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해서 망할지도 모르지만, 불안 덕분에 계속 해보렵니다
돈에 눈 뜬 '불안한' 사노비의 현실 투자기
1. 본업을 잘하는 게 최고다
(모두가 처음부터 그런 행운을 누리는 것은 아니겠지만) 본업에서 잘하는 것이 제일 좋은 투자이다. 열정과 일을 일치시킬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가라. 빨리 찾을수록 좋다.
2. 함부로 때려치우지 마라
그렇다고 지금 하고 있는 애매한 일을 당장 때려치우라는 건 아니다. 매달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의 가치는 생각보다 크다. 뭔가 찾아서 유의미한 성과를 볼 때까지는 열심히 벌고 아끼고 모으면서 병행해야 한다.
3. 절대 잃지 않기 위해 공부부터 해라
통화량이 늘어나고,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는 시대에 은행에 돈을 넣는 것은 점점 더 가난해지는 길이지만 돈을 잃는 것보단 낫다. 지금 충분한 돈이 있다면, 당장 투자할 수 있는 곳이 있는가? 떠오르는 곳이 없다면, 공부가 덜 된 것이다. 공부부터 해라. 왜 다른 것은 다 공부하면서, 투자는 공부하지 않고 성과를 내려고 하는가.
4. 공부하면서 일단 시작해라
그럼 돈 없다고 투자는 하지 않고 돈 공부만 하냐? (의견이 분분하긴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작게라도 투자 시장에 몸을 담그고 작은 성공을 해보는 것보다 더 큰 동기부여는 없다. 내가 아직 실력이 없다면 나보다 똑똑한 사람에게 의탁하자. 시장(ETF)에 묻고 계속 관심 가지고 공부해라.
5. 기회가 보이면 잡아야지
시장이 늘 개인을 이긴다면, 그냥 패시브 투자만 하나? 그럼 또 재미(?)가 없다. 그리고 옆에서 돈 번다는 이야기가 계속 들리는데 흔들리지 않고 패시브 투자만 한다? 일반 사람 멘탈이라면 흔들리기 마련이다. 장기적으로는 시장이 무조건 이기지만 누구에게나 한두 번의 기회가 온다. 그때 기회가 왔을 때 탈 수 있는 물건이나 개별 종목을 찾기를 포기하지는 말자.
6. 확실함을 기대하지 마라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다. 시장은 계속해서 변한다. 결국 계속해서 공부하고 투자하고 업데이트하고 언젠가 팔고 또 사고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내가 현실 세계에서 이런저런 투자를 시도하면서 느낀 가장 큰 함정은 이 모든 것은 내 컨디션이 정상 이상이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투자의 당위성이나 법칙을 아는 것보다 실행하고 기다리는 것이 몇 배는 더 중요하고, 기다리기 위해서는 여유가 필요하다. 결국 내 멘탈과 건강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 그게 안되면 투자는 정말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웃기는 지점은 멘탈이 건강하면 투자에 대한 간절함이 생기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는 거다. 인간은 나약하고 간사해서 안 힘들고 살만 하면 엉덩이 푹 퍼져서 뒹굴거리기 마련... 넥스트를 계속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은 태생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불안 지수나 욕심 지수가 높은 것 같기도 하다.
나의 경우에는, 원래 기질적으로 불안이 높은 데다 학창 시절에 집이 어려워지면서 돈의 가치에 꽤 빨리 눈을 떴다. 일단 내가 잘 벌고 많이 모아야겠다는 기조가 강했는데, 잘 벌고 열심히 모으는 엄마랑 아빠가 점점 더 가난해지는 것을 보고 뭔가 잘못되어도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자산 없이 그저 현금흐름이 좋은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지금 나쁘지 않은 현금흐름이 있지만, 내 생각보다 나의 실직(?) 퇴직(?) 시기가 더 금방 올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내가 속한 회사와 업계는 너무 젊어서 사십 대 이상의 선배들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연차는 쌓이는데 나의 실력과 회사에서의 영향력은 그에 비례해서 늘어나지 않는 것을 보고 빨리 다른 답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상태가 지속되면 은퇴 전에 버는 돈만으로는 노인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달까. 불안 때문에 망할지도 모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불안 덕분에 시작했다.
작년에는 돈과 투자와 사업과 일에 대해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공부도 많이 해보고. 그동안 모은 돈으로 부동산, 주식, 코인 등 여러 가지 시도도 해볼 수 있었다. 물론 내 흔들리는 동공과 불안한 마음 때문에 수업료가 꽤 들기는 했지만 나름의 투자관(?)이 생겼다. 돈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는 모임도 생겼고. 역시 인생 실전이고 몸으로 깨져봐야......
그런데 이게 또 아는 거랑 하는 건 정말 다른 문제란 말이지. 원래도 겁이 많은데, 회사에서 맨날 리서치 기반으로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이러면 망한다. 안된다. 하다 보니 고나리질만 늘고 자꾸만 실행력이 떨어진다. 퇴근 후 삶에서도 이미 망한 것들을 정리하고, 새롭게 세운 규칙을 지키기 위해 적은 to-do 위에 먼지가 쌓여갔다. 문득 이러다 진짜 망할 것 같아서 각 잡고 몸을 일으켰다.
1. 부채는 부동산 살 때만 쓴다
레버리지는 자본주의에서 돈을 불리는 데 꼭 필요한 요소이지만, 언제까지나 그 힘을 알고 그 힘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 때만 유효하다. 나처럼 불안한 사람이 돈을 빌리면 이자가 두 군데에서 나간다. 첫 번째, 은행 계좌에서. 두 번째, 마음의 계좌에서.
