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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남자 화장실에 숨어 있던 미토를 찾아내고 나서, 제2공학관에 도착했을 땐 예정 도착 시간보다 20분이 넘어 있었다. 세록으로부터 10통의 전화가 걸려 있었다. 랩 미팅이 9시라고 했으니, 지금 전화를 하는 건 방해일 것이다. 하미는 도착해서 공학관 입구에 있다고, 세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조금 뒤 세록이 나타났다.
“미안해 늦었지.”
세록을 보자마자 하미가 사과했다.
“혹시 저것 때문에 늦은 거야? 쟤를 데리고 나오면 어떻게 해! 지금 장난 쳐?”
미토를 본 세록이 소리쳤다. 이렇게까지 화내는 세록을, 하미는 처음 보았다.
“혼자 두기 그래서 데리고 나왔어. 미토는 잘못 없어. 내가 길을 잃은-”
“말이 되는 소릴해, 네가 어떻게 길을 잃어!”
세록의 고함소리에 보랏빛 머리의 남자가 놀라서 나왔다.
“야, 왜 그래. 신세록 진정해.”
남자는 세록의 앞을 가로막고 서서 말렸다. 가까스로 화를 참은 세록이 하미에게 태블릿을 받고는 그대로 연구실로 돌아갔고, 남자는 도서관 카페로 자신과 미토를 데리고 갔다.
“아, 진짜 다혈질이라니까. 많이 놀라셨죠. 오늘 걔가 랩미팅 때 깨져서 좀 예민해요. 지가 잊어버리고 안 들고 온 건데, 가져다 준 사람한테 괜히 화풀이야.”
자열이라는 이름의 남자는 지나치게 쾌활하게 말했다.
“제 잘못이죠. 미토를 데리고 온 것도, 늦은 것도.”
“쪽문 쪽으로 오셨죠? 거기가 원래 미로예요.”
“아뇨 장례식장 지하 통로로 왔어요.”
“설마 빈소로 가신 거예요?”
“네.”
“미토가 있으면 거기로 오시면 안 되죠!”
자열이 혼내듯 말했다.
“무서워할 거라고 생각 못했어요.”
“그게 아니라, 국화 냄새는 아아이한테 독이에요. 페퍼민트, 시트러스 향도 마찬가지예요. 몰랐어요? 잘못하면, 말 그대로 죽어요.”
“전혀 몰랐어요.”
그제야 하미는 미토가 도망친 이유를 알았다. 그런 게 있으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세록이 그런 것도 안 알려줬어요?시종이 외워야 할 기본 중에 기본인데. 놀랐겠다 미토야, 그치.”
미토의 어깨를 주무르며, 자열이 말했다. 능숙한 동작이었다..
“아아이를 기르시나 봐요.”
“네, 하나 키워요. 고향에서 오셨다는 친구 분이시죠? 이제 미토를 거의 혼자서 기르시겠네요. 주인이란 녀석이 시원찮으니.”
대답하기 애매했다. ‘기른다’는 말을 행위로 해석하면 하미가 기르는 것이 맞았다. ‘기른다’는 말을 소유의 개념으로 본다면, 미토는 세록이 기르고 있었다. 그건 자신도 같았다. 세록은 미토도, 자신도 기르고 있었다.
“어느 정도는요.”
하미의 대답에 자열이 미소지었다.
“그럼 언제 한 번 같이 산책해요. 미토랑 같이.”
“아뇨, 고맙지만 당분간은 저랑 미토가 더 친해져야 할 것 같아요.”
“그럼 저랑 내일 저녁 같이 드실래요? 미토 없이요.”
“그것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번호라도…”
“휴대폰이 없어서요.”
사실이었고, 의도한 바도 같았다. 하미가 지닌 것은 전화 기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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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미가 없었더라면, 태블릿을 두고 온 자신을 탓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미가 왔고, 미토가 따라왔다. 분노의 대상이 있었기에, 세록은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생이 주는 압력은 거세어졌다. 조급함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꼬인 실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 순간을 극복하는 법은 확실한 답을 내는 것이었다. 그게 어려웠다. 연구실 속 삶 외에는 모든 걸 유보시키고 있었다. 최소한의 생활로 삶을 연명하다 죽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이 뒷목을 졸랐다. 이토록 사소하고, 어이없는, 일로 쉽게 무너져 내렸다. 이런 게, 남겨진 삶의 프랙탈이라면, 동전 세탁소의 대기 좌석에 앉아 있다 생을 마감할 수 있다는 것도, 타당한 추측이었다.
