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다시 그리운 그곳
미국에 얼굴도 모르는 가족이 있다
7남매 중 막내인 아빠는 누나가 셋이나 있다. 그중에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막내 누나는 어느 날 고등학생인 아빠에게 영어 과외를 받으라며 선생을 집으로 데려 오더니, 곧 그 남자와 결혼을 해서 홀랑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아빠는 첫날부터 과외 선생님이 마음에 안 들었다는 후문.) 40년도 더 된 이야기다.
나는 스무 살이 넘도록 미국에 계신 막내 고모를 한 번도 뵙지 못했는데, 집안 어른들께 '복희'랑 꼭 닮았다는 말을 스무 번도 넘게 듣고 자랐다. 얼굴도 모르는 고모를 뭐가 그리 닮았냐고 하니, 얼굴이 아니라 엄한 아버지한테도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제 인생이라고 하고 싶은 건 다 해보는 게 똑같다고 했다.
정답처럼 인생을 살아오신 큰 고모, 말수가 적으신 작은 고모와 달리 어른들 보시기에 여자답지 못하고 제 멋대로인 나를 애정 반 질타 반으로 멕이는(?) 말이었다.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해서 인기가 많았다는 막내 고모. 할아버지가 시집갈 자리까지 다 마련해놨는데 어디 듣도 보도 못한 미국 사는 놈을 데려와서 난리가 났단다.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에 갔더니 시댁 사정이 좋지 않은 데다 건강이 나빠지신 고모부를 대신해 미국 말보다 일을 먼저 배우셨다고.
송파구보다 큰 LA 한인타운에서 우리 고모 찾기
2018년에 어렵게 첫 휴가를 내서 LA로 여행을 간다고 하니, 아빠가 가는 김에 고모한테 인사드리고 오라는 것이 아닌가. 'LA 중심부도 아니고 패서디나라는 무려 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윗동네에, 구전으로만 전해 듣던 얼굴도 모르는 고모를 뵙고 오라니. 삼십 년 만에 만나서 무슨 말을 하라고. 그리고 누가 우리 고모인지 어떻게 알아봐.' 걱정이 한 보따리였다.
그런데, 정말 피는 물보다 진한 건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아, 저분이 우리 고모구나.' 바로 알아봤다. 얼굴은 큰고모, 체구는 우리 아빠. 목소리는 익숙한 경상도 사투리. LA도, 고모도 처음인데 집에 온 것 같았다.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미국에서 오래 일을 하셔서 그런가. 아니 원래 어려서부터 이렇게 호탕하셨나. 우아하지만 다소 엄격하고 보수적인 큰 고모와 얼굴만 닮았지 성격은 완전 딴판이었다. "한국은 살기 좀 답답하지 않니?"라는 칠십 넘은 고모의 발언에 충격. 어디 안 좋으신 곳은 없냐는 질문에 "오늘까지는 그럭저럭 좋아.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속 열어보면 어디 고장은 나 있겠지."라며 웃으시는 할머니 고모. 한국 식구들이 들으면 까무러칠 흑인 친구들에 게이 친구들까지.
아니 나한테 이렇게 멋있는 고모가 있었다고? 고모 닮았다는 게 핀잔이 아니라 칭찬이잖아?
내가 미국 사람인가? 왜 여기서 고향의 향기가 나지
고모의 SUV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려 집에 도착했다. 한국말을 못 하는 사촌 언니와 백인 형부, 귀여운 조카들도 이제 막 집에 돌아왔나 보다. "할모니~"를 외치며 아가들이 뛰어든다.
분명 미국인데, 처음 왔는데 왜 이렇게 익숙하지. 일단 미국인 형부도 가지런히 신발 벗고 들어서는 걸 보니 정리정돈을 중시하는 김 씨 집안이 맞다. 한쪽 벽에는 우리 엄마 아빠의 결혼식 사진이 걸려 있고,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80년 대 해외 순방 모습이 있다. 냉장고에는 한국 식재료가 가득하고 뒷마당에는 돈나무, 상추, 고추, 깻잎, 토마토, 그리고 우리 집안에서 자주 먹는 향이 독특한 방아 이파리까지. 어릴 적 주말마다 하남에서 사촌들이랑 텃밭에서 상추 따고 고추 따서 고기 구워 먹고 뛰어놀고는 했는데. 옛날 생각이 난다.
