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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띤 라이브가 끝나고, 손님들이 서규와 아소, 도한에게 다가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아소는 자연스럽게 자세를 취했고, 도한은 무덤덤하게 브이를 했다. 서규는 어색해 죽을 것 같은 웃음을 지었다.
사람은 갈수록 많아졌고 평일 방문도 꽤나 늘었다. 현예의 손도 덩달아 바빠졌다. 그러나 현예는 겸직이 금지라며, 무급으로 일하고 있었다. 한가할 때는 책을 읽으며 음악을 틀다, 트리오 연습을 봐주는 정도라 괜찮았지만, 지금은 진짜 노동이었다. 제대로 사람을 뽑아 쓰는 게 맞았다.
“설거지 많이 힘드시죠. 선임님.”
서규가 접시를 닦아 상부장에 넣으며 말했다.
“안 힘든 게 어딨나요.”
현예는 수세미로 그릇들을 꼼꼼히 문질렀다.
“선임님 대신 일한 사람을 뽑으려고요.”
“그럴 여유 있어요? 오후 여섯 시에서 열한 시까지 일한다고 쳤을 때, 최저임금 고려하면 최소 140만 원을 줘야 할 텐데. 매출이 늘긴 늘었지만, 도한이랑 아소 개런티 주고, 임대료랑 운영비 빼면 거의 안 남잖아요. 사실상 서규 씨도 무급이고.”
조곤조곤 현예는 사실을 전했다.
“더 흥행시켜야죠. 세 사람 다, 전진하고 있어요. 음악적으로.”
무표정이었지만, 한 발짝이라도 후퇴하면 혼낼 것 같은 오라가 있었다.
“선임님은, 뭐랄까…”
서규가 현예를 빤히 바라보았다.
“재즈의 신 같아요. 조금 엄한…”
“그럼 신으로서 말할게요. 스케일 연습이 더 필요해요. 지난 솔로에서 같은 프레이즈가 두 번 나왔어요. 전체적으로 사용하는 음역대가 좁아서, 다양한 조합이 나오지 못하고 있어요. 화성적으로 갇혀 있는 느낌도 들고요. 모드랑, 얼터드를 깊게 훈련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그냥 감상자 맞으세요. 선임님?”
재즈는 철저히 연주자를 위한 음악이다. 그런데 그냥 감상만 하는 사람이 연주를 이 정도까지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이례적이었다. 아니, 서규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법정물 덕후가 변호사가 될 순 없지만, 어떻게 송사가 진행되는지에는 빠삭할 수 있죠.”
서규는 수긍했다. 현예 성격을 미루어 봤을 때, 고집스럽게 파고들고도 남았을 것이다.
업라이트에 앉아 스케일 연습을 시작했다. C 메이저 스케일부터 양손으로 두 옥타브를 오르내리며 부드럽게 음을 연결했다. 이어서 G Dorian, D Mixolydian으로 모드를 오가며 손끝에 힘을 실었다. 건반의 묵직한 터치가 손가락에 저항을 주었지만, 리듬이 붙자 유연하게 연주할 수 있었다. BPM을 100으로 올리며 속도를 높였고, 크로매틱 스케일을 섞어 음 사이의 미세한 전환을 연습했다. 연습하면서, 현예가 지적했던 문제를 되뇌었다. 지나치게 코드에 매몰되어, 뻔한 연주를 반복한다. 손에 익은 프레이즈를 매번 되풀이해서 치는 건, 즉흥연주가 아니다. 귀에 익은 비밥 라인을 그때그때 빌려오는 습관을 지워내야 했다.
‘쉽지 않아, 쉽지 않아.’
불평을 흥얼거리며, 서규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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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실 문을 닫고, 왼쪽 끝자리에 앉았다.
석 팀장이 회의를 시작했다.
“자, 그럼 각자 돌아가면서, 지금 하고 있는 업무 간단하게 공유하지. 윤 책임 먼저.”
“지난주 창업 자금 지원 대상자 심사 건 마무리하고, 결과 보고 준비 중입니다.”
“그 국제소리종합상사인가? 거기도 붙었어?”
“네, 1위로 선정되었어요.”
“나중에 컨설팅하면 이름 좀 바꾸라 그래. 무슨 쌍팔년도도 아니고. 나중에 사업 결과 홍보할 때, 없어 보이잖아.”
