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가 무려 미국에서 성공을 했다

널 보니 나도 이만하면 꽤 잘 살고 있었나 봐 친구야

by 사이

어쩌다 보니 3년 정도 주기로 2주에서 한 달가량 미국에 오고 있다. 첫 번째는 뉴욕, 두 번째는 LA, 세 번째는 샌디에이고. 그리고 그 세 번의 여행 중 일부는 내가 소고기라고 부르는 초등학교 친구와 함께 하고 있다.


소고기로 말할 것 같으면, 초등학교 2학년 때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왔다. 그리고 6학년 때까지 같은 반을 했다. 우리의 어린 날은 막 활발하고 마냥 즐겁지는 않았지만 꽤 우리다웠다. 그저 하굣길에 이름 모를 빨간색 꽃을 따먹었던 기억, 40주년 개교 행사에서 뮤지컬 무대에 섰던 기억, 초등학생 주제에 맨날 학원 숙제를 끼고 열심히 공부하던 기억.


우리는 다른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방과 후 학원에서 자주 만났다. 소고기가 갑자기 유학을 떠나버리기 전까지. 교수님들의 외동딸이었던 소고기는 중3 여름, 싱가포르인가 태국을 거쳐 미국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뉴욕 주에 있는 대학에 갔고, bio-computer science라는 당시에는 아무리 들어도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전공을 정했다.


Summer 2015, New York

나와 그녀가 학부를 졸업할 때 즈음, 나는 학교에서 텍사스 주 댈러스로 보내주는 단기 교환 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2주간의 프로그램이 끝나자마자 뉴욕행 비행기를 탔다. 소고기도 마침 시간이 맞아 우리는 뉴욕 시티에서 재회했다. 그렇게 극적인 만남은 아니었다. 소고기는 방학마다 한국에 와서 열라 과외를 받거나 열라 과외를 하면서 나와한 두 번쯤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가곤 했으니까.


가난하고(?) 패기 넘치는(?) 대학생들. 우리는 비싼 뉴욕은 엄두도 못 내고 저 건너편 뉴저지에 숙소를 잡았다. 뉴욕에서 하루 종일 걷다가 기진맥진해서 그러나 아름다운 맨해튼의 야경에 눈을 떼지 못하고 에어비앤비로 돌아갔다. 브루클린 다리 아래 20불짜리 피자에 감탄했고, 911 Memorial Museum에서 소리 없이 울었다. MOMA에서 한 세월을 보내고, 어느 이름 모를 해변에서 책을 읽고, 기억나지 않는 예술가 지구를 활보했다. 자유로워 보이는 그들의 삶을 그저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때 나는 한국 사회에서 일반적이라고 여겨지는 너무 많은 것들이 불편했다.


Autumn 2018, Los Angeles

뉴욕 여행 뒤 소고기는 석박사 과정을 밟으러 서부로 떠났고, 나는 일 년쯤 남은 학교생활을 마무리하고 10개월짜리 유럽 여행을 떠났다. 그다음 우리가 미국에서 만났을 때, 난 떠돌이 생활을 마치고 막 0년 차 직장인이 되어 있었고, 소고기는 아마 박사 코스를 시작했던 것 같다. 차 없이는 살 수 없다는 LA에서 소고기는 차 대신 차고를 개조한 스튜디오를 얻었다. 이제 내가 오면 자기 집에서 재워줄 수 있게 되었다며 에어 매트리스를 깔아준 덕분에 나는 첫 휴가에 망설임 없이 친구를 보러 갔다. 엄마 집에 여전히 얹혀있던 연봉 2,800만 원짜리 초년생 내 눈에는 내 친구가 엄청난 성공을 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 물가 비싼 캘리포니아에서 기숙사가 아닌 독립이라니! 이제 박사님이라 연구하면서 돈도 벌더니 미국 생활 십 년 만에 룸메이트가 쓰고 버린 콘돔 나올 걱정은 없는 기숙사에서 벗어나 온전한 너만의 공간이 생겼구나. 멋지구나.