여섯 달 전에 사택 보증금으로 급하게 돈이 필요해서 엄마한테 돈을 빌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엄마한테 돈을 빌릴 것이 아니라 집으로 들어갔어야 했다. (첫 번째 후회) 아무튼 그 뒤로 매달 200만 원씩 엄마에게 돈을 갚고 있었는데, 12월인가 회사에서 중간에 보증금을 조기 상환받게 되었다. 마침 그때 주식시장이 조정을 받고 있어서, 몇 달 정도 그 돈으로 투자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다. (두 번째 후회) 단타를 장투 마음으로 했다가 1월에 시장이 작살나면서 나의 멘탈도 와장창 해버린 것이다.
내 돈이었다면, 갚아야 되는 돈이 아니었다면 여유롭게 기다렸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여유로울 수가 없는 게 보증금으로는 해외 우량주를 투자했는데, 그전에 아무 확신 없이 투자한 국내 주식은... 1년째 파랑 불이었다.) 엄마에게 약속한 3월이 다가오고 있었고 마음의 평화를 되찾고 좀 더 건강하게 한 가지에 몰입하기 위해, 에너지를 더 이상 소진하지 않기로 했다. 하락장 중에 하락장에 코스피에서 22% 손실을 확정하고 생긴 현금으로 엄마에게 남은 빚을 다 갚았다.
물론 아직 분양권 산다고 받은 신용 대출이 꽤 많이 남아있지만, 그건 그래도 눈에 보이는 부동산을 사려고 융통한 거고 이자도 감당 가능한 수준이니까... 좀 덜 불안하다. (그래도 아직은 빚은 하루라도 빨리 갚아버리고 싶은 1인)
2. 주식 잘 모르겠으면, 미국 시장에 묻는다 + 마음의 안정을 위해 현금도 모으기
사회 초년생 때부터 코스피의 움직임을 보고 와 국내 주식은 진짜 뭐냐 알 수가 없다.라고 생각했으면서, 작년에 국내 주식을 왕창 샀다. 그 돈으로 신용대출을 갚을 것을.. 왜 그랬을까 따흐흑... (세 번째 후회, 시계열 상 이게 첫 번째 후회지만...) 내 천만 원... 아무튼 그래도 이번에는 앞에서 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미국 시장도 같이 조정을 받고 있으니 800만 원으로 미국 ETF를 담을까 했는데 꾹 참았다. 매몰비용은 보내줘야지...
그리고 공부가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에, 개별 종목은 제끼고 S&P500을 추종하는 VOO를 담았다. 월급의 일부를 매달 조금씩 모으기로 했다. 원래는 월 200만 원씩 담으려고 했는데, 작년에 투자하면서 현금 보유 비중이 너무 낮아지기도 했고 지금 내 용기가 딱 월 백만 원만큼인 것 같아서 일단 시작하는데 의의를 두고 감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시작했다.
3. 일단 밖으로 나간다
내년 5월 말이면 작년에 산 집의 양도소득세 비과세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2년 간 실거주를 하러 화성으로 떠나야 한다. 서울로 통근 시간이 벌써 걱정이지만, 어쩔 수 없지 뭐. 그리고 일시적 2 주택에 대한 세제 혜택을 활용해 2024년 6월 이후에 바로 서울은 어렵더라도(3 급지라도 서울로 들어가고 싶다...ㅜ_ㅜ) 경기권에서 화성보다 상급지인 성남, 용인, 수원 쪽으로 갈아타기를 꿈꾸고 있다.
문제는 분양권을 가지고 있는 장안동 아파텔(오피스텔)도 2024년에 완공되면서 7차 중도금 7,000만 원 정도를 자납 해야 되고 잔금도 치러야 한다는 것인데...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전매할 수 있어서 큰 걱정은 없지만 아무튼 부동산에 돈이 크게 크게 들어갈 날이 2년?! 밖에 남지 않았다.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도 심해졌을뿐더러 현금도 별로 없기 때문에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2024년에 움직이는 것을 생각하고 미리 공부를 시작했다. 정책이 워낙 빨리 바뀌기 때문에 미리 예습하는 것이 소용이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음에 이사 가고 싶은 동네 구경 + 임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천호동, 장안동, 중개동, 문정동에 가봤는데 당장 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돌아다니는 재미가 나름 쏠쏠하다.
일시적 2 주택 가능한 기간에 유동성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 계약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면서 계속 알아봐야지. 후후. 어차피 앞으로도 강남이나 판교에서 근무하게 될 것 같으니 수원, 용인, 야탑도 괜찮을 것 같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불안은 내가 생존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까지 꽤 오랫동안 나와 함께 할 것 같다. 사실 지금 이 순간에는 '더 이상 내일을 고민하지 않는 때가 오기는 할까? 영원히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시장은 우상향 한다고 믿을 수밖에. 노비도 잘 될 수 있는 길이 어딘가 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는 수밖에. 멜랑꼴리 하고 싶고, 염세적이고 싶은 마음이야 말로 지금 나의 현실에서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물려받을 자산도, 당장의 사업 아이디어도, 새로운 판을 깔 배짱도 없는 불안한 사노비에게 투자는 사치재가 아니라 필수재니까.
그리고 계속해서 열심히 하기 위해서는 머리를 채우는 것만큼이나 몸을 계속해서 움직이고 개똥밭 이승에서 앞구르기 하면서 작은 성과들을 만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매일매일 불안해도 비틀비틀 이불 밖으로 나가야지. 배운 걸 써먹어봐야지. 책상 앞에서 엉덩이만 무거워지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