석 팀장이 비아냥거렸다.
“신 선임은?”
“이번 주에 소상공인 특례보증 5건 심사 마쳤습니다. 신청자 서류 검토 마치고, 다음 주부터 실사 나갈 예정입니다.”
현예는 차분하게 답했다.
“신 선임, 실사 제대로 해. 보기엔 까칠한데 항상 후하게 준단 말이야. 그때 그 망한 재즈 클럽 기억 안 나? 내가 승인 거절해서 다행이지, 괜히 지원해 줬다가 망하면 그게 다 세금 낭비 아니야.”
“다시 운영 중입니다.”
현예는 단단하게 말했다.
“뭐?”
“다시 운영 중이라고요. 평가를 후하게 준 게 아니라, 성장 가능성을 보고 제대로 준 것입니다.”
“그래서 클럽이 성장했나?”
“성장 중입니다.”
“얼마나.”
“26배 이상이요.”
초기값이 월 매출 30만 원이었으니, 26배 성장은 착시다. 말 그대로 죽어가던 매장이, 간신히 목을 축이는 상태로 올라온 것뿐이다. 시장에서는 이것을 성장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러나 재즈클럽의 기준에서는, 유의미했다.
“진짜 바닥이었나 보군.”
석 팀장이 비열하게 웃었다.
입을 다물고, 현예는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회의를 마치고 나와, 옥상에 올라갔다. 바람이 몸을 쓰다듬으며 흘렀다. Milt Hinton의 Look Out Jack을 머릿속에서 재생했다. 한 계단씩 내려오던 베이스가 갑자기 술래를 잡으러 뛰어가듯이, 워킹한다. 옆에서 피아노가 합세하고, 명랑 운동회 같은 경주가 시작된다. 달리고 싶지만, 옥상은 넓지 않았다. 달리는 대신, 음을 흥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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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공연이 끝나고 안경 쓴 키큰 남자가 서규에게 왔다.
“오늘 공연도 멋지네요.”
“아 두 번째 오시는 거죠. 자주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연주하겠습니다!”
연주의 흥분감이 사라지지 않은 들뜬 목소리로 서규가 말했다.
“보니까, 여기서만 연주하시더라고요.”
“네, 이 재즈클럽을 살리려고 시작한 연주거든요. 저희 가게에만 딱 맞는 가내수공업형 밴드죠. 공연비를 받지 않는 것도, 양심에 찔려서예요. 와서 메뉴를 주문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에요.”
“그것도 이해가 가지 않아요. 듣는 사람이 미안할 정도예요.”
안경 남자는 진심으로 애석하게 말했다.
“다음 주에 도너츠에서 잼데이가 열리는데, 오프닝 세션으로 세 분 참여해 보실 생각 없으세요?”
“도너츠라면… 지태원에 있는 그 ‘도너츠’ 말씀이세요?”
도너츠는 재즈 1세대 거장들의 모임 공간에서 시작한 한국 제1호 재즈 클럽이었다. 도너츠의 잼데이는 단순히 아무나 난입해서 잼을 하는 게 아니다. 콘서트 연주자도 계급장을 떼고 참가해, 실력으로만 결투를 벌이는 살벌한 경기장이었다. 어설픈 실력으로 들이밀었다가는, 재즈신에서 낙오될 수 있었다. 그러한 성향 때문에 기피하는 연주자도 있었고, 그러한 성향 때문에 선호하는 연주자도 있었다. 선호하는 연주자는 대개 이름은 없지만 실력은 있는 쪽이었다. 실제로 잼데이에서의 연주로 일약 스타가 되어 음반을 낸 케이스도 있었다. 드물긴 하지만, 어쨌거나 실력만 있다면 눈도장을 제대로 찍을 수 있는 기회는 맞았다.
“거긴, 제가 갈 곳이 아니죠.”
서규는 손사래를 쳤다.
“아뇨, 충분합니다. 도너츠 매니저로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네? 도너츠 매니저시라고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규가 되물었다.
“네, 최근 들어 신예가 참가하는 일이 드물어졌거든요. 오프닝 세션만이라도 새로운 얼굴이 하면 어떨까 생각하다, 여러 뮤지션을 살펴 보고 있었어요. 친구 덕분에 때마침 서규 씨 트리오를 알게 되어서, 와 봤어요. 오늘 연주를 듣고 확신했어요. 꼭 모시고 싶은데, 관심 있으시면 편하게 연락 주세요.”
