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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알고 오신 거예요?”
서규는 반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알고 온 건 아니에요. 비 피하려고 왔어요. 정말 다시 여셨네요.”
“그럼요. 열어야죠. 약속했잖아요.”
“저랑요?”
“아뇨, 저랑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켜 서규가 웃었다.
“이전 가게보다 더 잘 꾸미지 않았어요?”
말을 듣고 보니, 시간의 무늬가 새겨진 의자와 테이블에, 한쪽벽을 가득 채운 LP 진열장, VU 미터가 있는 빈티지 앰프까지, 꽤 고민해서 꾸민 티가 났다.
“신경 많이 쓰셨네요.”
“이번에는 오래 가야 하니까요.”
“여기 수정과 나왔습니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 사이로, 아소가 끼어들면서 말했다.
“예쁜 언니, 혹시 오빠랑 그렇고 그런 사이예요?”
“그게 무슨 실례야, 아소!”
“아뇨. 지원 사업 신청자와 담당 직원의 사이였습니다. 지금은 완벽한 타인이고요.”
“대신 사과드릴게요. 얘가 워낙 철이 없어서.”
“철이 없다니! 진짜로 철없는 건 이런 거야!”
아소가 콱하고, 서규의 팔을 깨물었다.
귀염 상의 드러머는 사람의 형상을 한 치와와였다. 서규가 아소를 데리고 카운터로 갔고, 테이블에 수정과와 함께 혼자 남은 현예는 귀를 열고 음악을 감상했다.
Bud가 사라지고 난 다음에 나온 곡은
‘Nica’s Dream’이었다.
현예는 문득 누군가의 꿈속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주인장의 꿈이든
자신의 꿈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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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예는 침대에 누워 인스타그램을 깔고 ‘Bebop In Pastel’ 재즈 클럽을 검색해 보았다. 팔로워가 251인 계정이 나왔다. 올라와 있는 게시물은 영업 개시를 알리는 글이 전부였다. 포스터 이미지는 조악하기 그지없었다. B급 감성을 노린 게 아니라, 실제로 수준이 B급이라 나온 결과물이었다. 요즘 AI가 얼마나 좋은데, 굳이 손수 시각적 패악을 부릴 필요가 있을까.
팔로워는 줄었다가 늘었다가를 반복하다 점점 더 감소세에 접어들었다. 가보지 않았지만 텅 비어 있을 클럽이 눈에 선했다. 이러다 다시 신용보증재단에 대출 신청하러 올 기세였다.
팔로워 수가 31이 되었을 때, 현예는 ‘Bebop in Pastel’을 다시 찾았다.
방문할 때마다 어김없이 아소는 드럼으로 손님을 맞아주었고, 현예는 언제나 수정과를 시켰다. 달라지는 것은 서규의 선곡이었다. 서규는 같은 곡을 트는 법이 없었다.
“어제 들었던 곡이 똑같이 나오면, 손님들이 지루할까 봐요.”
손님, 현예가 일주일 동안 출근하듯 ‘Bebop in Pastel’에 나오면서 만난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서규 씨. 개업 후 한 달 매출이 어떻게 되는지 여쭤봐도 되나요?”
“현장 실사인가요?”
서규가 장난처럼 받았다.
“조만간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여기 평균 임대료가 200만 원이던데, 월 매출이 그만큼 안 나오지 않아요? 일주일 동안 손님은 저밖에 없잖아요.”
“이번 일주일은 그랬네요. 지난주에는 이 정도로까지 한적하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제법 왔어요.”
벌받는 학생처럼 서서, 서규가 변명했다.
“조금 더 부드러운 음악을 많이 트는 건 어때요? 비밥은 좀 벅찬 음악이잖아요.”
“그렇죠. 지나치게 가슴 벅찬 음악이긴 하죠.”
“듣기에 버겁지 않냐는 뜻이었어요.”
“농담이었어요.”
퍽도 재밌다.
“그렇지만 이런 음악을 틀기 위해서 제 가게를 차린걸요.”
말에서 고집이 느껴졌다.
“그러다 가게 문을 닫으면, 어떤 음악도 틀 수 없잖아요.”
현예가 고집의 머리를 잡았다.
“라이브 오시는 분들도 비밥만 연주하시는 거예요?”
“아, 그게…”
“라이브하러 오는 사람 없어요!”
