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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문안 늦어서 미안해요.”
현예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뭘요. 와주신 것만으로 감사하죠. 과일 드실래요?”
도한이 서랍 위에 있는 바나나를 들었다.
“괜찮아요.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에요. 언제쯤 퇴원할 수 있다고 하나요?”
“한 3주 뒤에요. 다리가 붙는 데 좀 걸릴 것 같다고 하시네요.”
“꽤 오래군요. 도한 씨가 어서 돌아와야, 공연을 재개할 수 있을 텐데.”
걱정스럽게 현예가 말했다.
“선임님이 베이스 치기로 한 거 아니셨어요? 아소가 그렇게 할 거라고 하던데.”
“아뇨, 서규 씨가 부탁하셨는데, 못 하게 되었어요. 클럽 일도 이제 못 도와드릴 것 같아요.”
“네? 선임님이 떠나시면, ‘Bebop in Pastel’은 누가 지켜요?”
“어느 정도 틀이 잡혔으니, 서규 씨도 잘해낼 거라 믿어요.”
“그럼, 선임님 베이스는 더 못 듣는 건가요?”
현예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아쉽네요. 완전 제 취향이었는데. 섬세하면서도 박력 있고, 무엇보다 혼이 실려있어서 좋았어요. 묵직한 진심.”
순수한 목소리로 도한이 말했다.
“변변찮은 연주인데, 좋게 봐줘서 고마워요.”
“변변찮은 연주 아니에요. 정신 못 차리게 하는 연주죠. 몇 번이나 다시 봤어요. 아마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이었을 걸요. 더 듣고 싶다고.”
현예는 생각지도 못한 칭찬에 힘이 풀렸다.
“할머니가 트럼페터셨어요. 미군 부대 근처 재즈 클럽에서 연주하셨다고 했는데, 어느 날 진상 손님이 깽판 치는 바람에 얼굴에 병을 맞고 쓰러지셨어요. 얼굴이 두 배로 부어올랐는데, 다음 날 무대에 오르셨어요. 가게 주인이 조금 쉬다 나오지 왜 나왔냐고 하니,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대요.
‘빌리가 섭섭할까 봐’
빌리가 누구냐고 물어보니, 매일같이 구석진 자리에 혼자 들으러 오는 손님이 있었대요. 그분이 언제나 할머니의 연주를 듣고, 누구보다 힘차게 박수을 쳐줬대요. 그렇게 박수 쳐주는 사람이 있는데, 병 한 방 맞았다고, 나자빠져 쉴 수는 없었다고.”
“강한 분이시네요.”
“네, 선임님한테서도 비슷한 느낌이 나요. 뒷발을 단단히 대고, 절대 물러서지 않을 힘이 지닌 사람.”
“전 그런 사람 아니에요.”
“아쉬워서 드린 말씀이었어요.”
‘고마워요.”
병원을 나온 현예는 도한의 할머니가 한 말을 곱씹었다. ‘빌리가 섭섭할까 봐.’ 자신이 연주하지 않으면, 섭섭할 사람이 최소한 두 명은 생겨버렸다.
언젠가 기대에 부응할 수 없는 날이 온다는 사실이 자명하다면, 이른 기대는 접어두게 해야 한다. 그걸 못해서 미국까지 간 것이었고, 그걸 해버려서 결국 무엇도 지키지 못하고 돌아왔다.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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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설득하고 올게!”
“아서 아소 그러지 마. 선임님도 고민하시다 내린 결정이실 거야.”
“그럼, 연주는 어떡하고?”
“너랑 나랑 둘이서 해야지.”
“그게 가능해?”
“가능하게 해야지. 선임님이 어떻게 여기까지 올려주셨는데. 내려갈 순 없잖아.”
서규가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둘은 스탠다즈 곡으로 연습을 시작했다. 확실히 베이스가 없으니, 공백이 느껴졌다. 서규와 아소의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꽉 채워도, 빈칸이 남아있는, 허전함이 느껴졌다.
