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보증재단 직원이 콘트라베이스를 못 숨김 4화

by 설다람

헤드폰을 끼고, 전자 드럼 세트 앞에 앉았다. 거의 단을 쌓아 만든 방진보드 위에 있는 드럼세트는 요새처럼 보였다. 아소는 성주처럼 앉아, Kenny Clarke를 들었다.

'헐렁해, 스트로크도 거칠고, 아기가 장난치는 것 같은데.'

Kenny Clarke가 왜 비밥 드러밍의 혁명가로 칭송받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소는 카피를 시작했다. 초정밀 스트로크 드럼 머신한테는 껌이지. 자신만만하게 스틱을 두드리던 아소는 얼마 안 가 멈췄다. 맞지 않았다. 박자에 빗나간 박자를 맞춰서 일부러 빗나가게 쳤는데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스틱을 내려놓고, 음원을 다시 재생했다. 0.7 배속으로 낮추고, 모든 스트로크에 집중했다. 왼손 스네어, 오른손 라이드, 클로즈드 하이햇, 어긋나는 획이 하나의 선을 그렸다. 고정된 것이 아니라, 약동하는, 독특한 바이브. 흔들리는 결의 집합이었고, 흐름 그 자체였다.

이 흐름 위에서 연주자들의 솔로가 펼쳐졌다. 기막힌 프레이즈가 튀어 나왔을 때, Kenny Clarke의 Bomb Drop이 떨어졌다. 트럼펫이 매끈하게 뻗어 나가면 길을 터주고, 피아노가 뜀뛰면 더 높이 띄워준다. Call & Response.

Kenny Clarke의 드럼이 혼자가 아니었다. 모든 소리에 응답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아소가 파왔던 드러밍의 세계와는 근본이 달랐다.

'쉽지 않네'

다시 천천히 카피를 시작했다.

음원에서 느껴지는 알찬 그루브를 전혀 만들어지지 않았다.

'진짜 쉽지 않네'

답답함을 압축시키며 아소는 연습을 계속해 나갔다.

아소의 인내심은 연습에 최적화 되어 있었다.

'가보자고, 누가 이기나.'

스틱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고, 방 안의 온도가 높아졌다.


도한은 민텐토 트위치로 ‘엘다의 전설’을 플레이하면서, Pepper Adams Quintet의 ‘10 To 4 At The 5 Spot’도 플레이했다. 저음부 볼륨을 높여둔 탓에, 베이스가 툭 튀어 나온 것처럼 들렸다. 사운드 엔지니어가 도한의 이퀄라이저 세팅을 본다면 경악하며, 오리지널로 되돌릴 것이다..

도복을 입은 엘다가 프라이팬을 들고 불꽃 원숭이를 때리고 있을 때, 트럼펫이 빠지고 피아노 솔로가 들어갔다. 무게감 있는 베이스 음이 날렵하게 움직였다. 일렉 베이스에 익숙한 귀에, 콘트라베이스 현의 떨림은 어쿠스틱의 극치처럼 들렸다.

‘밋밋한데.’

X 버튼을 눌러 바위 거인을 불러낸 도한은 베이스 워킹에 거인을 조작했다. ‘The Long Two/Four’의 베이스는 워킹이 아니라 거의 러닝 수준이었다.

이런 게 재즈인가.

뭔가 허전했다. 바운스가 부족했다. 조금 더 튕겨줘야 할 것 같은데, 아쉬운 느낌이 채워지지 않았다. 도파민 함유량이 적다는 게 옳은 표현일지 모른다.

‘조금만 연습하면 될 듯.’

엘다의 전설을 저장하고 나서, 베이스를 잡았다.

음원을 다시 처음부터 들으면서, 카피를 시작했다.

그러나 라인이 계속 미끄러져 나갔다.

그루브…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따라해 보았지만, 여전히 맞추질 못했다.

맛도 나지 않았다.

반강제로 주악기를 교체 당하고, 잡은 베이스였다. 이제 펑크에 얼추 감을 잡아가고 있는 중에, 재즈라니.

도한은 침대에 누워서 줄을 만지작 거리며 천천히 따라 쳤다.

오래 걸릴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였다.

도한 특허 지속 가능한 연습 자세였다.


합주는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리고 엉망이었다.

연주는 언제나 혼자만의 것이었다.

입시를 준비할 때도, 콩쿠르를 준비할 때도, 서규는 혼자만의 방에 갇혀 홀로 건반을 두드렸다.

