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의 해외 여행, 다음을 기약하는 소소한 다짐들

아무리 팍팍해도 일 년에 한 번은 떠나기로 약속해

by 사이

1. 여행에서 제일 중요한 건 날씨. 언제 어디라도 24도와 28도 사이를 찾아 떠나자.


2. 그다음으로 중요한 건 함께 하는 사람. 단, 아무리 사랑한다 하더라도 모든 순간을 함께 하지는 않을 것. 혼자만의 시간이 없다면 떠나온 이유도 없다.


3. 꼭 지켜야 하는 건 아니지만, 딱히 뭘 해야 할지 모른다면 익숙한 곳에서 시작할 것. 첫날은 낯선 도시의 가장 큰 미술관으로 달려가고, 다음날엔 초록이 가득한 공원으로 가서 드러눕는다. 그렇게 하루하루 낯선 도시와 교집합을 늘려가면서 많이 걷고 즉흥적으로 근교로 떠나기도 하고. 이동하는 기차나 비행기에서 투닥투닥 글을 쓰면 행복해진다.


4. 노트북 들고나가는 날은 카메라 두고 가기. 카메라 챙기는 날은 노트북 두고 가기. 가벼운 게 최고다. 한 번에 하나만 해도 괜찮아.


5. 치마, 예쁜 신발, 핸드백 있어봐야 쓸 데가 없다. 운동화 하나, 바지도 두 개, 배낭 하나면 충분하다. 매일 빨래는 조금 귀찮으니까 양말이랑 속옷만 낭낭히 챙기기. 선글라스, 스카프, 요가복, 수영복은 필수. 추위에 약하니까 겉옷은 가서 하나 사자고.


6. 여행 중에 며칠은 좋은 숙소에서 편안하게 쉬기. 침구랑 실내 수영장은 중요하다. 수영장 물이 따땃하면 금상첨화. 스파까지 있으면 완벽하다.


7. 이박삼일은 촉박하고 사 박 오일은 길다. 한 동네에서 최적의 효용은 삼 박 사일에서 나온다.


8. 여전히 모두에게 중요하다는데 내게 제일 중요하지 않은 건 먹거리. 먹는 즐거움이 크지 않은 게 아쉽지만, 대신 다른 걸 할 수 있지. 점점 카페에서 보내는 시간도 줄어든다.


9. 그 동네 요가 체험, 자연에서 트래킹 필수. 한국에서 죽어가던 애가 여기서 걷고 스트레칭하면 갑자기 막 충전이 된다.


10. 책은 한 권이면 충분하다. 대신 선곡? 선정? 이 너무 중요해. 이번 책은 실패다. 좀 더 고심해서 고를 것. 옷 대신 예비로 한 두 권 더 챙겨갈 공간이 생기지는 않았을까.


11. 예전에는 지식을 채우기 위해 팟캐스트를 들으며 돌아다녔는데, 이제는 조금 여유가 생긴 건가. 비우고 싶은 걸까. 음악 선곡이 중요해진다. 이번 테마곡은 장기하의 부럽지가 않아.


12. 환전 많이 하지 말자. 요즘 시대에 누가 캐시 쓰나. 캐시는 불안의 정도와 정비례한다.


13. 기념품은 원래도 잘 안 샀지만, 점점 더 사지 않게 된다. 그렇게 사 모으던 엽서에도 요즘은 눈이 안 가네. 한국에서 못 구하는 게 없으니까. (그래도 가족들은 두고두고 서운해하니 몇 년 동안 복리로 욕먹을 바에 하루 정도 할애하는 걸로) 그래도 그 나라 우표 붙인 엽서 보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zip code 포함해서 영문 주소 알아가기


14. 그래도 아울렛 한 번은 가줘야 된다. 대단한 명품은 아니라도 내 수준에 맞는 그 나라 브랜드 한 두 개만 득템해도 대만족. 어차피 한국에서 쇼핑 자주 하지도 않으니 필요했던 것 중 미뤘던 아이템 데려오기. 이번엔 토리버치 플랫과 바나나 리퍼블릭 트렌치로 기분이 좋아졌다. 벌써 크리스마스 직후에 이탈리아 쇼핑 가고 싶네.


15. 아침에 커피 안 마시면 그날 하루 일정 소화 불가. 카페인 도핑은 회사 밖에서도 필수다.


16. 다음엔 꼭 렌트하는 거야. 이제 진짜 하루 맥스 2만보다.


17. 일정은 여유 있게 짜도, 다 안 봐도 괜찮다. 언제 또 오나 하지만 또 오게 되어있다.


18. 이번 여행에서 찾은 새로운 즐거움. 그 동네 놀이기구 하나 타기. 오션뷰를 바라보는 벨몬트 파크의 쉬지 않는 롤러코스터를 타며 최고로 신났다. 앞으로 가는 도시에서는 그동안 전혀 관심 없었던 놀이공원 한 번씩 가보는 걸로.


19. 경유는 이제 진짜 못하겠숴요… 근데 막상 오십만 원 차이는 여전히 아깝네요.


20. 여행도 익숙해지나 봐요. 적다 보니 한국에서도 다 할 수 있는 일이네. 돌아가서도 새 회사 적응한다고 너무 딱딱해지지 말고 물 복숭아처럼 말캉하게 여행하는 기분으로 일상을 살기.


21.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인스타 스토리도 좋지만. 하루가 끝나고 나름대로 소화한 경험을 글과 사진으로 나누는 방식이 나에겐 여전히 더 잘 맞는 것 같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나와의 교집합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가.


22. 일상도 여행처럼 조금 힘 빼고 목적 없이 살아보기. 잘 안될테지만. 여행자의 마음이라면 현실의 뜨거움을 조금은 쿨 다운할 수 있을지도. 너무 자주도 바라지 않아. 딱 1년에 한번만 떠나기로 약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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