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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스모드를 켜자, 공간의 질감을 왜곡시키며 호버는 밤을 그으며 지나갔다.
적진의 심장을 파고들어가는 비행이라기엔 지나치게 고요했다.
데이터 센터를 물리적으로 파괴한다고 해서 Toxs 시스템 자체가 붕괴되는 것은 아니다. 세향이 자신의 몸에 코인 병기를 심은 이유가 그 때문이었으니. 폭격의 무용성을 모를 리 없었다. 그렇다면 세향이 계획한 폭격의 목적은 시각적 충격을 주는 것일 테다. 동조자들을 모으기 위해서라도, 해달의 민족은 지속적으로 조직이 건재함을 과시해야 했다.
다섯 살 때, 인력 시장 매물로 나왔고, 세향이 낙찰 받았다. 해달의 민족의 은신처는 거리 길바닥보다 안전하고, 따뜻했다.하지만 해달의 민족이 하는 일은 위험하고, 차가웠다. 작전을 끝내고 돌아오면, 아는 얼굴이 꼭 한 명은 사라졌다. 세향은 숭고한 죽음이라고 했지만, 아샤는 개죽음이라고 생각했다. 일경은 자신이 죽으면 반드시 도망치라고 당부했다. 자신의 계좌칩을 주며. 결국 일경은 죽었고, 묘찬의 도움을 받아 겨우 새드 타운으로 도망치는 데 성공했었다.
그런데 지금 하이 소사이어티 최상층으로 가고 있다니. 아샤는 류미토가 쳐들어오기 전 끊여놓았던 깨우탕면을 떠올렸다. 에라22가 설치지만 않았어도, 지금쯤 소파베드에 누워 달콤한 악몽을 꾸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게 달콤한 악몽의 일부인게 아닐까. 아샤는 고개를 돌려 밖을 바라보았다.
창 아래에 보이는 야경은 환상적이었다. 비할 데 없이 아름다웠다. 번잡한 네온사인과 검은 안개가 줄무늬처럼 사방을 긁고 지나가는 새드타운과는 완전히 달랐다.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조명 식물들이 거리를 비추고 있었고, 잘 정비된 공원이 사이사이 있었다. 고층 빌딩 옥상에 착륙장을 대신하고 있는 판형 바오밥나무는 예술작품처럼 보였다.
시가지 지나서, 마침내 데이터 센터 구역에 들어섰다.
"둘을 동쪽 문에 내려줄게. 이걸 껴."
묘찬은 강낭콩 같은 인이어 이어폰을 류미토와 아샤에게 각각 하나씩 주었다.
"당신은?"
류미토가 물었다.
"잠금 장치를 해제하려면, 누군가 관제탑을 맡고 있어야 해. 둘 중 데이터센터 보안 접속 해제할 수 있는 사람 없잖아. 들어가면, 맵을 안내할 테니. 집중하고."
묘찬이 헤드셋을 쓰며 말했다.
"해달의 민족 코인 개발자 중 한 명이야, 묘찬의 실력은 믿어도 좋아. 우리가 그냥 내려가면, 1분도 안 돼서 봇에게 죽을 걸."
아샤는 호버 뒤로 가 강화복을 입었다. 지갑이 전면전에 나서는 일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훈련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심호흡을 했다. 류미토도 아샤를 따라 강화복을 입었다.
"이거 설마 외곽부대에서 구한 거야?"
기가 차다는 목소리로 류미토가 물었다.
"어디에든, 빼돌리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지."
묘찬이 씩 웃었다.
"자 이제, 준비해, 출입문을 바이패스할 거야. 3초 카운트다운 후 우측으로 꺾을 때, 뛰어내린 다음 곧바로 직진해서 나오는 문을 열고 들어 가."
"오키도키"
류미토가 완전히 옷을 입은 뒤 대답했다.
잠시 후 출입문을 바이패스했고, 묘찬이 카운트를 셋다.
하나,
둘,
셋,
철컥.
문을 열자마자 아샤와 류미토는 빠르게 달려나갔다. 묘찬이 해제한 덕에, 뒷문을 여는 데에 무리는 없었다.