아소가 어느새 주방에서 나와 불쑥 끼어들었다.
“무대를 꾸리느라, 자금을 다 썼거든요. 연주자들을 초청할 여유가 없어요.”
궁색하게 서규가 둘러댔다.
“그럼, 누구라도 해야죠.”
“누구라도?”
“네, 서규 씨라도.”
“제가요?”
“그거 좋은 생각이에요! 언니. 난 준비됐어. 가자, 조아소 밴드.”
아소가 양팔을 들고 승리 포즈를 취했다.
“안 돼요. 선임님, 제 실력으론 무리예요.”
“무리인지 아닌지, 한 번 시험해 보죠.”
“맨날 재즈가 뭐니, 스윙이 뭐니, 하면서 막상 하려니 엉덩이 빼는 거야?”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연주는 다르다고. 게다가 우리 둘 다 연주하면, 누가 카운터를 봐?”
“제가요.”
현예의 제안에 서규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돌렸다.
“네? 선임님이요?”
“와, 선임님 최고시다!”
“그래도 안 돼, 베이스도 없잖아.”
서규가 현예를 빤히 보며, 동의를 구했다.
“베이스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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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도한이라고 합니다.”
웨이브 머리에 뿔테를 쓴 남자가 인사했다. 별사람이 그려진 티셔츠에 슬랙스 차림의 도한은 여름 소년처럼 보였다.
“반가워요. 아소가 같은 밴드한다면서요. 엄청 잘 치신다고 들었어요.”
서규가 환하게 인사했다.
“아소야, 호들갑이 심하니까, 믿지 마세요. 베이스는 지금 밴드에서도 어쩌다 임시로 치고 있는 거예요.”
도한은 둘러메고 있던 베이스를 내렸다. 일렉 베이스였다.
“임시로 치는데, 잘 치는 게 함정이지! 좋아, 당장 벗겨! 가자 연습. 언니 쌈박한 걸루다가 한 곡 추천해 주세요!”
아소가 스틱을 짝 부딪치며 말했다.
콘트라베이스가 아니다. 현예는 위장 아래에서 ‘재즈는 콘트라베이스지!’라고 외치는 꼰대를 이성으로 잠재웠다.
“Ron Carter의 ‘First Trip’ 어때요?”
무난하면서 듣기 편한, 중간 템포의 정석적인 스윙곡이다. 기본기가 탄탄해야 맛을 제대로 살릴 수 있을 테다. 아소와 도한이 곡을 몰랐기에, 음악을 몇 번 함께 듣고 나서 시작했다. 아소가 카운트하고 나서 곧바로 음이 쏟아졌다. 호쾌한 성격을 닮은 그루비한 드럼 라인이 분위기를 띄웠다. 도한의 베이스도 단단하게 바닥을 받쳐 주었다. 서규의 서정적인 터치가 멜로디를 유려하게 흘려보냈다. 모두 최고의 기량이었다.
그러나 하나도 맞지 않았다.
아소는 너무 빨랐고, 도한은 너무 튀었다. 특히 서규는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리듬을 피해 다니기 바빴다. 줄곧 혼자서만 피아노를 연주해 온 것 같았다. 루바토가 손에 익어 박자를 마음대로 줄였다가 늘려, 다른 연주자도 걸려 넘어지게 했다. 곡을 마쳤을 때, 세 사람은 말해 주지 않아도 깨달은 듯했다. 엉망진창이라는 것을.
이렇게까지 맞지 않으리라고, 상상하지 못한 모양인지, 서규는 충격받은 채로 가만히 건반을 보았다.
“첫 여행이 다 그런 거 아니겠어요.”
현예가 담담하게 말했다. 재즈 오케스트라부에 들어가서 처음 참여했던 연습 세션에서 들었던 말이었다. 선배는 조금 더 다정한 말투였다.
셋은 어지간히 자존심에 상처가 났을 것이다. 지금껏 어디에서도 못 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었을 테니.
“민망하네요.”
서규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활달한 아소도 풀이 살짝 죽어 있었다. 무표정의 도한은 머리를 갸웃거렸다.
“드럼이 반 박을 뒤로 밀면, 베이스랑 맞닿을 것 같아요. 피아노는 그 위를 정박으로 우선 찍으면서 연주해 보는 건 어떨까요. 처음부터 너무 스윙하면, 기우뚱거리기 쉬우니까. 천천히 이렇게.”
