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보증재단 직원이 콘트라베이스를 못 숨김 7화

by 설다람

악기점 앞에 서서 도한은 웅대한 자태를 뽐내는 콘트라베이스를 바라보았다. 바이올린, 첼로가, 비올라가 가득한 현악기 전문점에서 가장 큰 크기를 자랑하는 악기였다.

“얼마인가요?”

“230만 원이에요.”

중년의 사장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여기서 가장 저렴한 건 얼마죠?”

“이게 가장 싼 거예요. 그보다 아래는 다른 가게 가서 알아보세요.”

다른 가게…이번이 세 번째 가게였다. 직접 방문하면 싼 매물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인터넷 글을 믿은 게 잘못이었나. 쫓겨나듯 가게에서 나온 도한은 마지막으로 남은 현악기점에 들렀다. 미성악기라는 낡디 낡은 간판이 달린 가게였다. 도한은 허름한 외관에 걸맞은 싼 매물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당연히 늙수그레한 주인이 나올 줄 알았던 도한은 젊은 여자가 가게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고 멈칫했다.

“들어 오세요.”

여자는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여기서 가장 저렴한 거는 100만 원이에요. 바닥에 찍힌 부분이 있는데, 소리엔 지장 없어요.”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여자가 대답했다.

“아까부터 돌아다니는 거 봤어요. 이 물건이 가장 쌀 거예요.”

130만 원… ‘Top of Power’ 공연 티켓이 20만 원이니까. 공연 갈 돈을 보탠다고 해도, 80만 원을 더 구해야 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베이스는 30만 원. 산 지 얼마 안 됐으니, 중고로 팔면 24만 원을 받을까? 돈 없으면 시작도 못 하는군.

“클래식이에요, 재즈예요?”

멀뚱히 서서 콘트라베이스를 바라보고 있는 도한에게 여자가 물었다.

“재즈요.”

“그럼, 세팅도 새로 해야겠네.”

여자는 카운터 아래에서 공구함을 꺼냈다.

“산다고 안 했어요.”

“사러 올 거잖아요.”

티 없이 맑은 신뢰감으로 여자가 말했다.

“손님처럼 묻고 묻다 우리 가게까지 온 재즈맨들은 언젠간 다시 와서 사 갔어요.”

이게 수완이 좋다는 건가, 도한은 돈을 빌려서라도 악기를 구매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꼈다.

“전 재즈맨이 아니라서…, 조금 더 고민해 보겠습니다.”

집에 돌아온 도한은 장식장에서 짙은 밤색 가죽에 모서리는 견고한 금속 프레임으로 마감된 케이스를 꺼냈다. 뚜껑을 열자, 뚜껑 안쪽 면에 트럼펫 부는 할머니 사진이 붙여져 있었다. 눈을 감고 트럼펫에 입을 대고 있었다. 단단하게 고정된 왼손, 밸브를 누르고 있는 손가락, 금방이라도, 굵고 강한 프레이즈가 뿜어져 나올 것 같았다.

그 아래 은은한 금빛을 머금은 트럼펫이 다소곳이 누워있었다. 도한은 트럼펫을 꺼내 마우스피스를 끼우고 밸브를 눌러보며 상태를 체크했다. 쾌청한 소리가 고르게 퍼졌다. 언제 들어도, 몸속 끝까지 개운해지는 소리였다. 오랜 세월 길든 음이었다. ‘최소 주 1회 분해 세척’이라는 할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도한은 슬라이드와 밸브를 모두 분리하고, 솔로 닦기 시작했다.

비싸겠지. 이거.

편의점 앞에 가방을 들고 서 있는 도한에게 금테 안경을 쓴 남자가 다가와 물었다.

“양파세요?”

“네, 여기. 꺼내서 상태 보셔도 돼요.”

도한은 가방을 남자에게 건넸다.

“괜찮습니다. 신뢰 사회 아닙니까. 쿨거래하겠습니다. 돈은 양파페이로 드리면 될까요?”

“네, 그렇게 해 주세요.”

남자는 이렇게 레어한 걸 팔아도 괜찮냐고, 떠나기 전에 물었다. 뭐 떠나갈 때가 된 거겠죠.

빈손으로 돌아가는 도한은 생각했다.

총 플레이타임 5,548시간, 엘다의 전설 스페셜 에디션과 함께, 한정판 GP64를 팔았다.

도한이 ‘Bebop in Pastel’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현예는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거대한 장수풍뎅이를 등에 멘 도한이 무대로 가 조심스럽게 케이스를 벗겼다. 우람한 몸집을 뽐내며, 콘트라베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아소가 콘트라베이스를 가리키며 물었다.

“산 거야.”

“일렉 베이스는?”

“팔아서, 이거 사는 데 보탰어.”

“아토믹 태권도에선 뭐로 치려고?”

“이걸로 되지 않을까?”