리듬의 바닥이 사라졌고, 손가락이 허공을 짚는 것 같았다. 어느새 트리오 사운드에 익숙해졌던 서규는 습관적으로 루트리스 보이싱으로 코드를 쳤다. 묵직한 근음이 사라진 컴핑은 중심을 잃고 부유했다. 감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소도 마찬가지였다. 트리오 구성에서 아소가 뛰어다닐 수 있었던 것은 베이스가 탄탄히 리듬의 기둥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한쪽 지지대가 사라진 지금, 아소는 타임키핑에 더 많이 신경 쓰게 되었다. 아무리 자유롭다고 해도, 완전히 엇나가서는 안 된다.
두 사람은 피아노와 드럼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얼마나 큰 간격이 벌어져 있는지 재확인하게 되었다.
정기 공연에서도 그 공백은 여실히 드러났다. 연주 시작 전 어색한 기류가 흘렀고, 출발부터 불안했다. 엉망으로 굴렀다. 서규와 아소 모두 그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문제는 꺾인 기세를 일으킬 힘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음의 배열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쓸수록 더 많은 음을 놓쳤다. 어깨를 찍어 누르는 듯한 패배감과 함께 공연이 끝났고, 서규는 관객 반이 떠나간 빈자리를 마주해야 했다.
서규가 곧바로 카운터로 가려고 했을 때, 파란 셔츠를 입은 남자가 다가왔다.
“혹시 도너츠 잼데이에서 베이스 치셨던 분은 혹시 오늘 빠지신 건가요?”
“아, 네 현재 라이브 공연은 피아노와 드럼 듀오로만 진행되고 있어요.”
“그래요, 그럼 혹시 따로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죠?”
“전 ‘재즈노트’ 기자 류한민입니다. 인터뷰를 좀 하고 싶어서요.”
남자는 명함을 서규에게 건네었다.
‘재즈노트? 설마 그 재즈노트?’
재즈노트는 80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재즈 잡지로 매년 최고의 뮤지션과 앨범을 선정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재즈 뮤지션들은 재즈노트에서 최고의 뮤지션으로 선정되는 것을 그래미상 수상보다 더 명예롭게 여겼다. 그 까탈스러운 ‘Duke Davis’도 말년의 역작 ‘One Last Gig in B♭’가 발매된 해 재즈노트 최고의 앨범으로 선정되었을 때 Z에 ‘Too good, so good’이라고 글을 남겼다. 그런 재즈노트에 한국인 기자가 있을 것으로 생각해 보지 못했고, 그런 재즈노트 기자가 현예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신용보증재단 직원이 재즈를 좀 좋아한다고 인터뷰를 요청하려는 것은 아닐 테다. 잼데이에서 현예가 보여준 독보적인 바이브에 뭔가 있다는 뜻이었다.
“네, 신현예 베이시스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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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폭우가 쏟아지던 워싱턴 DC의 듀퐁 서클 뒷골목을, 한민은 가녀린 우산 하나와 함께 걷고 있었다. 목적지는 ‘Dizzy Smalls’였다. 랩퍼 이름 같은 가게명과 달리 ‘Dizzy Smalls’는 끝내주게 핫한 재즈 클럽이었다. 2시간 전까지 ‘Freedom Hall’에서 Thelonious Jamal Competition 시상식을 취재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은 채로 허름한 재즈 클럽 앞에 서 있었다.
우려한 대로 빗물은 계단을 타고 흘러내려 클럽 바닥에 고이고 있었다. 바텐더는 물걸레를 들고 와 바닥을 닦아냈고, 몇몇 테이블 아래에는 물받이 양동이가 놓여 있었다.
그러나 새어 들어오는 빗물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클럽은 이미 ‘Hot House’를 연주하고 있었다. Thelonious Jamal Competition의 파이널에 올랐던 연주자들이 잼을 벌이는, ‘After Hours’였다. 재즈 기자들 사이에선 ‘After Hours’가 리얼한 Competion이라는 평이 있었다. 명성답게 무대 위에선 색소폰 부문 우승자 Lee Hogan과 트럼펫 부문 2위 Ron Shorter가 침 튀기는 난타전을 벌이고 있었다. 화려한 텅잉으로 색소폰인 번개를 내리쳤고, 롱톤으로 트럼펫이 막아냈다. 장관이었다.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간 뒤, 베이스 주자가 교체되었다. 신현예였다. 이민락과 함께 베이스 부문에 올라온 연주자였다. 현란한 이민락의 기교는 심사 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고, 결국 우승을 거머쥐었다. 반면 신현예는 기량이 다소 부족해 보였다. 몇 번 코드를 놓치고, 헤매는 실수까지 하는 바람에 3위로 경연을 마쳤다.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신현예의 얼굴은 유독 어두웠다. 수렁에 빠진 고양이 같았다.
