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연 시간 10분 전이 되어도,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공격적인 마케팅이었다. 못해도 5명은 올 것이라고 믿었다. 하나 이름 없는 재즈 클럽에서, 이름 없는 밴드의 공연에 사람을 모으는 일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었다. 안이했다. 인형 탈을 쓰고 직접 거리로 나가 전단지라도 돌렸어야 했나. 현예는 행사 기획자로서, 공식적인 죄책감을 느꼈다.
아소의 얼굴에서 농도 짙은 실망감이 비쳤다.
7시 정각이 되었고, 텅 빈 객석을 바라보며 서규가 마이크 앞으로 갔다.
아소와 도한은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Bebop in Pastel에 와주신 여러분 모두 감사합니다. 오늘 라이브에서 피아노를 맡은 주서규입니다. 공연비는 추가로 받지 않으니, 모두 편하게 감상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아무도 없었지만, 서규는 정중히 인사하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아소와 도한도 따라서 제자리로 갔다.
타, 타, 타
스틱이 카운트를 셌고, 공연을 시작했다.
그때 한 남자가 다급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
백 씨는 음악에 문외한이었다. 재즈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소개팅을 주선해 준 친구는 재즈 클럽 운영자였는데, 끈질기게 재즈를 들으라고 닦달했었다. 그러나 언제나 음악 감상 대신 민화 그리기를 선택했다. 그런 백 씨가 ‘Bebop in Pastel’에 오게 된 것은 순전히 길을 잘못 들었기 때문이다. 소개팅 장소로 약속한 곳은 맞은편 칵테일 바 ‘Beep’s Pastis’였다. 독수공방 13년째인 그에게 소개팅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행사였다.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했지만, 정작 약속 장소로 가는 길은 시뮬레이션하지 않았다. 타고난 길치인 백 씨는 지도 앱을 보고도, 엉뚱한 곳에 빠져들었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깨달은 것은 첫 번째 곡이 클라이맥스로 치달을 때였는데, 그는 도저히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재즈 클럽 안에 손님은 자신 한 명뿐이었다. 문제는 오로지 단 한 사람을 위해서, 세 사람이 필사적으로 곡을 연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음악과 거리두기를 실천해 온 인생의 백 씨도, 피아니스트가 혼신의 힘을 다해, 건반을 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시하고 일어날 수 있는, 그런 가벼운 연주가 아니었다.
첫 곡이 끝나고, 백 씨는 소개팅 상대방에게 문자로, 결코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제가 길을 잃어서, 맞은 편 재즈 바에 왔는데, 여기 연주가 상상도 못 할 만큼 대단해요. 괜찮으시다면 여기로 오실래요?’
이 대사가 뺨 맞기 좋은 대사라는 걸, 일반적인 사람들은 자명하게 알 수 있었지만, 백 씨는 너무 오랫동안 혼자였고, 백지장처럼 경험이 없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상대방으로부터 이렇게 답장받았다.
-왜 혼자 좋은 곳에 계세요. 곧 갈 테니, 기다리세요. 대신 오늘 비용은 달아둘게요.
‘아아? 정말요, 물론이죠. 제가 다 계산할게요.’
백 씨의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소개해 준 친구와 비슷하게 재즈 마니아인 모양이었다. CK엔터에 다닌다고 하니, 음악을 싫어하진 않을 거야. 백 씨
잠시 후 단발머리의 여자가 클럽 안으로 들어왔다. 정장으로 차려입은 백 씨와는 다르게 헐렁한 후드에 반바지를 입은 여자는 자연스럽게 테이블로 와 옆에 앉았다.
드럼 솔로가 끝나자, 여자가 크게 환호했다.
“뭐, 해요. 빨리 소리 질러요!”
여자가 옆구리를 찔렀고, 백 씨도 소리를 질렀다.
“예-호!”
불타오르고 있었다.