현예가 박수로 리듬을 들려줬다. 타, 타, 타, 타. 현예의 머릿속에선 잘게 쪼개진 박자가 메트로놈처럼 울렸다. 이걸 똑같이 들어야 한다.
“먼저 도한 씨가 워킹을 해 봐요.”
현예의 말에 따라, 도한이 워킹을 시작했다.
“지금”
사인을 줬고, 아소가 치고 들어왔다.
“반박을 뒤로, 으따.”
“으따.”
현예의 말을 따라하며, 박자를 뒤로 밀었다. 그러자 베이스가 쫄깃하게 달라붙었다.
“한 바퀴 돌고, 헤드.”
발박자를 세던 서규가 멜로디를 얹었다.
무너지지 말고, 천천히.
박자가 흐트러지려고 할 때, 현예가 박수을 쳤다. 세 사람은 그 소리를 지표 삼아 박자를 재정렬했다. 아직 삐뚤었지만, 나아가고 있었다. 피아노 솔로가 끝나고, 베이스가 넘겨 받았다. 도한은 현란하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고농도의 펑크가 함유된 프레이즈가 연이어 나왔다. 아소의 흥분을 받아 들뜬 감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아소가 언제나처럼의 전력으로 무자비하게 스네어와 라이드, 하이햇을 부서져라 쳤다.
철인 3종 같은 솔로를 끝내고, 다시 헤드로 돌아온 트리오는 주제부를 가로질렀다. 서규가 마지막 노트를 찍었고, 곡이 고삐를 잡아당긴 것처럼 멈추었다. 아슬아슬한 엔딩이었다.
“언니 무슨 재즈 요정이에요?”
아소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아뇨.대학교 때 재즈 오케스트라부를 했어요. 감상 파트로요”
“감상 파트도 뽑아요?”
“가서 악기를 못하면 자동으로 감상 파트로 빠져요.”
사실대로 현예가 말했다.
“얼마나 들었기에, 이렇게 디테일을 다 잡아내요?”
서규가 감탄했다.
“다 못 잡았어요. 미스가 너무 많아서.”
감탄이 뚝 떨어졌다.
“빡세게 하셔야겠어요. 스윙하려면.”
현예가 조교처럼 각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깟 스윙! 3일이면 마스터!”
현예의 도발에 넘어간 아소가 스틱을 흔들며 외쳤다. 저 정도 기백으로는 나와야지, 다음 주에 간신히 공연할 정도의 스윙이 갖춰질 것이다.
“연습에 참고할 곡을 주시면 듣고 연습해 올게요.”
도한이 베이스를 벗으며 말했다.
베이스… 콘트라베이스는 무리겠지. 재즈 꼰대 같은 생각을 접고, 아소에게는 Kenny Clarke의 ‘Drumsticks’을, 도한에게는 Doug Watkins가 베이스로 참여한 Pepper Adams Quintet의 ‘10 To 4 At The 5 Spot’을 추천해 줬다.
연습을 마치고, 아소가 떠나기 전 현예를 안았다.
“언니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양팔에 힘이 꽉 들어갔다.
“우리 오빠 좋아하면 안 돼요. 절대!”
힘껏 경고하고, 아소는 도한의 손을 잡고 도망치듯 달렸다.
이해 안 되는 감성이었다.
“적응 안 되실 거예요. 저도 10년째 적응 못 하고 있어요.”
서규가 현예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선임님 저 좋아하세요?”
“그럴 리가요.”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신경써주세요?”
“‘Orange Was the Color’를 트는 가게는 별로 없으니까요.”
“그거 하나?”
“Elmo Hope의 De-Dah, Frank Foster의 Simone, Emily Remler의 Firefly 등등 포함해서요.”
줄지어 말한 리스트에, 서규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진짜 많이 들으시나 봐요.”
“전혀요.”
현예는 지금을 기준으로 답했다.
선배의 플레이리스트와 너무나도 같았다. 상흔처럼 남은 곡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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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에서 진청색 CDP를 꺼냈다.
흠집이 헤어라인처럼 난 오래된 CDP였다. 뚜껑을 열자 안에 초록 매직으로 ‘Catwood’라고 써진 공시디가 끼워져 있었다. 다시 뚜껑을 닫고, 재생 버튼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이어폰도, 헤드폰도, 스피커도 연결하지 않았기에, 고요만이 재생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