난독증 때문에 악보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그 사실을 들키지 않게 서규는 밤새도록 곡을 귀로 외워야 했다. 매일같이 피아노를 가르치는 과외 선생님도 눈치채지 못 하게 서규는 철저히 모두를 속여 왔다.

부모님의 기대는 날이 갈수록 무거워졌고,

건반 위에 손가락도 무거워져갔다.

이산음악콩쿠르는 기원이 실현되는 날이어야 했다.

무대 위로 올라가자, 객석에 가득 찬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었다.

곡은 Gabriel Fauré 즉흥곡 2번 바단조였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니었다.

빠른 손동작을 요구하는 도입부를 지나고 나서 조성이 전환될 때, 순간 머리가 백지가 되었다. 손이 가는 대로 쳐버렸고, 어떻게든 곡을 마무리했다. 결과는 순위권 밖이었다. 피아노 과외 선생님이 다가와 말했다.

밝은 목소리로.

“최고의 즉흥연주였어.”

“즉흥연주요?”

“그래 죽였어. 그런 느낌이지 않았니?”

손이 떨리는 와중에 정신이 점점 깨어 나는 기분을 그렇게 표현할 수 있다면, 죽였었다.

“원래 뛰어난 클래식 작곡자들은 모두 타고난 즉흥연주자들이었어. 모차르트도, 베토벤도 다 즉흥연주자들이었지. 이제는 소실된 문화적 유산이지만. 그래도 아직 즉흥연주가 살아 날뛰는 곳이 있어.”

선생님은 휴대폰을 꺼내어 곡을 재생시켰다.

‘Orange Was the Color of Her Dress, Then Silk Blue’ 빅 밴드 버전이었다.

복잡하게 꼬여 있으면서도 단순명료하게 찌르는 굵은 멜로디.

17분의 대곡이라 끝까지 듣지 못했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간절해졌다.

“어때 죽이지.”

서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악보 같은 건 좀 못 봐도 돼. 넌 고유하니까.”

선생님이 어깨를 두드려줬다.

“나머지 부분 듣는 건 숙제다.”

그 숙제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재즈의 나머지 부분은 무한했다. 하루 종일 들어도 질리지 않았고, 하루종일 연주해도 지겹지 않았다. 어느 수준 이상으로 잘 칠 수 없겠지만, 혼자서 적당히 만족하면서 즐길 수 있을 만큼까지 치는 것은 가능했다.

혼자서 적당히…

트리오는 확실히 무리였다.


혼자 움직이고 있는 진자의 주기를 다른 사람과 맞추지 못했다. 평생 합주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재즈는 본질적으로 함께 연주하는 사람과 호흡을 나누어 가져야 한다. 피아노의 날숨이, 베이스의 들숨이 되고, 베이스의 날숨이 드럼의 들숨으로 바뀌는, 연속적이면서, 동시적인 호흡. 그러나 서규의 숨은 속에서만 맴돌았다.

현예는 서규에게 얼음물을 건네었다.

“고마워요. 선임님. 이제 완전히 주인 같으신데요.”

이마에 땀을 닦으며, 서규가 말했다. 웃고 있었지만, 밝진 않았다. 귀가 좋은 만큼, 답답함도 크겠지.

“임대료 내는 사람이 주인이죠.”

“하, 임대료, 맞아요. 제가 내야죠.”

“그러니 해야죠. 공연.”

“제 실력으론 요원해 보이는데. 가능할까요.”

“가능 안 하면, 또 폐업하실 거예요?”

악의 없이 현예는 가시뭉치를 던졌다.

“아, 필사적으로 연습해야죠.”

“서규 씨는 이미 알고 있어요.”

현예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려 스윙 리듬을 만들었다.

“들을 줄 안다고요. 수백 장은 들었잖아요, 재즈를. 못 들을 리가 없어요.”

“그렇다고는 해도…”

자신 없이 서규가 말했다.

“스윙의 맥박을 듣듯, 드럼과 베이스에 집중해 봐요.”

현예가 왼손으로 워킹 베이스를 추가했다.

눈을 감은 서규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소 씨와 도한 씨는 아직 스윙감이 부족해요. 그러니까, 서규 씨가 더 잘 들어야 해요. 리듬의 간격이 벌어지지 않도록, 그래야 서규 씨가 연주를 잡아 이끌 수 있어요.”

리듬을 듣던 서규가 뭔갈 알아차린 듯 눈을 뜨고, 현예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선임님.”

“네.”

“왜 이렇게 스윙 리듬 잘 타세요?”