“칠 줄은 알아?”

“같은 베이스니까, 아마 가능하겠지.”

‘그럴 리가!’

현예는 육성으로 외칠 뻔했다.

왼손 운지 개념 자체는 동일하니, 화성적 역할을 이해하고, 변환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프렛이 있고 없고의 차이부터 심각했다. 오로지 귀로만 음정을 잡아야 한다. 줄의 장력도 차원이 다르니, 지판을 짚는 감각 자체가 완전히 이질적일 것이다. ‘같은 베이스니까, 아마 가능하겠지’라는 안이한 태도로는, 잘못된 연주 습관이 들 수 있다. 좋은 소리를 내는 데, 필시 걸림돌이 될, 질 나쁜 자세부터.

도한은 콘트라베이스를 세우고, 몸에 밀착시켰다. 체구가 크지 않았기에, 저절로 감싸안는 자세가 되었다. 손가락을 넓게 벌려 일렉 베이스를 칠 때처럼, 네 손가락을 모두 지판 위에 올렸다. 테크니컬한 연주를 좋아하는 도한은 네 번째 손가락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콘트라베이스에서 처음부터 네 번째 손가락을 일렉 베이스에서처럼 쓴다면, 손가락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저기 너무 껴안듯 잡으면, 팔 움직이기 힘들 거예요. 콘트라베이스는 안는 악기가 아니라 기대는 악기예요. 몸이랑 악기 사이에 숨 쉴 틈을 둬야 해요.”

현예가 도한의 왼팔을 가리켰다.

“감이 잘 안 오네요.”

도한이 갸웃거렸다.

“괜찮다면 기본적인 걸 제가 알려드릴까요? 재즈 오케스트라부에서 기본기는 전공자로부터 엄격하게 배웠거든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선배도 전공자는 전공자였으니까.

“저야 감사하죠.”

도한은 선뜻 현예에게 콘트라베이스를 내밀었다. 조심스럽게 악기를 받아 든 현예는 단단히 바닥에 세우고는 한 발을 반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그리고 어깨와 골반을 악기 옆에 나란히 붙였다.

“자 보세요, 이렇게-“

오른쪽 겨드랑이를 띄우며, 악기와 몸 사이에 주먹 하나만큼의 틈을 만들어 보였다.

“딱 이만큼. 팔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도한은 유심히 바라보았다.

“목은 편하게, 너무 들이밀지 말고, 어깨선에 맞춰요. 무게 중심이 넥에 쏠리면, 왼쪽 손목이 꺾여요.”

현예는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지판 위에 올렸다.

“처음 시작이니까, 손가락은 첫째, 둘째, 셋째만 써요. 새끼손가락으로 줄을 누르기 어려울 거예요. 장력이 일렉이랑은 비교도 안 되게 강하니까. 무리하게 치면 다쳐요.”

“어쩐지, 새끼손가락 근육이 터질 것 같았어요,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요. 감사해요. 선임님.”

“콘트라베이스는 프렛이 없으니, 손으로 들을 줄 알아야 해요. 손의 위치감각과 음의 높낮이를 연결하는 감을 기르는 거예요. 여기가 A이니, 그다음 여기가 Ab이겠죠. 일렉 베이스에서 크로매틱을 하듯이 먼저 연습해 보세요. 여기 튜너로 계속 음정 확인하면서 해야 해요. 안 그러면 잘못된 음정에 귀가 익을 수 있으니까.”

현예는 G현 첫 포지션에 손가락을 얹고, 반음 간격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일렉보다 확실히 간격이 넓네요. 그런데 선임님.”

“네.”

“너무 정확하신 거 아니에요?”

도한은 콘트라베이스 헤드에 꽂힌 튜너를 가리켰다. 현예가 음을 짚을 때마다 바늘은 정중앙에 멈췄고, 초록불이 켜졌다.

“베이스가 틀리면, 빅밴드가 무너진다.”

손을 놓으며, 현예가 말했다.

“지겹도록 들었던 말이에요.”

베이스를 넘겨 주었고, 도한은 가르쳐 준 대로 자세를 잡았다.

(리더) 뭐 밴드를 나간다고?

‘아토믹 태권도’ 단체 채팅방은 드럼과 베이스의 동반 탈퇴로 거의 장례식 분위기였다. 밴드의 최고 실력 둘이 나갔으니, 밴드의 운명도 미지의 길에 던져졌다.

(키보드) 리더가 갈궈서 나간 거 아니야?

(기타) 아소가 갈군다고 나갈 애냐. 걔가 갈구면 갈궜지.

(브라스) 도한은 왜 같이 나간 거야?

(키보드) 트럼펫 부는 애를 베이스 시키니까 나간 거 아니야.

(기타) 맞다. 도한이 원래 브라스였지. 결국 다 리더 때문이네.