아소와 도한이 리듬을 꽉 조인 채로, 밀어붙였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탄탄한 드럼과 베이스였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건, 서규였다. 현예는 연습 중에 서규가 보여준 실력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다. 테크닉이 모자란 것도 아니고, 감성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답답했고, 좁은 방을 깨고 나가지 못했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 서규는 완전히 자유로웠다. 머뭇거리던 터치는 거침없는 타격으로 바뀌었고, 단조로운 음 선택은 풍부하게 확장되었다. 오랜 세월 들어온 멜로디들이 비로소 손끝에서 해방되는 것 같았다. 아마추어의 연주라고 들을 수 없는, 진짜 연주였다. 매의 날갯짓 같은 손가락이 펼치는 굵은 프레이즈가 귀에 선명하게 박혔다. 어설프게 흉내 낼 수 없는, 멜로디컬한 즉흥연주였다. 테크닉은 오로지 선율에 봉사해야 한다. 서규는 그 말을 실천하고 있었다. 진짜였다.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이 줄을 튕기고 있었다. 여기서 코드를 치고 나가야 하는데. Em7에서 Am7으로 넘어갈 때, 크로매틱으로 긴장을 줬더라면 피아노가 반응했을 텐데. 현예는 머릿속으로 베이스 라인을 그리고 있었다. 서규가 뛰어 올라갈 수 있을 만큼 강한 지지대를. 칠 수 있을까, 떠오른다고, 칠 수 있었을까. 손끝이 따끔해졌다. 솔로가 끝났을 때, 힘껏 손 뼉쳤다. 통증이 사라지도록. 더 세게.
◑
단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트리오에게는 두 사람으로 충분했다.
단발 머리 여자는 공연이 끝났을 때, 손가락 휘파람을 불었다. 남자는 양팔을 흔들며 흥의 높이를 맞췄다. 서규와 아소, 도한과 모두 포옹을 한 여자는 자주 오겠다고 말하고 명함을 줬다..
‘잘 있어요!”
호쾌한 끝인사와 함께 커플은 자리를 떴다. 첫 공연의 관객으로, 너무도 멋진 사람들이었다.
“어마어마했어요.”
모두를 보며 현예가 말했다.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빈 홀에서 네 사람은 한 잔씩 걸치고 있었다.
“아무렴! 얼마나 연습했는데요!”
아소가 뿌듯하다는 듯 어깨를 폈다.
“다들 고마워요.”
서규가 잔을 차례로 따라주었다.
“오늘 온 두 사람 중 한 명의 마음이라도 사로잡았길.”
손을 모아 서규가 기도했다.
“그랬을 거예요. 뜨거워 보였으니까.”
현예가 안심시켜 주었다.
“그럼, 앞으로도 매주 공연 확정?”
아소가 서규에게 물었다.
서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진짜 조아소 트리오 결성?”
아소가 눈을 반짝였다.
“아니, 신현예 트리오.”
현예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서규를 바라보았다.
“선임님만 허락해 주면”
서규는 맥주잔을 들이켰다.
“당연히 안 되죠. 평범하게 주서규 트리오로 해요.”
“아니, 누가 봐도 내가 리더잖아요?”
아소가 동의를 구했지만, 다들 고개를 돌렸다.
“그냥 ‘Bebop in Pastel 트리오’ 어때요?”
도한이 땅콩을 집으며 제안했다.
“안 돼요. 그 검색어로는 Bud Powell trio가 연주한 ‘Bebop in Pastel’밖에 안 나올걸요.”
SEO 최적화를 고려해 현예가 말했다.
“그럼 그냥 모두를 합치자. ‘조아소, 지도한, 주서규 트리오’”
“지독하게 구려!”
아소가 서규의 대안을 무시했다.
“그럼 그냥 젓가락을 돌려서 정하죠.”
도한이 테이블 위에 젓가락 올렸다.
모두가 동의했고, 도한이 중지로 젓가락 끝을 때렸다. 젓가락이 힘차게 돌아가다, 서서히 멈추었다.
젓가락 끝이 가리키는 자리에는 현예가 있었다.
결국 트리오는 신현예 트리오가 되었다. 신현예 없는 신현예 트리오였다.
◐
“아소 뭔가 이상한데.”
“뭐가 이상해?”
“펑키하지 않아. 록 스피릿도 빠진 것 같고. 재즈 트리오 연습하는 거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밴드 ‘아토믹 태권도’의 리더 그웬이 추궁하듯 물었다.