현예는 자신도 모르게 흥을 내고 있는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저도 많이 들었으니까요.”


공연일은 다음 주 금요일로 정했다.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더 넘어가면 재정 상태가 경각에 달리기 때문이었다. 가게는 서서히 망하는 게 아니라, 급격하게 망한다,

서규 네가 연습에 전력을 다하는 동안, 현예를 홍보를 고민했다. 무명 재즈 클럽에서 열리는 무명 트리오의 공연을 찾아서 보러 올 사람은 0명이었다. 오픈 기념으로 올라간 총천연색의 개장 포스터보다는, 훨씬 나은 홍보물이 필요했다. 신용보증재단일을 하면서 수많은 소상공인들의 생존전략을 봐왔다. 현예가 내린 결론은 있어 보이려 하는 것보다, 없어 보이는 게 낫다는 것이었다. 어설프게 있어 보이려고 하다가, 쪽 당하는 수가 있다.

혼을 다해, 대충하자.

“이런 게 먹힌다고요?”

반신반의하며, 서규가 물었다.

현예는 2컷으로 움직이는 낙서 고양이 재즈 트리오 짤을 보여줬다. 트리오 위에는 ‘조아소 트리오’와 공연 일시가 적혀 있었다.

“힙한데! 역시 공무원 언니 감각!”

아소가 감탄했다.

“공무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산하 기관 소속 직원이에요.”

현예가 정정했다.

“어쨌든 최고!”

엄지를 치켜들며 아소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귀엽네요.”

도한도 긍정적이었다.

두 사람의 호의적인 반응에 서규는 고개를 저었다.

“단언컨대 이게 개업 포스터보다는 나아요.”

현예는 확신했다. 자명한 사실이었다. 서규 본인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결국 세 사람을 이기지 못한 서규가 직접 공연 포스터를 업로드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홍보하죠.”

현예가 박수를 딱 쳤다. 행동 개시.

아소는 에브리아워에 홍보 글을 올렸다. 우주 최강 드러머의 재즈 트리오 공연이 열린다는 내용이었다. Gif 파일의 고양이 트리오가 딸각딸각거렸다. 작전대로, 아니 지시 받은 대로 도한이 댓글을 달았다.

-나 드러머 누군지 아는데, 대박임, 예쁘고, 공부 잘하고, 여튼 다 잘함. 난 갈 거임.

누가 봐도 알바 같은 문구였다. 물론 아소가 작성해 넘긴 텍스트였다.

-걔 공대 망나니 아님?

-아, 누군지 알 것 같음

-할말하않

‘뒤질래 잡것들아’라고 적던 아소는 간신히 손가락을 거두었다. 키보드 배틀은 시작하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다. 실제로 만나면 머리에 스틱 구멍을 내줄 테다라며 씩씩거리는 아소를 두고, 도한은 착실하게 커뮤니티에 짤을 뿌렸다. 클럽 공식 인스타 계정으로 좋아요, 댓글 원정을 다녔다. 무식한 방법이었지만, 무엇이든 해야 한다.

현예도 직장인 익명앱에 홍보글을 올리는 것으로 가내수공업 홍보에 가담했다.

반응은 없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미국 유학 생활을 통해 무관심에 충분히 면역되어 있었다. 1등과 2등이 마스터 클래스에서 거장들과 협연할 때, 현예는 공연 포스터를 돌리며 겨우 소규모 재즈 바에서 공연 기회를 얻었다.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낡은 바였는데, 우연찮게 학과 수석이 손님으로 들어왔다. 그때 녀석이 보낸 비웃음에 깊게 베인 이후로, 덜 신경 쓰고, 덜 아파하기로 했다. 그 웃음소리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연주로부터 자유로운 지금, 현예는 무엇도 걸리는 게 없었다.

어쩌자고 시작한 일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다.

“선임님 마케팅도 하셨어요?”

인스타 공연 포스터 게시물에 200개에 좋아요가 달린 것을 보고, 서규가 물었다.

“대학교 전공이 그 쪽이라서, 아주 조금 해봤어요. 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10년 전 전략도 통하나 봐요.”

“전환율은 5%로도 안 될 거예요. 10명이나 오면 다행이죠. 그 정도면 만족해요. 단 그 10명은 반드시 사로잡아야 해요.”

할 수 있죠 라는 눈빛을 현예가 보내자, 서규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요. 진짜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까.”

현예는 메마른 진실을 알려줬다.

공연날이 되었고,

네 사람은 메마른 진실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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