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이 Dec 11. 2021

연봉 협상, 끝난 게 끝난 게 아니야

책 <레버리지> : 삶의 목표와 우선순위, 그리고 인내 (2)

연봉 협상 다음날, 부사장님이 날 부르셨다.


"네가 지금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것도 알고 주니어로서 빠릿빠릿하게 잘하고 있는 건 맞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네 연봉에 너만큼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아.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시장은 네 생각보다 훨씬 더 냉혹하고 춥다."


"회사와 더 높은 급여를 협상하려면, 시장에서 대체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어야 해. 컨설팅펌, 대기업 전략팀 출신보다 전략을 잘 세우던지, 콘텐츠 기반 업무 했던 것을 살려서 너만 할 수 있는 영역의 전문성을 키우던지."


쿵- 그동안 어찌해야 할지 답을 찾지 못해 외면해왔던 1년 반의 대가를 치르는 순간. 심장이 내려앉았다.

당신이 해야만 하는, 당신에게 자존감과 목적의식을 부여하는, 다른 사람들과 당신을 차별화하는 매달릴 가치가 있는 일을 찾아라.  


대학 생활 내내, 그리고 이전 회사 생활 내내 나와 시장의 교집합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면서도 시장의 수요가 있는 분야는 어디일까. 내가 스트레스를 비교적 덜 받으면서 지속적으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업무는 무엇일까.


그리고 찾았던 나만의 정답은 어려운 지식 x 쉬운 콘텐츠 x 데이터/거래액 기반의 사고 x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이었다.


1. 미술, 투자와 같은 어려운 개념이나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콘텐츠화하는 에듀테인먼트 일이 즐거웠고,


2. 내가 직접 만들거나 기획부터 관여한 콘텐츠가 고객에게 도달하고, 거래액 전환에 기여하는 것을 분석하고 뜯어보고 또 다음 콘텐츠에 반영하는 일에 희열을 느꼈다.


3. 내가 이해가 되지 않거나 소화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직속 상사나 팀원들, 협업 부서 및 제휴사를 먼저 찾아가 이야기 나누어서 명확하게 업무로 만드는 것, 측정 가능하게 만든 일로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데에서 보람을 찾았다.


당신의 가치는 상호 연결된 문제를 해결하여 사회에 기여하는 것으로써 결정된다. 소득창출 기회와 공헌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다. 사회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회피하지 말고 그 문제를 공격하여 해결하라. 그러면 당신의 가치는 높아질 것이다. 부를 원한다면 더 많은 사람에게 기여해라. 행복을 원한다면 더 많은 사람을 도와라. 성장과 발전은 도전을 받아들이고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기특한 초년생이 아닐 수 없다. 시장의 기회가 커지는 곳 중 나의 장점도 발휘할 수 있는 작은 분야를 찾았으니까. 하지만, 그 반짝이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 위에서 길을 잃었다.


어느 순간부터 여기저기 불려 다니거나 급하게 투입되는 일이 많아졌고 직무도 조금씩 바뀌었다. 당연히 처음 생각했던 '나의 전문성’, ‘나의 프로젝트', '내 커리어'라고 할만한 일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직장 생활이 원래 그렇지.', '급한 불 끄고 다시 하면 되지 뭐.', '남들도 다 이렇게 사는 걸...?' 라는 생각에 조금씩 옷깃이 젖어 들어갔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것이 급하게 쏟아지는 날들을 버티기 위해서 하나 둘 핑계가 생겼고, 나는 하고 싶은 것을 하나씩 마음속에서 지워나갔다.


늘 자기 반추를 일삼는 나란 인간에게 스스로가 자신 없는 분야에 대해서 계속해서 목소리 낼만한 배짱과 깡은 없었다.


어느 날부터 무엇이 하고 싶냐는 물음에 자신 있게 대답하기 어려워졌고, 목소리는 점차 작아졌다. 하고 싶은 게 없어지니 시키는 것만 더 열심히 할 뿐.


이제 와서 조금은 억울하다. 회사를 열심히 다니느라 시간과 여유가 없어서 나 스스로 욕망을 거세했는데. 이제는 욕망이 없어 문제가 된다니.

무엇에 대해 지속적으로 생각하는가?


당신이 해야만 하는, 당신에게 자존감과 목적의식을 부여하는, 다른 사람들과 당신을 차별화하는 매달릴 가치가 있는 일을 찾아라.


나? 는 멍하니 모니터 앞에 앉아있다.


면담이 끝나고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마음을 추슬렀다. '아. 나를 너무 오래 방치했구나. 시간이 꽤 많이 흘렀구나. 시장성 있는 직장인이 되려고 그렇게 급한 불을 끄러 다니며 시간을 버텨왔는데, 결국 내가 당장의 필요와 인정에 급급해 나의 가치를 깎아 먹고 있었구나.' 후회가 밀려온다. 사회인이 되기 전에는 그토록 고민하던 문제를 왜 이렇게 쉽게 손에서 놓아버렸나. 자리만 채워도 꼬박꼬박 들어오는 일곱 자리 숫자의 월급이 그렇게 아쉬웠나.