고모와 짧고도 강렬한 하루를 보내고, 식구 별로 바리바리 싸주신 선물을 챙겨 한국에 돌아왔다. 다음을 기약했지만, 상상도 하지 못한 코로나가 유행하며 미국은커녕 한국에 있는 친척들과도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어른들끼리는 그래도 가끔 식사도 하시고 함께 시간을 보내셨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와 인원수 제한으로 "애들은 빠져~!"가 되어버렸다. 오라고 해도 더 이상 애들도 없거니와 각자 회사 다니랴 새로 생긴 가족 꾸리랴 스케줄 맞추기가 쉽지 않게 되었지만. 아무튼 가끔씩 영상 통화는 해도 예전과는 집안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졌다.
사실 처음에는 명절에 조촐하게 네 식구끼리 조용하게 보내는 게 좋았다. 어쨌든 다 같이 모이면 아무래도 음식 하랴 치우랴 피곤하기도 하니까. 대신 우리끼리 가까운 곳에 바람도 쐬러 가고. 편했다. 그런데 이게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지. 그리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하던 내가 다 같이 모이던 시끌벅적한 명절을 (간간이) 그리워하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고.
멋있는 우리 고모 보고 싶다
그러다 어떻게 운이 좋게 시간이 생기고, 자가격리도 없어지면서 갑자기 미국에 오게 되었다. 엄마 아빠도, 나도 예상을 못했던 데다 이번엔 다른 서부 도시로 가게 되어 고모를 찾아뵙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오니. 서핑이고 뭐고. 고모가 보고 싶더라. 그래서 하루 전 날 기차표를 끊어 고모를 기습했다.
해안을 따라 달리는 기차를 타고 LA Union Station에 내리니, 또 저 멀리서 딱 봐도 우리 고모가 서 계신다. 이번엔 두 번째니까 좀 더 빠르고 자신 있게 뛰어가 고모를 안았다.
그 사이 사촌 언니가 콜로라도에 직장을 구하면서 아이들이 떠나 썰렁해 보이는 집안. 적적하지 않으시냐고 했더니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롭고 좋으시다고. 평일엔 가게 나가시고 퇴근해서 드라마 보면서 식사하시고 치우고 하다 보면 일주일이 금방 간다고. 또 일요일마다 근처에 사는 사촌 오빠네 아이들이 놀러 온단다. 지들은 날 생각해서 오고, 난 지들을 생각해서 애들을 봐준다며. "You know what I mean?" 하시는데 ㅋㅋㅋㅋㅋㅋㅋ 변한 게 없으시다.
미국집에서의 하루
분명 갑자기 왔는데 언제 또 다 준비를 하셨는지. 회덮밥에, 시트러스와 라임, 민트를 넣은 디톡스 물. 된장국까지. 고소한 참기름 향에 한국 집에 온 줄 알았다. 우리 아빠가 참기름 마니아인데.
또 오랜만에 왔으니 쇼핑을 가자며, 꼬까옷에 빅토리아 시크릿 야한 빤스에 한국 식구들 선물까지 한 보따리를 싸주신다. 쇼핑 다녀와서 새우 똥 빼서 튀기고 텃밭에서 뜯어온 상추쌈에 불고기를 싸 먹으며 한국 드라마를 보다 보니 어느새 하루가 다 갔다.
따뜻하게 자라며, 따뜻한 핫팩과 생강차까지 준비해주시곤 오늘 스쿼트 백 개 다 못하셨다며 남은 운동을 하시러 쿨하게 떠나시는 고모. 또 얼마나 부지런하신지 아침에는 여섯 시부터 일어나셔서 청양고추 들어간 매콤한 계란 프리타타에 블랙커피까지 내려주신다.
이 나이에 아침에 일어나서 갈 곳 없으면 금방 죽는다며, 이젠 가게 나가는 게 운동이고 커뮤니티고 취미라는 고모의 이른 출근길.
역까지 함께 차를 타고 가며 투자, 비즈니스, 연애, 동거, 정치 등 정말 엄마 아빠랑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주제에 대해 신나서 이야기하다 보니 벌써 다 왔다. (고모보다 내가 더 보수적인 것 같기도 한 건 여기가 민주당의 주 캘리포니아여서 그런가.)
“이제 또 기약 없는 이별이네요."라고 감수성에 빠진 나에게 “너 이렇게 또 왔잖아. 또 봐."라고 안아주시는 우리 고모.
뭐야. 나 왜 한국 가면 되려 향수병 생길 것 같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