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중에 꼭 하나만 사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화려하면서 심플하게 해주세요.
저는 무지와 자라를 무척 좋아합니다. 세상 가장 심플한 브랜드와 유행에 빠르게 변하는 두 브랜드를 좋아하다 보니 쇼핑할 때마다 고민입니다. 어디에나 잘 어울리고,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살 것이냐 아니면 올 한 해 정말 예쁘게 입고, 내후년 즈음엔 쳐다도 보지 않을 옷을 살 것이냐.
지난달엔 불어오는 봄기운에 지금 당장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이 이겼습니다. 아직 날이 풀리지 않아 몇 번 입어보지 못했지만 자라에서 넓은 소매에 리본이 달린 블라우스를 한 벌 샀어요. 조금 있으면 통 넓은 바지에 자리를 빼앗긴 스키니진처럼 옷장 속에서 꿉꿉한 냄새를 머금게 될지도 모르죠. 그래도 아직은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런데 또 매일 출근을 하려니 강력한 인상을 남기는 의상보다는 매일 입어도 같은 옷인 게 티가 나지 않는 아이템이 필요하더군요. 물론 남들은 제가 어제 무슨 옷을 입었는지 관심도 없겠지만 괜히 무지는 연속 이틀을 입어도, 자라는 못 입겠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달엔 무지에서 흰색 스니커즈를 샀습니다.
옷이야 이렇게 기분에 따라, 필요에 따라 번갈아 사거나 다음 달의 나를 믿고 두 벌 다 질러버리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저는 옷 취향뿐만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도 양극단을 오가는 사람입니다. 저랑 비슷한 성향을 가지신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이건 쇼핑보다 꽤 골치가 아픈 일입니다.
자주 힘이 넘치는 무기력 사람. 늘 에너지가 넘쳐 보이고, 하고 싶은 건 다 하며 산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사실입니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 고민이고, 한번 마음이 움직이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직접' 해보아야 직성이 풀리니까요. 요즘은 회사생활, 글쓰기, 운영하고 있는 페이스북 페이지, 요가, 그리고 그림에 꽂혀있습니다.
아침에 한 시간 정도 일찍 출근해 페이스북에 올릴 콘텐츠를 준비합니다. 일찍 퇴근하는 날에는 요가 학원에 들려요. 토요일에는 지인의 스튜디오에서 콘텐츠 촬영을 하고, 약속이 없는 일요일에는 글을 쓰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림은 작년에 배우던 그림 선생님이 더 이상 저희 동네에서 수업을 하지 않으셔서 조금 더 회사에 적응하면 배우려고 겨우겨우 참고 있습니다.
꽤 열정적인 사람처럼 보이지만, 한없이 무기력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먹고 자면 소가 된다지만 아침을 차려먹고 점심까지 늘어지게 자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점심을 먹고 또다시 핸드폰을 보다가 스르르 잠이 드는 순간은 얼마나 달콤한 지 그때만큼은 뱃살 출렁이는 소가 되고 싶습니다. 영화를 한 세-네 편씩 몰아보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지만 깼다 잠들었다를 반복하며 아무것도 안 하는 날도 많습니다.
누군가는 의지박약이라고 부르기도 하겠죠. 저 스스로도 열정과 무기력을 오가는 저를 보며 '나는 왜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는 걸까' 다그쳐보지 않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고쳐보려고 고쳐지는 건 아니더군요. 정말로 맘껏 아무것도 안 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 조금 있으면 금방 충전되어 '자주 힘이 넘치는' 상태가 됩니다.
음식을 먹으며 소화가 필요한 것처럼 에너지 넘치게 보낸 시간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씩 몰려오는 죄책감은 지울 수가 없어요. 늘 규칙적이고 꾸준하게 글을 쓰고, 콘텐츠를 쏟아내는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땡-하고 일어나서 초단위까지 맞혀놓고 하루를 보내는 영화 <플랜맨> 속 정재영 씨처럼 살고 싶은 걸까요. 지금도 나름대로 불규칙적이지만 규칙적으로 살고 있는데, 자꾸만 배터리가 닳아서 자주 충전해줘야 하는 오래된 핸드폰을 쓰는 불안한 마음이 듭니다.
