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22%라니요. 이게 다 불안해서 그래요.
2018년 1월 첫 직장에 들어갔다. 그때 내 월급은 작고 소중한 200만 원. 아, 첫 3개월은 인턴 신분이라 최저시급인 158만 원을 받았구나. 아무튼 작고 적은 수입이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아끼고 모았다. 4년 안에 1억을 모은다는 다짐으로. 중간에 회사를 옮기면서, 연봉도 올랐고 덩달아 시발 비용도 늘었지만 어쨌든 늘 소득의 50% 이상은 저축했다.
3년쯤 지났을 때 통장에 8천만 원이 모였다.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뭔가 아쉬웠다. 돈에 관심이 없는 편도 아닌데 그렇게 짠순이 소리를 들어가면서 모았는데 결과는 애매했다. 최선이었나 하면 모르겠지만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 왜인지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주식 시장도 부동산 시장도 난리가 났는데 나만 돈을 모은다는 핑계로 모든 기회를 놓친 것 같았다. 아예 몰랐던 것도 아니고 가끔 해외 주식 몇 주를 사서 소소한 재미도 보고, 투자를 안 하는 게 제일 위험하다는 소리를 조금 과장해서 밥 먹듯이 듣고 살았는데 왜 그렇게 쓸데없이 멍청하고 성실했을까. 자책했다.
심지어 코로나 직후에는 "이건 기회다!" 일이천만 원이라도 투자해볼까 수십 번을 고민했는데 결국 무서워서 못했다. 내가 잘 모른다는 핑계로 투자를 미루며 돈을 모으는 동안 누가는 집을 사서 닿을 수 없는 부자가 되었고, 누군가는 주식으로 두 세 배를 벌었다는 사실에 우울해졌다.
목표했던 1억이 코앞에 왔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조급해졌다. 비단 투자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일이 마음을 다스리는 데서 시작하는 걸 알지만 때로는 아는 것은 아무런 힘이 없다. 불안한 마음 앞에 장사는 없는 것이다. 정신 차려보니 머리와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 고장 난 뚝딱이 인형이 되어있었다.
가서 살 수도 없는 화성시에 떡하니 30평 대 아파트를 샀고, 부동산은 레버리지라는 핑계로 생에 첫 대출을 받아 잘 알지도 못하는 아파텔 분양권에 덜컥 손을 댔다. 이름도 모르는 코인을 사고 심지어 엄마와 친구 돈으로 처음 들어본 주식을 질렀다. 이만 원에도 손을 떠는 나였는데 언제 이렇게 배포가 커진 건지. 어떻게 이렇게 쉽게 기준을 잃고 망가질 수 있는 건지. 불안에 잠식되어 나날이 엉망이 되어가는 줄도 모르고, 순식간에 감당 못할 족쇄를 세 개나 채웠다.
이게 다 1년 안에 벌어진 일이다. 덕분에 퇴사 욕구가 강제 진정(?)되긴 했지만. 내 꼴을 보니 이게 과연 안정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 싶다.
일 년을 그렇게 빡세게 아등바등했는데, 연말정산을 하면서 실수령액을 확인해보니 산술계산으로 해봐도 저축률이 30%를 간신히 넘는다. 투자에 손대지 않고, 그냥 열심히 모으기만 했어도 천오백만 원은 더 모았을 텐데. 1년 전과는 정반대의 입장에 서 있는데 비슷한 감정이 든다. 또 후회하고 억울해하고 있다니. 뭔가 확실히 잘못되긴 했구나.
모든 게 꼬였을 때는 최대한 간결하게 만드는 게 최선일 테지. 우선 잘 모르고 샀던 주식부터 처분하기로 한다. 나름대로 우량주들만 사모은 것 같은데 마이너스 22%라니. 팔 생각을 안 할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내 손으로 손실을 확정하려니 정신이 혼미하다. 기껏 마음을 정하고도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언젠가 다시 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 여기서 더 떨어지면 그때는 또 누구 탓을 할 거야 하는 불안. 나름대로 시장과 우량주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산 줄 알았는데 그냥 도박이었다. 모래보다 취약한 내 마음의 성 위에서 오르고 내리는 차트를 보며 손이 떨린다.
