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보증재단직원이 콘트라베이스를 못 숨김 11화

by 설다람

Thelonious Jamal Competition이 끝나고 Dizzy Smalls에서 자신의 연주를 들은 사람이 있다? 그리고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 현에는 믿기지 않았다. 그날 자신은 완전히 잊힌 사람이었다.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하고 밀려났다. 승자는 이민락이었고, 패자는 신현예였다. 그 사실은 순위로 명확히 정해졌다. 불변의 기록인 것이다. Thelonious Jamal Competition 파이널에 올라갔으면, 이미 좋은 연주자라는 뜻이 아니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재즈의 세계에서는 좋은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경이로워야 한다. 세계 최정상이라는 타이틀은 그 선을 넘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Village Catwood'에서 라이브를 하는 것이다. 재즈노트는 그런 사람들을 취재하는 매체이고. 자신이 낄 자리가 아니었다.

-그건 좀 어려울 것 같다고 하시네요.

서규의 메시지를 받은 류한민은 펜을 돌렸다. 그동안 귀한 몸들만 취재해 왔다. 햇병아리 뮤지션이라고 해도 모두 곧 거장이 될 라이징 스타들이었다. 그래서 모두가 재즈노트가 찍은 뮤지션은 믿고 듣는다. 자신은 그런 재즈노트의 권위와 신뢰도를 유지하기 위해, 불철주야로 음악을 듣고, 감별하는, 음악계의 FDA 심사 위원으로서 일해 왔다. 비록 재즈노트 추천 코너에 실리지 않는다고 해도, 재즈노트 기자로부터 컨택받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은 이제껏 본 적 없었다. 노골적으로 홍보를 요구하면, 요구했지.

하지만 신현예는 단칼에 거절했다. 아무리 음악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고 하지만, 재즈노트의 의미를 잊은 것은 아닐 것이다. 한때 간절히 최고에 서고자 했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무명의, 실패한, 뮤지션도 아닌, 연주자를 인터뷰해야 하는가? 대체 무엇 때문에. 답은 분명했다. 그만큼 신현예의 연주는 매력적이었다. 음을 아는 사람들의 심장을 관통하는 선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음악탐정으로서의 삶을 선택한 이후로 한민의 또 다른 사명은 ‘위대한 음악가를 놓치는 범죄’를 막는 것이었다. 이 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뉴욕 지하철 거리 연주에서 만난 기타리스트 ‘Bon train’이 그랬고, 뉴질랜드 시골 재즈 클럽에서 홀로 비밥을 불고 있던 ‘Ro pass’가 그랬다. 한민이 발굴한 언더독들은, 이제 탑독이 되었다. 그들의 찬란한 성장은 단비 같은 뿌듯함을 주었다. 한 명이라도 더 이 사람을 알아야 한다. 그 간절한 마음이 이뤄낸 성과였다.

그냥 둘 수 없다.

현예는 대출 승인 후 사업 운영 현황을 확인하기 위해, 은백 미용실을 다시 찾았다. 사장은 손님 머리를 깎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사장이 부탁했고, 현예는 푹 꺼진 소파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현예는 가게 안에 흐르고 있는 음악을 듣고 놀랐다. Fats Navarro의 ‘Boppin’ A Riff’였다.

“은백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요상한 노래를 틀어.”

“아래 재즈 바 하는 총각이 머리 자를 때마다 하도 틀어달라 그래서 듣다보니까 맛 들였지.”

“아 그 집, 영어로 뭐라 써진 곳?”

“응 거기,”

“젊은 친구가 어떻게 은백 씨 가게에서 머리를 자른다나?”

“여기가 제일 싸대. 개업했을 때부터 여기서만 잘라.”

서규는 진짜 뼛속까지 재즈 전령자구나.

은백은 6,000원을 받았다.

“오늘 다섯 번째 손님이야. 어때 잘 되고 있지?”

“그래도 받으시는 금액이 너무 적어서, 순이익은 거의 없을 것 같은데요. 사장님 인건비를 제외하고도요.”

“염치없지만, 내가 죽을 때까지만이라도, 버티는 게 목적이야. 대출 덕분에 간신히 고비를 넘겼어. 이제 단골들도 돌아오고, 지금 수준으로는 계속할 수 있어.

“선임님도 재즈 좋아해?”

“네, 좋아합니다.”

“그럴 줄 알았어. 아까 고개 끄덕이고 있는 거 봤거든. 아래 재즈 가게 들러 봐, 우리 집 단골이 하는 곳인데, 자부심이 대단하더라고.”

현예는 열을 다해 은백에게 재즈를 전파했을 서규를 떠올렸다.

언덕을 내려오는 길에 익숙한 간판과 검고 낡은 철문이 보였다. 현예는 가던 길을 멈추고, ‘Bebop in Pastel’이라는 문구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두어 명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고, 문이 열릴 때마다 음악 소리가 들렸다.

“안 들어가시나요?”

정신을 놓고 있는 사이에 안경 쓴 남자가 다가와 말 걸었다.

“신현예 씨”

자신의 이름을 불렀지만, 현예는 남자를 전혀 알지 못했다.