안경 남자, 박차운은 노란 도넛이 그려진 명함을 주고 자리를 떴다.
“뭘 그렇게 얼빠져 있어, 서규 오빠?”
뒤에서 아소가 어깨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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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나가야죠.”
현예가 단호하게 말했다.
“저 설거지 안 시킬 거라면서요.”
“뭐야? 둘이 결혼해!! 누구 허락받고!! 안 돼!”
아소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설거지는 서로 나눠가면서 하는 게 좋대요. 부부끼리.”
도한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런 거 아니야, 선임님이 무급으로 일하시니까, 정식으로 알바를 채용하려고 하자고 말씀드렸던 거야.”
“그런데 아직 재무가 탄탄하지 못하니,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거고요.”
창으로 현예가 서규를 찔렀다.
“어차피 가서 망신 좀 당한다고, 이 클럽에서 연주 못 하는 건 아니잖아요. 최후의 보루는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나가보는 거,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진심으로. 주목받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거고.”
타이르는 말을, 얼음처럼 현예가 던졌다.
“난 찬성!”
아소가 손을 들었다.
“전 대세를 따를게요.”
도한이 거들었다.
“그럼, 결정은?”
세 사람이 일제히 서규를 바라보았다.
“해야죠. 하라면.”
서규가 우는 소리를 냈고, 현예는 못 들은 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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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위로 곡과 연주자가 결정되는 일반 신청자들과 달리, 오프닝 세션은 원래 팀과 곡을 정해서 시작할 수 있었다. 가장 안전한 출발점인 것이다. 하지만 그 안전한 출발점에서도 미끄러져 나가면, 재기하기엔 무리가 있다. 청중들도 모두 네임드니까.
차운이 오프닝 세션을 제안한 이유는 하나였다. 크는 새싹을 자르기 위해서. 재즈계는 좁고, 향유층의 절대적 규모가 한정적이었다. 여러 재즈 클럽이 활발히 운영되면서, 재즈 시장이 함께 커지는 것은 이상 속에서나 가능했다. 실제로는 규모가 작은 재즈클럽이 유행을 타고 생겨나, 충성도 높았던 고객을 야금야금 빼앗고 있었다.
인하우스 밴드로만 인기를 얻고 있는 재즈 클럽이 있다는 소식은, 도너츠 입장에서 결코 달갑지 않았다. 특히 재즈에는 관심이 1도 없던 사람이 흥미를 느낄 만큼, 매력적인 재즈 클럽과 팀이라면 검증해 볼 필요가 있었다. 해가 되는 존재인지, 득이 되는 존재인지. 두 번의 참관을 마치고, 차운은 서규네 트리오가 보여준 정통적이면서도, 참신한 접근법에 매료되었다. 왜 갑자기 백이 재즈 팬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냥 둘 수 없었다. 최근 몇 주 동안 금요일 오후 손님이 확연히 줄어들고 있었다. 이게 모두 Bebop in Pastel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도너츠에서 봤던 몇몇을 서규 네 트리오 공연 중에 보았다. 도너츠 잼데이 오프닝 세션에 초대해, 아직 미성숙한 서규 네 트리오를 짓밟아야 한다. 도너츠의 권위를 과시하면서, 유망한 재즈 연주자들의 도전욕을 자극하는 사건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일화가 쌓여, 또 다른 감상자들이 성지를 순례하러 올 테다.
“너가 그때 말한 트리오 괜찮더라.”
-가 봤어? 좋지. 연랑이도 반했어.
전화기 너머로 백의 쾌활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래서 우리 클럽에도 초대하려고, 다음 주 잼데이에 오프닝세션으로 불렀어.”
-오, 진짜? 좋다!
“주변에도 재즈 좀 전도해줘.”
-안 시켜도 하고 있어!
안 시켜도 재즈를 전파하고 있다. 평소라면 듣기만 해도 두근거리고, 즐거워지는 얘기였지만, 지금은 긴장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자신이 추천할 때는 거들떠도 보지 않더니, ‘Bebop in Pastel’에 방문하고 나서는 Keith Jarret의 ‘Bop be’를 듣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