-잘했어. 서버 컨트롤룸은 지하 3층에 있어. 컨트롤룸 주변 보안은 여기서 침투하기 어려워. 방법은 한 가지야. 류미토가 지하 4층 EPS실로 가 전원을 내려, 그럼 비상 전원이 1분 이내로 작동할 거야. 그 사이에 아샤가 컨트롤룸 안으로 들어가서 서버에 접속해. 류미토는 곧바로 컨트롤룸으로 가서, 아샤를 엄호하고.
▷라져 댓.
류미토가 응답했다.
▶알았어.
아샤도 답했다.
-류미토는 중앙 계단을 이용하고, 아샤는 복도 끝 계단으로 내려가.
둘은 지시에 따라 길을 나눠 목적지로 향했다.
간만에 몸을 푸는, 어깨가 움츠러 들었다 풀어졌다.
'아샤, 조심해'
▶뭘?
-왜 그래 아샤?
'아샤, 나야 일경.'
일경이라는 말에 아샤는 목소리가 이어폰이 아니라, 뒷머리 끝에서 들려온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일경? 환청인가. 설마, 코인이 침식되고 있어서 나타난 증상인 건가.'
'아니, 네가 내 계좌를 빌려썼을 때 지갑에 동기화되었던 일경의 잔류의식이야.'
'뭐?'
'잘 들어. 아샤. 절대로 지갑과 서버를 연결해서는 안 돼. SOC가 들어가면 Toxs 시스템은 전세계 네트워크로 확장될 거야. 그 반동으로 데이터가 역류해, 넌 뇌가 터져서 죽을 거고.'
이 목소리는 분명 일경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일경은 죽었고, 살아있다 해도 자신과 통신할 수 있는 어떤 수단도 없었다.
'거짓말 아냐. 날 죽인 건, 묘찬이야. 묘찬은 Toxs 부사장인 필린의 명령을 받고 SOC에 트로이목마를 심어뒀어. 그걸 발견한 걸 들켜서, 살해당했지.'
'Toxs? 너도 Toxs 스파이잖아?'
'Toxs에 내부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어. 우린 적대 세력이었지. 에라22는 현상 유지를 원했고, 필린은 Toxs에 전세계가 의존하게 만들고 싶어했어. 묘찬이 심은 트로이 목마는 네가 서버에 접속하는 순간 발동돼. SOC가 최고 승인자를 공백으로 변경시킬 때를 노려, 트로이 목마는 공석인 승인자 자리에 필린을 넣고, 연결된 네트워크를 타고 전세계 금융 시스템에 심긴 Toxs핵을 확장시킬 거야. 그렇게 되면 기존 금융 거래는 불가해지고, 오직 Toxs 시스템을 통해서만 거래할 수밖에 없어. Toxs는 이 사태의 책임을 해달의 민족의 테러로 돌릴 것이고, 금융 시스템 복구에 적극적으로 돕는다는 명목으로, Toxs의 영향력을 키우겠지.'
'네 말을 어떻게 믿지?'
'잘 생각해 봐. 여긴 하이 소사이어티 최상층이야. 아무리 스텔스모드라고 해도, 이렇게 쉽게 데이터센터에 잠입하는 게 가능하겠어? 내부 진입은 말할 것도 없지. 이 정도면 거의 반겨주는 거나 다름없어.'
생각해보니, 그랬다. 복도를 돌아나가는 중에도 봇의 머리카락도 만난 적이 없었다. 해킹을 한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깔끔하게 길을 만들어 주는 건 불가능했다. 일부를 막으면, 다른 일부는 막힐 테니.
'그런데, 묘찬이 널 죽였다고? 너네 사랑하는 사이잖아.'
잔류의식은 잠시 침묵했다.
'트로이 목마를 심는 대가로 하이 소사이어티 시민권을 받는다고 했어. 그걸 더 사랑했겠지.'
'어차피 너도 Toxs 스파이인데, 왜 동조하지 .'
'맞아, 하지만 난 에라22의 명령을 따라고, 목적은 해달의 민족, 그 중에 너를 감시하는 거였어.'
'나를?'
'그래, 내가 해달의 민족의 들어오기 전 전임자가 세향이 거대한 지갑을 찾아냈다고 보고했지. 전임자가 작전 중 사망하는 바람에, 내가 감시 인력으로 투입되었어. 그리고 넌 정말 놀라웠지.'
'용량이 커서?'