2018년 가을 라라 랜드에서의 시간은 좀 더 생생하다. 말리부, 산타모니카, 베니스, 맨해튼, 헤르모사, 리돈도. 태평양 해안을 걸으며 나눴던 대화들. 커리어와 사랑, 그리고 우리 본연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들. 미국 지도의 축적을 모르고, 게티 빌라와 게티 센터를 하루 만에 추파 하겠다는 계획을 세워 "우버 아저씨 달려~"를 시전 했던 에피소드까지. 그리고 소고기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들일 수도 있겠지만은, 그녀를 온몸으로 사랑하는 그녀의 남자 친구를 처음으로 소개받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꺼려하는 나이지만, 여자 친구는 물론 다시는 볼 수 없을지 모르는 그녀의 친구에게까지 세심한 배려를 건네는 그를 보며 왜인지 안심이 되었다. 외동딸에, 어려서부터 타지에 나와 있어 괜히 외롭거나 쓸쓸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처음으로 내 친구가 정말 사랑받고 있구나. 정말 행복해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고. 그놈은 내 친구에게 상처를 주고 떠났다. 떠날 거면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지던가, 그녀의 생활권에서 얼쩡거렸다. 당장 달려가서 온갖 욕설을 다 해주고 싶었지만, 한국에 온 친구의 얼굴을 보니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우리 관계는 꽤 무미건조한 편인데, 나는 처음으로 그녀를 꼭 안았다.


Spring 2022, San Diego

코로나로 막힌 하늘 길 때문도 있었지만, 우리 두 사람의 스타일이 원래 그랬기 때문에 간헐적으로 연락하고, 종종 얼굴을 보며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 사이에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호기심과 재미로 움직이던 나는 이제 완전 현실에 찌들어버린, 그래서 여행이 아니라 요양이 필요한 K직장인이 되어있었다. 언제라도 때려치우고 싶지만, 때려치우고 할 것도 없는 시간과 열패감과 사회적 고립이 더 무섭다. 이렇게 벌어서 뭐하나 싶지만, 이렇게 안 벌면 큰일이 날 것만 같은 진짜 자본주의 노예. 뉴욕에서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인간이 내가 되어 있었다. 어떻게 겨우 시간을 내어 친구에게 도망을 왔다.


그 사이 친구는 박사 과정을 무사히 끝내고, 글로벌 대기업에 무려 '과학자'로 취직을 했다. 박사여서 그런지, 바이오여서 그런지, 미국이라 그런지 친구의 억-소리 두어 번 나는 한국 직장인으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연봉을 받는 친구를 보며 정말 내 친구 열심히 살았구나. 내 딸도 아니지만, 대견하고 기특하고 멋지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질투? 뭐 그런 감정이 들 법도 한 데 정말 그냥 정말 이래도 되나 싶게 너무 기뻤다. 이제 친구는 원룸에서 벗어나 거실과 부엌과 방이 분리된, 건식 화장실을 쓰는 아파트에 산다. 차도 뽑았다. 아직 초보 운전이기는 하지만, 공항까지 픽업도 해주고 뭔가 업그레이드된 더 빵빵한 에어 매트리스도 깔아주고, 추울까 봐 전기담요까지 준비해주었다.


내 삶은 매일 보니까 몰랐는데, 정말 더 이상 망가질 수 없을 만큼 엉망이라고 생각했는데. 친구가 준비해 준 샴페인을 마시며, 달달한 과실주를 마시며, 캘리포니아 맥주를 마시며 우리의 지난 10년을 돌아보니, 내 친구는 물론 나도 그래도 꽤 잘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 뭘 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주어진 일을 해내고. 당장의 생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어딘가에 반쯤 소속되고 반쯤 혼자이며, 사랑을 하고.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두고. 어릴 적 늘 갑갑하게만 느껴졌던 가족을 이해하고, 자주 생각하고, 견고해지고. 가끔 취미로 음악(미술)을 하거나 자연으로 나가고. 나름의 철학이 생기고. 삶의 대부분의 일에 의연한 태도를 갖게 되고. 대단한 소비를 하지 않아도, 같이 시간을 보내고 대화할 수 있는 친구가 있고. 너무 지치고 힘들 때 아무 생각 없이 도망쳐 올 곳이 있고. 이만하면 꽤나 완벽한 삶이 아닌가. 소고기에게 오길 잘했다. 고마워 친구야. 나 돌아가서 또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덕분에.


*소고기가 소고기인 이유 : 우리 초등학교 시절에 best friend를 줄여서 bf로 불렀는데, 그게 어쩌다 beef가 되었다. 근데, 소고기는 내가 자기를 소고기라고 저장한 걸 모른다. 기억도 못한다. 쓰읍.


keyword
이전 06화금문교 하나 보겠다고 샌프란시스코에 왔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