 낮은 높이와 안락함, 가로세로 적당한 크기와 나무의 따뜻함이 모두 마음에 들었거든요. 가격이 조금 비싸기도 하지만, 왜 그렇게 멀리 미뤄두었나 생각해보면 아마 그냥 집에 관한 모든 문제를 피하고 싶었나 봐요. 그로 인한 가족들과의 마찰도요. 그래서 그저 조금만 더 버티자는 마음으로 사실은 나와 이 방을 방치해둔 건 아닌지 되돌아봅니다.

(1) 무인품 리빙 다이닝 테이블

출처 : 무지코리아 공식 인스타그램 (@mujikr)

그런데 지난 몇년 간의 회사 생활 덕분일까요. 어떤 일을 하기에 완벽한 때도,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일도, 사람의 마음이 같지 않다는 것을 알겠어요. 피한다고 영원히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것도 알아버렸고요. 피한 일에 대한 대가는 복리로 온다는 것도요. (요즘 같은 고금리 시대에 복리라니. 아찔하네요.) 그냥 지금 이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다 보면, 가끔은 어필하고 대체로 묵묵하게 지내다 보면 운이 좋아 성공할지도 모르죠.


아직 우리 집도, 독립도 요원해 보이니 우선 이 방으로 무인양품 리빙 다이닝 테이블 세트를 데리고 들어와 보려고요. 그런데, 4가지 사이즈 테이블 중 가장 작은 걸 골라도 아무래도 이 좁은 방에 두기에는 너무 크더라고요. 이렇게도 넣어보고 저렇게도 상상해봐도 테이블만 들어가도 방이 꽉 찰 것 같은 느낌.   

엄마는 역시나 제 계획을 듣자마자 펄쩍 뜁니다. 요즘 회사에서 자주 본 장면 같기도 하고. "지금 있는 방에 있는 짐은 어떻게 할 것이냐, 지금 급한 게 책상이냐 침 대지. 아니 그리고 무슨 식탁을 방에 둔다는 거냐, 자기 방만 깔끔하게 치우면 다냐." 어휴 걱정이 끝도 없습니다. 그 소리에 쉽게 사그러들어가는 제 표정을 본 아빠는 커피를 홀짝이며 그렇게 한발 물러났다가 또 이야기하고, 그러는 게 영업의 원리라며 아빠다운 표정을 지어 보이시네요.


무감각한 나를 깨우기 위한 새해 첫 프로젝트, 과연 무사히 끝낼 수 있으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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