“우리 밴드의 허리가 비틀거리면 어떻게 해?”
아소도 연주 중에 자신도 모르게 재즈 필인을 넣은 것을 알았다. 서규의 재즈바에서 드럼 연습을 하다가, 이제는 트리오까지 하게 되었다. 스틱을 잡았을 때부터 잘 쳤으니, 무엇이든 해치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윙은 만만하지 않았다. 스윙 연습을 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그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스스로도 느껴졌다. 어중간한 드럼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안 비틀거리면 되지.”
도한이 무신경하게 아소를 옹호했다. 단호박에 그웬은 입을 다물었다.
뒤이은 두 곡 연습에서도, 드럼과 다른 멤버 사이에는 뜬 공간이 생겼다
아소가 미스를 낼 때마다, 키보디스트 리튬이 힐끔힐끔 보았다.
타임 키핑마저 흔들리는 건, 드럼으로서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아니, 타임 키핑을 지키지 못하면 드럼을 쳐서는 안 되었다.
아소 스스로도 만족스럽지 못한 연습이 이어졌고, 자괴감ㅇ
저녁 식사에 아소가 빠지겠다고 했고, 도한도 아소를 따라 나왔다.
“그웬은 뼛속까지 록이라니까.”
감정 없이 도한이 말했다.
“진국이지, 실력도 좋고.”
아소가 무기력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도 진국이야, 실력도 좋고.”
“말이라도, 고마워.”
“’Top of Power’가 내한한대. 갈래?”
도한이 베이스 가방을 고쳐멨다.
‘Top of Power’의 첫 내한이었다. 좀처럼 공연도 하지 않는 팀인데, 그걸 한국에서 한다고? 슬램에 환장한 록 팬들이 마우스가 부서져라 클릭하겠네. Top of Power 드러머 K.D Beck의 불타는 더블킥을 아소는 떠올렸다. 스피드와 정확도에 집중된 드럼 사운드. 아소가 지향하고자 했던 드러밍의 정수였다. 록의 정통성을 지키면서도, 바운스가 살아있는 감각적인 스네어 운용을 따라하기 위해 수백 번도 더 영상을 보며 연습했다. 상황에 여유가 있었더라면 망설이지 않고 간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여유가 부족했다.
첫 번째 돈이 없었고, 두 번째 자신이 없었다. 공연장에서 정신을 잃을 정도로 즐길 자신이. 제대로 즐길 수 없다면, 가지 않는 것이 옳았다. 그게 록에 대한 예의니까
“아니, 돈 없어.”
아소는 첫 번째 사유만 도한에게 털어놓았다.
확실한 사유였기에, 도한은 더 묻지 않았다.
방진보드 위 드럼에 앉아, Kenny Clare의 라이브 영상을 봤다. 트래디셔널 그립이었다. 아소는 영상 속 Kenny Clare를 따라 왼쪽 손목을 돌려 손바닥이 위를 향하게 한 뒤, 엄지와 검지 사이에 스틱을 끼웠다. 그러고는 천천히 스트로크를 시작했다.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스틱이 어정쩡하게 흔들리며 손안에서 어색하게 굴렸다. 엄지와 검지가 뻣뻣해졌고, 스틱의 무게 중심이 자꾸만 손에서 벗어 나려 했다.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간 탓에 리듬이 끊겼다. 균형도 어긋났다. 대체 이 자세로 어떻게 롤을 하는 거지. 아소의 왼손은 어서 매치드 그립으로 바꾸라고 투덜거렸다.
‘안 돼.’
스윙 특유의 섬세한 컨트롤을 위해선, 트래디셔널 그립이 필수적이었다.
드럼에서 왼손은 ‘거들 뿐’이 아니라 ‘전력’을 다해야 한다.
다시 한 스트로크, 한 스트로크를 스네어 위에 쳤다. 아주 느린 속도로. 메트로놈이 드럼 소리 사이의 간격을 쟀고, 간격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젓가락질하는 게 쉽겠냐.
조급해 하지 말고, 스틱 끝에만 집중하자. 할 수 있다. 난 천재니까.
아소는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었다. 자신이 천재라는 사실을
결국 해내 리라를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