그러나 지금 무대에 올라간 신현예에게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고요한 분노였다. 맹렬하게 응고된 감정이 음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다. 놀라웠다. 이렇게까지 다를 수가 있나 싶었다. 심사의 대상이 아니라, 온전히 받아들여야 하는, 작품이었다. 다른 악기를 받쳐주면서도 강인한 정체성을 조금씩 드러냈다. 알토 색소폰이 리드하는 중에도, 베이스에 귀가 갔다. 클럽 안에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진짜다.’
After Hours를 마치고 이민락을 인터뷰하려는 게 목적이었지만, 그건 이미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현예가 내려가고 나서, 이민락이 무대로 올라갔다. 그러나 그건 전혀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이민락 특유의 박진감 넘치는 워킹을 등 돌리고 현예를 찾아 테이블을 옮겼지만, 현예는 이미 자리를 떠나고 난 뒤였다. 그날 이후로 신현예에 대한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좋은 연주자를 잃는 것은, 감상자로서 느낄 수 있는 가장 뼈아픈 고통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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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님이 Thelonious Jamal Competition에서 3위를 하셨다고요?”
서규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네, 그러고 나서 아무런 소식이 들리지 않았어요. 보통 그 정도면 국내에 돌아와 정규 앨범은 한 장 내는데 말이죠. 그날 모든 걸 쏟아내는 것 같긴 했어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다짐으로 연주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나중에 들었어요. 그런데, 도너츠 잼데이에 느닷없이 나타난 거예요. 그것도 전혀 녹슬지 않은 실력으로.”
한민은 감상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연락이 어려울까요?”
“말씀은 드려볼게요. 장담은 못 드려요. 저희는 그냥 클럽 모객용으로만 연주하던 거라.”
현예가 ‘Bebop in Pastel’을 그만둔 이유가, 음악을 그만둔 이유와 관련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서규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한민이 떠나가기 전 뒤돌아 서규를 바라보았다.
“아 참, 서규 씨와 아소 씨의 연주도 인상적이었어요. 뭐랄까,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래서 흡입력 있는. 좋은 연주 계속 비처럼 내려주세요. 이 땅은 재즈 가뭄이잖아요.”
한민이 떠났고, 서규가 멍하니 서있었다.
“뭐해요, 오빠! 설거지 나만 하고 있잖아!”
아소가 큰 목소리로 투정 부렸다.
서규가 홀로 뛰어가 잔과 접시를 치우고는 아소와 함께 설거지했다.
“아소야, 선임님이 Thelonious Jamal Competition에서 3위를 했대.”
“무술 대회야?”
“아니, 음악 경연 대회야, 재즈계의 쇼팽 콩쿠르 같은?
“뭐? 언니, 역시 평범한 신용보증재단 직원이 아니었어?!”
“그러게, 이건 상상의 범주 밖에 있던 사실이야.”
“ 그건 어떻게 알았대?”
“조금 전에 미국에 유명한 재즈 잡지 기자가 선임님을 인터뷰하고 싶다고 연결 좀 해달라고 부탁하고 갔어.”
서규는 씻은 접시의 물기를 행주로 깨끗하게 닦았다.
“언니랑 갠톡해?”
“안 하니까, 하기 좀 어렵네.”
“그럼 내가 할까?”
헹군 접시를 아소가 건넸다.
“아, 내가 해야겠네.”
아소의 제안을 듣고 서규는 정신을 차렸다. 제대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 뿐이라는 것을.
아소를 먼저 보내고 서규는 바에 혼자 남아, 도너츠 잼데이 영상을 보았다.
‘어쩐지 다르더라니까.’
재느노트 기자가 인터뷰하고 싶다고 찾아왔다는 메시지를 발송 예약하고,
서규는 그대로 바 테이블에 엎드려 잠들어 버렸다.
다음 날 오전 10시 현예는 서규의 메시지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