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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왜 이렇게 사진을 찍냐면요

짧은생각 #9 : 내 삶의 조각들, 내 마음의 발자국들

by 지원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비싸고 좋은 카메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진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지만, 휴대폰 카메라로 일상을 사진에 담는 일이 참 재미있다. 아침에 출근해서 커피 한잔을 할 때나, 점심시간에 비싼 음식을 FLEX 했다거나, 퇴근길에 창 밖의 노을을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휴대폰 카메라를 켠다. 주말에 이쁜 카페를 다녀오고 오랜만에 옛 친구들도 만나고 모처럼 연차 내고 바다라도 보고 오면, 정성껏 찍어온 사진들로 그때의 추억을 돌아보곤 한다.

자연스레 내 휴대폰 사진첩은 내 삶을 투영한다.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책 어떤 구절을 공감했는지, 어떤 가수 어떤 노래를 많이 찾아 부르는지. 이 사람과 있으면 이 모습이 나오고, 저 사람과 있으면 저 모습이 나오고. 심지어 나도 가끔 내 사진들을 넘겨보다가 스스로 놀랄 때가 있다. 맞아, 내가 이런 곳도 갔었지 참, 그때 내가 이런 표정이었다니, 하면서.




기억은 휘발성이 매우 강하다. 하긴, 어제 먹은 점심도 기억 안 나는데 한 달 전에 느낀 감정들이 기억날 리가 있나. 하지만 신기하게도 사진을 보면 사라진 줄 알았던 기억들이 다시 떠오른다. 정장을 입고 거울 앞에서 찍은 사진에는 면접 순서를 기다리며 바짝 긴장한 내가 있다. 비행기에서 여권을 들고 찍은 사진에는 모처럼 떠나는 여행에 한껏 들뜬 내가 있다. 지친 하루 끝에 예상 못한 선물을 받아 든 사진에는 애써 눈물을 참으며 누구보다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내가 있다. 다시 그 순간의 감정이 떠오르고, 그렇게 한동안 사진첩을 뒤적거리곤 한다. 내 기억까지 갤럭시가 후보정해주는 건지,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돌아보면 다 소중한 기억이다.

앞으로도 나는 사진을 계속 찍을 생각이다. 인스타에 올리지는 못하더라도, 아무도 보여줄 수 없다 하더라도 내 삶의 조각들을 차곡차곡 쌓아야지. 마음이 설레거나 속상하거나, 우울하거나 뿌듯하거나 마음의 발자국을 남겨야지.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찰칵, 사진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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