연구실 책상에 우두커니 서서 책상을 노려보고 있을 때, 뒤에서 다이어 교수가 말걸었다. 사람들 앞에서 너무 면박을 준 것 같아 미안하다고 말하며 다이어 교수는 계피생강 초콜릿을 주고 갔다. 껍질을 까 한 조각을 떼내어 씹었다. 사람을 우습게 만드는 맛이었다.
자열은 점심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연구실로 돌아왔다. 평소답지 않게 자신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하미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든, 세록은 자열이 자신의 ‘과거’를 만났다는 사실 자체가 불편했다. 하미가 쓸데없는 얘기를 하지 않았길 바랐다. 민감 정보 보호 단계 설정값을 ‘높음’으로 변경해두어야 겠다고 세록은 생각했다. 오전에 치과 진료를 다녀온 나준은 한아름 들고 온 간식 꾸러미를 책상 위에 펼쳐놓았다. 아직도 정신 못 차렸냐고 자열이 핀잔줬고, 나준은 무시했다. 멀티탭을 타고 얽혀 있는 전선처럼 말과 말이 꼬여갔다. 현기증을 느낀 세록이 책상에 머리를 찍었다. 쿵하는 소리에 연구실 사람들이 모두 세록을 보았다. 나준이 호들갑을 떨기 전에 자열이 밖으로 나준을 데리고 나갔다.
머리는 근무 시간이 끝날 때까지, 어지러웠다. 오전의 소동이 아직 해독되지 않은 채로 밖을 나왔다. 걸을 때마다,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발에 몸이 끌려갔다. 장례식장을 통과하는 지름길이 있다고 들었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었다. 이번에도 의대를 빙 둘러서, 집으로 향했다. 거미줄 같은 다세대 주택 구역을 나와, 지하철역을 지나갔고, 시장에 들어섰다.
시장은 고향인 서울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서울식 꽈배기 냄새였다. 가로로 길게 이어진 먹자 골목 가운데, 머리에 하얀 위생 모자를 쓴 노인이 운영하는 꽈배기 가게가 있었다. 퇴근한 사람들이 한 봉지씩 손에 들고 갔다. 세록도 꽈배기를 세 개 담았다. 비닐봉지에 꽈배기를 담을 때, 주인이 하나를 더 넣어줬다. 세록은 서비스로 받은 꽈배기 하나를 손으로 들고 먹으면서 걸었다.
문앞에 도착했을 때 하미가 나와 열어주었다. 세록은 말없이 안으로 들어가 식탁 위에 꽈배기 세 개를 꺼냈다. 하미가 옆에 앉았다. 미토는 바닥에 앉아 둘의 눈치를 보았다.
“먹어.”
“괜찮아, 내가 먹으면 아깝잖아. 미토한테 줘.”
하미가 양보했다.
“쟤한텐 이런 거 먹이면 안 돼.”
“그런 거 나한테도 알려줘. 조심하게.”
“하미, 넌 내 반려인이야. 미토가 아니라.”
세록이 하미에게 주의를 주었다.
“나를 좀 더 신경써줬으면 해.”
진심이었다. 자신조차 자신을 신경쓸 수 없었다. 인공 반려체가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반려인을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위로하는 것이었다. 그 기본적인 기능을 하미는 수행하고 있지 않았다. 오늘의 사건이 그 사실을 입증했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관계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다.
“잘 들어, 하미. 이 집에서 유일하게 인간인 존재가 누구야?”
“너.”
“그래 나야. 네가 미토 보호자처럼 굴 필요 없다고. 쟨 그냥 아아이야.”
하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어.”
“고마워.”
세록이 하미의 품에 머리를 박았다. 하미가 두 팔로 세록을 감싸주었다. 잠시 쉬었다가, 세록은 꽈배기를 먹기 시작했다. 꽈배기 하나가 사라졌고, 또 하나가 사라졌고, 마침내 모두 사라졌다.
접시를 씻는 동안, 하미가 행주를 가져와 바닥에 떨어진 설탕가루를 닦았다. 미토는 방석에 앉아 사료통을 달그락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