명료함의 부재. 혼란은 지식이나 경험의 부족, 너무 많은 선택권, 우선순위를 정하는 능력 부족에서 비롯된다.


이것저것 하다 보니,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어려운 지식을 습득하는 데 들이는 시간도, 그것을 콘텐츠로 기획하거나 제작하는 노력도, 데이터를 뜯어보며 거래액을 어떻게 올릴 수 있을까 생각하는 고민도, 애매한 것을 명확한 과제로 만들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횟수도 이일 저 일에 치여 먼지가 쌓인 지 오래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니까 밥값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뿐인데, 그 결과는 왜 이렇지?


사실 우리가 일하는 이유는 우리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의 자유를 얻기 위함이다.


외부적인 압박을 받지 않고 하루 종일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모르겠다. 정말, 하나도 모르겠다. 나는 어디까지 온 것이고,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분명 언젠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전속력으로 달렸는데, 결국 뒷걸음질이었다니. 솔직히 전속력도 아니야. 어느 날부터 그냥 책가방 덜렁덜렁 들고 학교 가는 기분으로 회사를 다녔던 것 같기도 하다.


와. 진짜 미쳤다. 나는 앞으로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아니, 어디로 갈 수 있는가. 이제 어디로 가고 싶은가.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심박수가 빨라진다.


레버리지 하는 자동화 시스템이 곧 행복이라는 사고방식은 결국 당신을 허무에 사로잡히게 할 것이다. 이는 극도의 좌절함과 자존감 상실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당신의 최종적인 목표가 무엇이든, 그것을 나중으로 미루지 않고 즐기는 것이다. 또한 당신이 생각하는 끝에 도달했을 때, 상심증후군이나 성취감의 부재를 겪지 않아야 한다.


프로 직장인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여유가 좀 생길 줄 알았는데. 아직도 프로도 아니고, 직장인도 못되었는데, 하고 싶은 것도 없다니!


낙담 수준이 아니다. 허무하다. 막막하다. 열심히 달리는 데 출발선이 자꾸만 뒤로 밀려나는 기분이다. 아니, 아예 없어진 기분. 출발도 못했는데, 도착은 어디에 한단 말인가.


명심하라. 지나간 시간은 결코 되돌릴 수 없다. 드디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됐을 때 당신은 죽음의 문턱에 서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기 위해 커피를 마시고, 회사 선배에게 조언을 구한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들과 스터디를 한다. 그래도 무슨 복인지 주변의 날카롭지만 따뜻하고 애정 어린 말 덕분에 다시 차근차근 나만의 무기를 갈고닦겠다고,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데 회사에도 필요한 일을 찾아보겠다고, 실력을 키우기 위해 오늘 당장부터 충실하겠다고 겨우 마음을 다잡아 본다.

하지만, 역시 인생. 쉽지 않다. 점심을 먹고 책상에 앉으니 사내에 확진자가 나왔으므로 전원 재택으로 전환하라는 공지가 떨어진다. 애써 잡은 마음은 겨울바람에 황망하다. 쉬이 풀어진 앞 섭이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너털너털 집으로 돌아온다.


햇살이 눈부신 빈 방에 앉으니 또 다시 작아진다. 결코 의미 없지 않았지만, 의미 없게 느껴지는 시간들. 후회로 가득한 젊은 나날들. 조급하면 더 멀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마음이 급하다.


시간 관리가 삶의 관리라면, 삶의 관리는 감정 관리다.


공백상태에서 빠져나와 한 방향으로 속력을 내서 움직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열정과 일을 통합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라.


서른을 목전에 둔, 스물아홉의 마지막 달. 여전히 내 앞에는 물음표만 가득하다. 밀려오는 물음표 앞에서 나는 어떤 방향을 정하고 속력을 내야 하나. 어떻게 정신을 똑띠 차리고 나아갈 수 있을까.


도망치고 싶고 미루고 싶다. 그래도, 난 이제 열아홉이 아니라 스물아홉이니까. 서른아홉에도 이럴 수는 없을 테니까. 이번에 이겨내지 못하면 더 불안한 미래가 있을 테니. 마음을 몇차례 가다듬고 심호흡을 반복한다.


우선, 지금 쓰고 있는 보고서부터 시작하자. 그래도 지난 4년 간의 직장 생활 동안 아무것도 남지 않은 건 아닐 거 아니야. 4년이 뭐야. 29.9년을 살았는데. 나만의 무엇이 있긴 하겠지. 도망치지 않을 거다. 지금 내 자리에서 찾아내고야 말겠어. 애써 다짐을, 또 다짐을 해본다.




적극적으로 좋은 사람들이 있는 곳을 찾아갈 것

해야하는 일에서 나와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 갈 것

주어지는 일이 아니라도, 작더라도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아서 실력을 갈고 닦을 것

매거진의 이전글 20대의 마지막 연봉 협상을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