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이 Dec 05. 2021

20대의 마지막 연봉 협상을 했다

책 <레버리지> : 삶의 목표와 우선순위, 그리고 인내 (1)

꽤 기대를 했던 연말 평가와 보상 시즌이 끝났다. 설마 했지만, 역시나 인생은 마음처럼 흐르지 않는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참 많이 아쉬웠다. 과정도, 숫자도, 나의 대응도, 그에 대한 상사의 반응도 처음엔 너무 속이 상했다.


그렇지만, 일주일 즈음 몸과 마음을 앓으며 곱씹다 보니 어느 정도 소화가 된다. 계약서 상의 숫자도, 나의 속상함도, 상사의 마음도 조금씩 이해가 된다. 이런 시행착오 없이 진즉에 깨달았으면 좋았겠지만, 지난 4년 간 회사에서 넘어지고 깨지면서 20대가 가기 전에 직접 느낄 수 있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일어설 기회가 있으니까.


그리고 덕분에 그간의 회사 생활을 돌아보고 한동안 나 몰라라 했던 앞으로의 회사 생활과 커리어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계기가 생겼다.

 

어려운 것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콘텐츠를 만들고 사업을 합니다.


대학생 때부터 개인적으로 운영하던 미술 페이지도, 첫 번째 회사에서 하던 투자 콘텐츠 기획 일도 어려운 것을 대중에게 쉽게 설명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는 데 기여하겠다는 나의 목표에 부합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금전적 보상이 크지 않더라도 열심히 할 수 있었고, 워라밸은 커녕 워워워에 크리스마스 휴가도 자진 반납하며 베이비로서 나름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그렇듯, 직장인에게 '먹고사니즘'의 난이도는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웠다. 어느 날부터 거래액을 내는 일이 그 모든 것에 우선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엔 회사(상사)가 원하는 것을 파악하는 일이 그 모든 것에 우선하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적었던 문장이 마음속에서 흐려지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생길수록 빨간 버스를 타고 판교로 향하는 내 동공의 초점도 흐려졌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면 모든 일은 뿌리를 내릴 때까지 어느 정도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러나 싹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다시 씨를 뿌리고, 비료를 주는 과정을 반복하는 사람이 많다.

 
변화에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 인내하고, 배우고, 가장 중요한 것을 지켜라. 복리효과가 당신을 위해 일하게 해야 한다.


끊임없이 다음 목표를 찾는 사람은 영원히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


그때 책 <레버리지>를 읽었더라면, 나는 이직을 하지 않았을까? 조금 더 버티며, 내가 충분히 준비될 때를 기다렸을까? 첫 번째 고비를 네 힘으로 넘지 못하면 다음 산을 만났을 때 큰 고비를 만날 것이라는 아버지의 말을 들었을까.


모를 일지만, 아무튼 2020년의 나는 얼린 동태 눈깔을 한 채 상사를 따라 회사를 옮겼다.




첫 번째 회사에서 두 번째 회사로 옮기며 많은 것이 바뀌었다. 업계도, 회사도, 동네도, 직무도, 동료도 모든 것이 바뀌었다.


다시 신입 사원이 된 기분. 심지어 이직하며 월급의 앞자리 숫자도 바뀌었는데, 나는 그저 눈치만 보고 앉아 있었다. 내 실력으로 보여줄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이 몰려왔다.


첫 출근하자마자 아 내 자리가 아니구나. 그만둬야 하나 생각했다. 그래도 3년 간의 직장 생활은 예상치도 목하게 여기서 빛(?)을 발했다. 3년 동안 선배들에게 최고의 복지는 돈이라는 구전을 귀에 박히게 들었기 때문일까? 그 전설이 사실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열심히 하다 보면 뭐라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하며 꼬박꼬박 출근을 하고, 밤늦게 퇴근을 했다.


어찌 되었든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그 힘들던 출근도 조금씩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도,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회사에 있는 시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일 빼고 다 괜찮았다. 우선 옆자리 동료와 코드가 잘 맞았다. 점심시간에는 도심을 쏘아다니고, 저녁에는 야근을 하며 산해진미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다. 시니어들이 많은 팀이라 책임질 것도 없었고. 나는 그저 막내로서 재롱과 눈치만 좀 챙기면 될 뿐이었다.


어느 때보다 안락한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잠시 잊고 싶었던 건지 피하고 싶었던 건지. 나의 유용함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는 이십여 년의 강박을 잠시 잊었다. 그저 주어진 일을 하고, 팀원들과 대체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었다.

후순위 업무만 열심히 하면서 자신은 무엇 하나 대충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성실히 일한다는 착각에 빠지지 마라. 그건 단지 놀고먹지 않는 정도의 활동일 뿐, 실상은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 채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자아는 열심히 일하는 이미지를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당신을 속이려고들 것이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면 아무 일도 못한다.


거절하지 못해서 바쁘고, 압도당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기진맥진한 상태에 놓여있다면 그것은 당신 스스로 만들어낸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아라.


더불어 아홉 시간 동안 서류 더미와 씨름한 뒤 열심히 일했다고 자신을 설득하려는 내면의 목소리를 주의해야 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문득문득 내가 찝찝했던 이유는 아마도 내가 나를 속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주어진 모든 것을 열심히 했지만, 대체로 아무 일도 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그걸 알고 있었지만 모르고 싶었다. 스치면서 듣는 상사와 동료의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불안한 마음을 채우며 시간을 눌러 담았을 뿐.


많은 사람들이 처음 비즈니스를 시작했던 이유를 잊어버리고 일의 노예가 된다. 그들은 단지 바쁘다는 이유로 일중독에 빠지고 비전을 잃어버린다.

그게 바로 나다. 늘 바쁘지만, 난 여전히 동태 눈깔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눈빛은 아무도 속일 수 없다. 열심히 하고 나름 부산하게 바빴지만 나는 명확한 목표도 없었고, 그렇기에 달성할 수 있는 그 무엇도 없었다. 냉정하게 돌아보니 연봉을 '협상'할 수 있을 입장이 되지 않았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목적지가 어디인지 모른다면 결코 어딘가에 도달할 수 없다. 비전은 삶의 목적이다. (…) 비전을 찾지 못한 사람은 공허감을 느끼고, 좌절하고 때로는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끌해서 집사고 미쳐버린 20대 직장인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