시장이 오늘보다 조금 더 회복하면 조금 덜 슬플 수도 있겠지만 이런 못된 버릇은 초장에 잡아야 한다. 투자를 만만하게 본 대가를 복리로 치르기 전에 나 스스로 읍참마속 하기로 한다. 장 마감 30분 전. 눈을 질끈 감고 가지고 있는 국내 주식을 모두 팔았다.
대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들은 조금 더 일찍 깨우쳤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더 이상 월급이 드라마틱하게 오르기 쉽지 않다. 내가 회사에 소속되어 일할 수 있는 시간도 예상보다 짧아지면 짧아졌지 길어질 리가 없다. (내 예상 = 길어봐야 40살) 모두가 말하는 직장인의 현실이지만, 그동안 나는 피해 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잘하니까, 열심히 하니까, 남들과 다르니까. 이제야 비로소 나의 현실처럼 느껴진다.
내가 앞으로 회사에서 벌 수 있는 돈은 정해져 있고, 10년 동안 아무리 아끼고 저축을 해도 답이 없다는 생각이 현실로 살아서 다가오자 허탈함만 몰려온다. 매년 4,000만 원 씩 모아도 4억이야.. 작고 소중하다. 진짜. 맨날 내일만 바라보고 살아왔는데. 더 나아질 내일이 없다니. 무기력하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버티고 살아온 관성으로 애써 젖 먹던 힘을 내 투자를 해봤건만 역시 급하고 쫄릴 때 하는 선택은 망할 확률이 99.99999%다.
다행히 주변에 좋은 선생님과 친구들과 유튜브와 책이 있다. 긴 방황을 했지만, (사실 아직도 방황중) 스승님에게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저지르라는 가르침을 받고, 돈기부여 스터디 친구들과 피터 린치의 <투자 이야기>를 함께 읽고, 나의 모든 투자 히스토리를 알고 있는 친구와 잠 못 드는 토론 끝에 숨과 마음을 고르고 지키기 어려울지도 모르는 계획을 조심스레 세워본다. 사실 입사하던 해부터 비슷한 계획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새끼 손가락으로 한강 수온 측정하고 세우는 계획은 그냥 아무 것도 모르고 세웠던 계획보다 낫겠지 ^^^^^** 휴. 이제 지키기만 하면 되는데. 회사에서도 전략팀이라 맨날 목표랑 계획만 세우는데, 인생에서는 실천 좀 해보자.
1. 대출 더 이상은 네이버 : 엄마 돈 빨리 갚고 이후 집 살 때까지 대출 금지
2. 현금과 금융 자산 비중 끌어올리기 : 어차피 향후 3년 간 부동산은 건들 수 없으니 나보다는 신뢰도 높은 적금(마음에 안정을 주는 현금 천 만원)과 해외 ETF(목표 수익률 연 7 -10%)에 묻어두기
3. 근로 소득 한번 더 UP : 40살에 명퇴당하더라도 7년 차까지는 가능성이 있다. 기본급 500만 원, 인센티브, 스톡옵션 등 받을 수 있는 방법 찾아보기
4. 회사 밖 추가 소득 만들기 : 일회성 소득 말고 시스템화할 수 있는 소득을 어떻게든 만들어보기
5. 쓸데없이 새는 돈 줄이기 : 이자, 세금, 수수료, 택시비, 배달음식 등 삶을 대충 살아서 쓰는 비용은 줄이기
6. 나와 가까운 사람들의 현재의 행복을 위한 돈은 꼭 쓰기 : 운동, 상담, 이벤트 등
마음이 흔들릴 때면, 고개를 숙여 수익률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