사람이 너무 좋은데, 혼자 있고 싶어요. 내 이야기만 하지 않고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 중입니다만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어찌나 많은지요. 어릴 적 할머니 댁에서 수많은 사촌들 중에 제 목소리만 들린다고 혼난 기억도 있어요.
이렇게 평생을 활발하고 수다스러운 아이로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학교에서, 학원에서 사람들에 둘러싸여 보냈지만 가끔 혼자 남겨지는 시간을 참 좋아했습니다. 저희 엄마가 말씀하시길 어릴 적 동생은 엄마가 눈 앞에서 사라지면 집이 떠나가라 울었는데, 저는 엄마가 눈 앞에서 사라지면 '지금부터 내 세상이다!'라고 온 집안을 휘져어놓았다고 합니다.
아직도 박완서 씨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큰길로 다니면 사람들을 만나서 일부러 뒷길로 돌아서 학교에 다녔다고 쓰신 문장을 보았을 때의 안도감을 잊을 수가 없어요. 저도 가끔 바쁜 척을 하고 친구들과 따로 등교하곤 했거든요. 지금이야 혼자 갖는 시간은 비율의 문제지 누구에게나 필요한 시간이란 걸 알지만 친구들과 화장실도 함께 가던 시절이었어요. 세상은 조용한 사람과 활발한 사람 두 부류로 나뉘는 줄 알았고 사람들이 찾지 않으면 서운하지만 가끔은 혼자이고 싶은 내가 이상한 줄로만 알았죠.
요즘도 여전히 친구들에게 바쁜 척을 하고, 더 오래 함께 하고 싶어 하는 남자 친구의 시선을 모르는 척하고 집으로 쏙 들어와 버리기도 합니다. 이런 저를 이해해주는 친구들과 남자 친구에게 늘 감사하지만, 역시나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이 뿐만이 아니에요. 기껏 소통하고 싶어서 SNS를 하면서도 댓글에 대댓글 다는 것은 또 왜 이리 어려운지 몰라요. 새로운 것을 너무 좋아하지만 겁이 많아서인지 귀찮아서인지 지르지도 못하고 갈팡질팡합니다. 한없이 이성적으로 효율 타령을 하다가 어느 날엔 그림 한 점에도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감수성 풍부한 소녀가 됩니다.
꽤 오랫동안 이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양극단을 오가는 저의 모습이 견디기 힘들었어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죠. 이제는 모순된 두 형용사를 같이 적는 것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의 형용사로 묘사될 수 없다는 걸 알겠어요. 누구에게나 여러 가지 모습이 있죠.
하지만 여전히 짧은 시간에 저를 소개하는 날이 되면 눈앞이 깜깜해집니다. 몇 달 전, 입사를 앞두고 대표님과 2차 면접을 보는 날이었어요. 그 흔한 "자기소개"가 어찌나 어렵던지, 내가 일하고 싶은 회사의 대표님께 자주 힘이 넘치는 무기력 사람이라고 어필할 수는 없으니 결국 흔한 이력이나 시간순으로 읊어내려갔죠. 그때 면접장을 나와 아쉬운 마음이 지금 저를 솔직하게 소개해보는 글을 쓰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올해 새로 산 화려한 자라 블라우스와 밋밋한 무지 스니커즈가 참 잘 어울려요. 모순적으로만 느껴졌던 열정과 무기력도, 외향적인 성격과 혼자 있는 시간도, 새로운 것에 대한 설렘과 꼭 붙어 따라오는 불안도 지금 이 글을 쓰다 보니 꽤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내일이면 날도 풀린다고 하니 자라 블라우스에 흰 스니커즈를 신고 양 극단 사이를 사부작사부작 걸어보아야겠어요.
그나저나 다음에 저를 소개할 일이 생기면 뭐라고 해야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