'아니, 그보다 더 복잡해. 2개의 좌표로 이루어진 일반지갑과 다르게 네 지갑은 다층적이야. 에라22 유산이 SOC를 침식한 것도 코인 데이터가 다른 층에서 중첩되었기 떄문이야. 일반지갑이었다면 서로 간섭할 수 없는 영역을 차지했겠지만, 네 지갑에선 공간으로 존재해 겹치게 된 거야.'
'그럼 무결성이 손상되기 쉬우니까 안 좋은 거 아냐?'
'맞는 말이지만, 다층적 구조는 안전성을 뛰어넘는 가능성을 줘, SOC 개발이 가능했던 것도 그 덕분이고. 넌 특별한 존재야.'
특별한 존재라, 특별하게 착취당했다. 아샤는 우습지도 않았다.
'그래서, SOC를 서버에 토해내지 않고, 혼자서 죽으라고?'
'압축과 개폐를 이용하면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 거야. 어쨌든 지갑은 네 신경계를 따르니까. 하지만 지금 서버에 접속해 Toxs 시스템이 전세계로 확장되면, 필린을 막을 수 없어.'
일경은 간절하게 말했다.
아샤는 일경의 잔류의식을 믿어야 할지, 묘찬을 믿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자신이 죽으면 계좌를 대신 사용하라고 칩을 준 일경, 죽을 각오를 하고 새드타운으로의 탈출을 도와줬던 묘찬. 두 사람이 보여준 친절은, 호의는 모두 거짓이었나. 아샤는 비참했다. 이 순간에도 아샤는 철저히 사용당하고 있었다.
마침내 시스템 서버 컨트롤룸앞에 도착했고, 묘찬이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아샤는 천천히 시스템 콘솔에 다가갔다.
강화복 안에서 케이블을 꺼낸, 아샤는 머뭇거렸다.
-뭐하고 있어? 아샤, 시간이 없어. 빨리 케이블을 연결해!
묘찬이 다급하게 말했다.
▶이게 에라22의 계략이라면, 어떻게 해? Toxs 시스템을 파괴하는 게 아니라, 다른 트리거가 작동되는 거라면? 군용망을 건드린다거나.
-걱정 마, 코인은 Toxs 핵 주변부에 있는 금융망만 터뜨릴 거야.
▶그걸 어떻게 알지? 묘찬.
차갑게 아샤가 추궁했다.
이어폰 너머에선 답이 없었다.
▶묘찬?
-SOC에 파먹히고 싶지 않으면, 당장 접속해. 그럼 살게 해줄게. 여기서 개죽음 당하고 싶진 않잖아?
▷뭐야 당신 무슨 개소리야.
대화를 듣고 있던 류미토가 외쳤다.
-네 역할은 끝났어.
컨트롤룸을 향하던 류미토 앞에 갑자기 수십 대의 봇이 나타났다. 류미토는 총을 갈긴 뒤 부서진 앞 열 봇들의 어깨를 밟고 계단 난간을 뛰어 넘어 아래층으로 떨어졌다. 강화복 덕분에 다치진 않았지만, 오른쪽 어깨가 얼얼하게 울렸다.
빌어먹을 아까까지만 해도 코빼기도 안 보이던 녀석들이 어디서 몰려온 거야. 젠장. 속은 건가.
권총을 쏘는 두 대의 봇을 해치우고 나서야, 컨트롤룸에 도착할 수 있었고, 폐는 빠르게 공기를 갈아치웠다. 잠긴 컨트롤룸으로 들어가기 위해 잠금장치 패널을 총으로 쏘아 부순 다음 배선을 잘라 비벼보았다. 요행은 일어나지 않았다. 더 원시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류미토는 탄창이 바닥날 때까지 문의 경계선의 한 지점을 쏘았다. 벽에 균열이 갔고, 강화복 출력을 최대로 올린 후 문을 옆으로 밀었다. 간신히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정도의 틈이 벌어졌고, 낑낑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콘솔 앞에 가만히 서 있는 아샤가 보였다.
"괜찮아?"
콘솔로 달려간 류미토는 아샤의 상태를 살폈다.
"잠시 다녀올게요. 지켜줘요."
"어딜?"
대답없이 아샤는 의자에 앉은 후 케이블을 팔에 꽂았다.
아샤의 눈이 흐려졌고, 전원이 꺼진 공기인형처럼 의자에 움푹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