(리더) 베이스 구할 때까지만 맡아달라고 한 것뿐이야! 별말 없었고.

(브라스) 걔는 원래 별말 안 해.

(키보드) 그럼 혹시 둘이 사귀어서 같이 나간 거 아니야?

(기타) 너 몰랐냐. 도한이 단발 포비아야. 사귈 리가.

(리더) 그걸 왜 지금 알려줘! 그럼 계속 길렀을 텐데…

(키보드) 리더 도한이 좋아했어?

(기타) 리더 도한이 좋아했어?

(브라스) 리더 도한이 좋아했어?

(리더) 너네는 다 아소 좋아했잖아!

(키보드) 우리는 순수 팬이지. 박력 드럼. 불타는 더블킥.

(기타) 확실히 요즘 달라지긴 했어. 둘 다. 재즈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거기로 이제 완전 넘어갔나 보네.

(리더) 재즈 그딴 게 음악이야?

(키보드) Funk도 같은 뿌리야 리더.

(기타) Hiphop도 같은 뿌리지.

(브라스) Neo Soul도 같은 뿌리고.

(리더) 시끄러, 우리는 아토믹 태권도, 우리가 곧 장르고, 우리가 곧 시초다. 무엇도 따라가지 마. 다시 특훈. 새 멤버를 구할 때까지, 연습실 대신, 태권도장에서 모이자.

그웬은 분노를 담아 540도 돌려차기를 길에서 시전했다. 지나가던 양아치 떼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너네, 다 작살나고 싶니?’

양아치 대장 코앞에서 발차기를 멈춘 그웬이 말했다. 양아치 대장은 침을 삼키고, 죄송하다고 했다.

분을 삭이지 못한 그웬은 옆에 있는 가로등을 잡고, 원숭이처럼 올라갔다.

“그럼, 무슨 곡으로 할까?”

서규가 모두를 보며 말했다.

“Benny Golson의 Stablemates 어때?”

“너, 달리려고?”

“냅다 달려야지.”

“안 돼, 지금 콘트라로는 무리야.”

“그럼, 넌 뭐하고 싶은데.”

“Emily Remler 의 ‘Snowfall’”

“느낌 살리기 진짜 어려울 것 같은데, 내 능력으로는.”

제목을 듣고, 서규가 고개를 저었다.

“오빠는 뭐 생각한 거 있어?”

‘Elmo Hope의 Punch That?”

“너무 오래된 곡 아니야?”

“세월을 견딘 명곡이지.”

고전적인 취향을 자랑하는 서규에게 아소가 야유를 보냈다.

“선임님은 추천해 주고 싶은 곡 있으세요?”

“’Ornithology’ 어떠세요? 서규 씨의 서정적인 터치랑 잘 맞으면서, 드럼이 놀 공간이 많아요. 흥을 제대로 살리면 솔로에서 아소 씨의 기량을 과감하게 보여줄 수 있죠. 베이스도 단순하게 접근하면 도한 씨에게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예요. 멜로디 감각이 좋아서, 더 다채롭게도 연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딱 제 취향이에요.”

“오빠는 선임님 추천은 왜 다 좋아해.”

“그야 선임님 추천은 다 좋으니까.”

“이 곡도 따라갈 수 있으려나?”

도한이 휴대폰으로 음악을 틀었다.

“이거 ‘How High The Moon’이랑 같네요.”

“네, 같은 코드 위에 쓴 곡이에요.”

현예가 알려줬다. Ella Fitzgerald가 ‘How High The Moon’에서 스캣 솔로할 때, ‘Orninthology’의 멜로디를 차용하기도 했어요.

“전 좋아요. 조금 빡세지만, 빡세게 연습하면 되겠죠.”

“아소, 넌 할 수 있겠어?”

도발하듯 서규가 물었다.

“물론 지금도 당장 칠 수 있어. 이 드러머보다 훨씬 더!”

아소는 당장 가방에서 스틱을 꺼내, 무릎을 때리며 리듬을 맞췄다.

서규가 흡족하게 웃으며, 현예에게 엄지를 올렸다.

가게 오픈 전, 서규 네가 합주했고, 영업 종료 후에 현예의 코치가 이어졌다. 가까스로 막차를 타고, 귀가하는 날의 연속이었고, 금요일은 밤샘 훈련이었다. 어느 날도 아깝지 않았다. 셋은 완연한 트리오의 형체를 갖춰가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 현예의 귀에 ‘Orninthology’의 멜로디가 맴돌았다. 잠의 경계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잡고, 프레이즈를 그렸다. 선명하고 단호한 운율. 닿고 싶었던 그곳을 향해, 손가락이 바삐 움직였다.

잼데이 당일이 되었고

현예는 클럽 도너츠 앞에서 서규를 만났다. 두 사람을 향해 전화기를 든 채로 아소가 다급히 뛰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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