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반가워. 너도 빠르게 사라지겠지만.
1월 초, 자기소개서를 쓰다가 엉엉엉- 나 못 쓰겠다고... 스스로 자랑하고 포장하고 그런 거 못하겠다고 자기소개서 쓰던 워드 파일을 끄고, 브런치 창을 켰던 순간이 생생합니다. 대학로 던킨도너츠였어요. 어디든 사람이 차고 넘치는 스타벅스를 나와 아무도 없던 던킨도너츠에서 그린티라떼인지 녹차라떼인지를 시켰습니다. 녹차 맛보다 설탕 맛이 강한 설탕라떼를 쭉 들이키고 가끔 문이 열릴 때마다 오들오들 컵을 씹으며 워드 파일을 켰다 껐다 했어요.
결국 자소설 창을 닫고, 브런치 창을 열었습니다. 지난 6월, 유럽의 미술관 이야기를 쓰겠다며 호기롭게 작가 신청을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결국 작가 신청을 했던 첫 번째 글이 마지막 글이 되어있더군요. 20살 때 블로그를 하겠다고 호기롭게 덤비던 게 생각났어요. 카테고리만 종류별로 여러 개 만들어놓고 폴더명 옆 게시글 숫자는 (0)이었던 기억이요. 브런치도 그렇게 될까 봐 만들어져 있는 매거진에 미술 이야기를 하나 더 쓸까 고민했죠. 하지만 지금 어디에라도 나의 찌질함을 표출하지 않으면, 자기소개서를 계속 쓸 수 없을 것 같아서 '아마도 흑역사'라는 폴더를 만들어 미성숙한 저의 자국들을 실컷 찍어댔습니다.
며칠 뒤 읽어보니 어후- 견딜 수 없더군요. 그래도 마음이 조금 홀가분해져서 무사히 자기소개서를 제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 금요일 두 번째 월급을 받았어요. 직장인의 시계는 정말 빠르네요. 처음부터 욕심부리지 말고 천천히 적응하자고 다짐했는데도 2개월 동안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텍스트로만 이해하던 먼저 취업한 언니들의 이야기가 이렇게 빠르게 와 닿을 줄 몰랐습니다.
1. 요일에 따라 달라지는 기분
정말 아무 일도 없는데, 주말이라고 딱히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목요일 저녁부터 기분이 좋습니다. 1달 차일 때는 수요일부터 좋았는데 요즘은 목요일 저녁부터 행복해요. 그리고 일요일 저녁은 괜히 전남친의 카톡 프사를 훔쳐보는 마음이 됩니다. 회사에 다니기 싫은 건 아닌데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주말은 또 올 텐데, 자꾸 뒤돌아보게 되네요.
2. 출퇴근길은 정말 지옥이군요.
성악설을 출퇴근 길에서 확인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순자 님은 지하철도 한 번 안 타보시고 인간의 본성을 어찌 이렇게 잘 아신 걸까요. 저를 포함한 모두가 어찌나 이기적인지 모르겠습니다. 오후 시간에 만나면 다들 배려심 넘치고 좋은 사람일 텐데, 출근 시간에는 영화 속 좀비처럼 자신의 목적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조금이라도 편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신발을 밟고 몸을 밀치면서 어떻게 이리도 당당할 수 있는지. 그런데 몇 번 저 안쪽에 끼여 탔다가 목적지에서 못 내릴 뻔해보니 위치 선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마음이 또 이해가 됩니다. 허허.
3. 자꾸만 꺼내 먹어요~
살다 살다 이렇게 간식을 많이 먹게 될 줄 몰랐어요. 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 자꾸만 탕비실을 서성입니다. 요즘은 망고 젤리랑 멘토스 미니에 빠져있습니다. 이래서 회사 다니면서 10kg씩 찌나 봐요. 벌써부터 배가 조금 더 나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끊을 수 있을까요.
4. 통장은 텅장
직장인이 되면 부자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통장에 돈이 조금씩 쌓이는 줄 알았는데, 제 월급은 다 어디로 가는 건가요? 첫 월급을 타고 가족들 용돈 드리고, 친구들에게 취업 턱 몇 번 내고 나니 마지막 주는 아주 죽는 줄 알았습니다. 심지어 이번 달부터는 국민 연금이니 뭐니 다 떼고 월급이 나오더군요! 북유럽을 부러워하면서도 막상 제 월급에서 세금을 왕창 떼어 가니 기분이 몹시 억울합니다. 끙! 내일 교통비와 통신비가 빠지고 나면 또 한 번 가벼워지겠지요. 이번 달에는 저도 점심 도시락을 싸가야겠어요.
어쩌다 보니 투덜투덜거리기만 했네요. 그렇다고 불행한 건 아니에요. 사실 체력이 달려 헥헥 거리고 있기는 하지만 회사 다니는 게 재미있습니다. 대학생 때 인턴을 하면서 일이 너무 없거나 너무 사소해서 심심한 날도 많았는데, 신입 때부터 재미있는 일을 많이 던져주십니다. 쓰고 싶은 글을 쓰며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가끔 감격스러워요. 막연하게 글을 쓰며 먹고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글 쓰는 직업을 갖게 되다니요! 저를 파는 글을 쓰는 것보다 남의 회사 물건을 팔아주는 글을 쓰는 게 더 재미있기도 하고요.
회사 분위기도 자유로운 편이고, 사람들도 좋아요. 가끔 야근을 하지만 퇴근하고 요가 학원에 갈 수도 있습니다. 읽고 싶은 책도 맘껏 사주시고, 집중력이 떨어지면 커뮤니티라고 불리는 카페형 공간에서 일을 할 수도 있어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몇몇 친구들은 그래도 회사의 좋은 점이 자꾸 보이는 걸 보니 직장인이 덜 된 거라고 하더군요. 좋을 때라고요.
언제까지 좋을 때일지는 모르겠지만 반은 투덜거리는 직장인의 마음으로, 반은 설레는 새내기의 마음으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언제 3개월 수습기간이 끝나나 했는데, 따뜻한 공기가 얼굴에 닿는 걸 보니 4월이 오나 봐요. 시간은 또 빠르게 지나 또 눈 깜빡하면 정규직이 되어있으려나요. 아니 근데 벌써 일요일 저녁 7시네요. 일단은 이번 주말의 마지막 순간을 즐기러 가보겠습니다.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