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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Dec 30. 2021

신용카드를 자르는데 꼬박 3년이 걸렸다

내가 몰라서 못해? 알아도 못하니까 무서운 거지.

아무리 열심히 마음을 먹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 날들이 있다. 간헐적으로나마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몸을 움직여보지만, 잠시 뿐이다. 또다시 제 자리다. 매일 반복되는 악몽. 벌써 몇 년 째인지. 삼 년쯤 되었나. 버티면 지나갈 줄 알았던 순간은 영원히 박제된 늑대의 머리처럼 그 자리에 그대로 먼지가 쌓여간다.  


최근 2년은 정말로 힘들었다. 온 마음을 다했던 회사에 여러 차례 실망했고, 마음을 다쳤다. 영원히 건강할 것 같던 엄마가 아팠고, 당연히 영원할 줄 알았던 남자 친구와의 사랑이 끝났다. 그저 내가 너무 어렸던 건지도 모르겠다. 회사도, 가족도, 사랑도 그 무엇도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그때의 나는 몰랐다. 응당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당연하게 여겼고, 그러지 말아야 할 곳에 맨 심장을 꺼내 비비며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혔다.


몸도 마음도 바닥나버린 터라 주체적으로 더 나은 미래를 선택할 힘이 그다지 남아있지 않았다. '어디라도 여기보다는 낫겠지.'라는 마음으로 직무를 바꿔 (대신 돈을 더 많이 받고) 새로운 환경에 왔다. 숨을 꾹 참고 버티고 있던 내게 제안을 거절할 만큼 남은 숨도 여유도 없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낯선 환경에서 매일매일 나의 무용함과 쓸모없음을 확인해갈뿐이었다. 처음엔 회사도, 직무도, 사람도 익숙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또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제나 그랬듯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여유 없이 급하게 해치운 선택은 잘못될 확률이 크다는 말이 딱 맞나 보다. 물론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했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는 아니었다.


잃어보니 좋아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버렸다. 나는 '투자'라는 도메인도, '콘텐츠 디렉터'라는 직무도 참 좋아하고, 잘하고 싶었다. 이런저런 거지 같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에 진심이었고,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너무너무 좋아해서 2년 반을 버틸 수 있었던 거였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았지만,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애써 나를 설득했다. 내가 선택한 것에 책임을 져보겠다고 했지만 아닌 걸 알았을 때 내 알량한 자존심이 멈춤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를 아끼는 주변 사람들마저 휴식을 권했지만, 나는 꾸역꾸역 또 1년 반을 살아냈다.


물론 남은 게 없는 건 아니지만, 무망한 시간이었다. 회사에서 하고 싶은 것도 회사 밖에서 바라는 것도 없었다. 그저 책가방을 메고 학교를 오가는 심정으로 출근을 했다. 생각할 기력조차 없었다. 그저 주어진 것을 하고, 운동으로 기력을 빼고 소설을 위로 삼아 잠들었다.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빈 공간은 쇼핑과 소개팅, 피부과와 네일숍에서 채웠다.


그동안 마음의 구멍으로 돈이 줄줄 새어나갔다. 절약의 아이콘까지는 아니더라도 꽤나 알뜰한 편이었는데,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는 못 되어도 마흔두 살쯤에는 부자를 꿈꿨는데. 임시로 있는 직장이라는 생각에, 어차피 곧 그만두면 못 받을 월급이라는 생각에 지난 1년 반 동안 번 돈의 꽤 많은 부분이 출처를 알 수 없는 카드값으로 새어나갔다. 책을 읽으며 소비와 지출을 확인해보니 이직하기 전보다 지출이 무려 2배나 늘었다. 소득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소득보다 빠르게 늘어나는 지출이라니. 그나마 정기적인 수입과 공백기 없는 커리어를 위해 버텼는데 돈도 커리어도 남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며, 드디어 신용카드를 잘랐다. 아니 사실 자르지는 못하고, 저 깊숙한 서랍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토스 뱅크에서 몇 달 전 발급받은 오렌지 밀크 색 체크카드에 10만 원을 채웠다. 아직 나를 바꿀 힘이 충분히 생기지는 않았지만, 할 수 있는 것부터 바꿔보기로 한다. 책을 읽기 시작했고, 책을 읽고 내 행동 하나씩을 바꿔보기 시작했고, 그 변화의 다짐을 브런치에 다시 남긴다. 그리고, 돈과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돈기부여 스터디원들에게 공유하고 응원을 받는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본다.


하고 싶은 게 없어져서 돈이나 빨리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더니 최근에 읽게 되는 모든 재테크 책이 말한다.


조급함을 버리고 기본으로 돌아가라고.

나를 반복해서 실패로 이끄는 환경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가 실패하고 계속 도전해보라고. 내가 공부하고, 내가 선택하라고. 결국 나만 남는다고. 약해질 대로 약해진 내게 선택할 용기와 또 실패했을 때 버티고 이겨낼 힘이 충분한지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자신이 없다. 그 힘이 생길 때까지는 계속해서 읽고, 쓰고, 주변의 기운을 받아서 하루씩 살아볼 테다. 언젠가 때가 되면, 이번에는 신중하게 내가 잘할 수 있는 일과 시장이 내게 원하는 것의 교집합이 큰 곳을 찾아 날아가야지. 급하지 않게 천천히. 내 기준에 맞지 않으면 말고의 정신으로.  



✅책 <돈의 속성>을 읽고 나와한 약속

1. 신용카드를 몽땅 깊숙한 곳에 숨겨버리고, 체크카드를 꺼냈다.
2. 현재 자산을 파악하고, 2022년 저축 목표를 세웠다.
: 채무 정산을 포함해서 2023년 8월까지 새로운 1억 만들기
3. 앞으로 금융 자산과 부동산은 쌀 때만 사기로 한다.  
4. 매달 100만 원씩 글로벌 우량주를 줍줍하는데 쓰기로 한다.
5. 대출이 필요할 때는 마이너스 통장을 쓰기로 한다.
6. 생각과 행동을 단정하게 하는 연습을 한다.
7. 자본 소득이 노동 소득을 넘어설 때까지는 자산을 쌓는 데 집중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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