“누구시죠?”

“재즈노트 기자 류한민입니다.”

한민은 명함을 현예에게 건넸다. 서규가 말한 그 기자였다.

“서규 씨에게 한 번 더 직접 현예 씨와 연결해달라고 부탁하러 왔는데, 이렇게 뵙네요.”

골치 아프게 되었다.

“네, 죄송합니다. 인터뷰하기엔 마땅치 않은 사람이라, 거절했습니다.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괜찮습니다. 불쑥 인터뷰를 요청해서 도리어 실례했죠. 이제는 상관없습니다. 개인적인 호기심에 가까우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전 현예 씨가 좋습니다. 이대로 두기엔 너무 아까운 아티스트라고 생각해요. Dizzy Smalls에서의 연주, 그 연주 한 번으로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도너츠 잼데이에서 보여준 연주도 마찬가지였고요.”

시간이라는 흙먼지로 간신히 덮어두었던, 그날의 기억을 한민이 기어코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전 아티스트가 아닙니다.”

“주목받지 못해서인가요.”

한민이 의표를 찔렀다.

현예는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요. 그 외에도 제가 음악을 그만둘 이유는 많습니다.”

“그랬군요. 그래도 듣는 건 여전히 좋아하시는 거죠.”

그마저도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불과 몇 개월 전이었다면, ‘아니요’라고 일말의 망설임 없이 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서규를 만난 뒤, 너무도 많이 들어버렸다. 그리고 항상 귀로 연주하고 있었다.

“애매하면, 듣고 생각해볼까요?”

대답을 머뭇거리는 현예를 보고 한민이 가게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안에서는 드럼에 맞춰 피아노가 잰걸음을 치고 있었다. 먼저 가라고 한민이 손짓했고, 현예는 마지못해 가게로 들어갔다,

주문을 하러 카운터로 가자, 사람 대신 캔맥주와 캔와인, 하드셀처류, 그리고 수정과 캔으로 가득 찬 냉장고가 있었다. 냉장고 앞에 달린 흑색 칠판에는 ‘자유롭게 들고 가시고, 계좌 이체해 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서규의 글씨였다. 새로 사람을 뽑을 여유가 없어 선택한 궁여지책일 것이다. 홀 안으로 가자, 피아노 소리가 선명해졌다. 그 사이에 더 연마된 실력이었다. 아소도 강도의 폭이 넓어졌다. 모래알이 쏟아지는 듯한 롤에서부터, 천둥 같은 난타까지 이어지는 역동적인 서사를 어색한 부분 없이 펼쳐냈다.

부족한 건, 베이스 하나였다.

받침대 하나만 있으면, 둘은 새로운 단계로 뛰어넘을 수 있다.

긴 드럼 솔로가 끝나고 헤드로 돌아왔을 때, 한민이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 쳤다. 그 소리에 다른 사람들도 따라 소리치며 흥을 더했다. 화끈한 한 판을 끝내고 둘은 Duke Ellington의 ‘Solitude’를 미디엄 템포 스윙으로 연주했다. 그토록 잔잔한 곡을 이토록 경쾌하게도 칠 수 있구나, 현예는 서규의 해석력에 감탄했다. 모달 인터체인지로 바꾼 코드 진행 덕분에 곡에 긴장감을 더하고, 크로매틱 패싱 코드를 삽입해 바쁜 느낌을 의도했다. 그 덕에 ‘Solitude’는 애잔한 탄식이 아니라, 자정의 희망곡이 되었다.

라인을 삽입하고 싶었다.

방금 지나간 프레이즈를 휘감으면서, 박자에 탄성을 가하는.

머릿속에서 손가락이 네 개의 현을 튕겼다. 손가락 끝에 두꺼운 줄이 닿았고, 그 지점에서 나야 할, 그 음이 튀어 나왔다. 외부에서 들리는 연주와 내부에서 피어오르는 연주가 겹쳐졌고, 듀엣은 더 이상 듀엣이 아니었다. 완연한 트리오였다.

잠재울 수 없는 충동이 허리 아래를 자극했다. 수신받은 청각 신호가 뇌에 닿기 이전에 몸이 자동으로 반응하는 음악, 그게 재즈였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잼데이의 연주가 깨운 것은 트라우마만이 아니었다. 트라우마를 겪을 수밖에 만들었던, 집요하면서도, 끈질겼던 갈망도 함께 깨어난 것이다.

“전 이만 일어 나 볼게요.”

“네,

한민은 현예를 잡지 않았다.

서규 연주 중에

오빠 뭘 그렇게 둘러봐?

혹시 선임님 못 봤어. 아까 뒤에 앉아 있었던 것 같은데?

연주에 집중해야지! 객석을 볼 여유가 어디 있어!

아소가 스틱을 서규에게 겨누었다.

“그게 베이스 소리가 들렸어. 선임님 숨소리 닮은”

“몰라, 뭐야, 그거…부러워!”

아소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내 숨소리는 어때?”

“내가 잘못했다. 아소야. 선임님이 오셨을 리가 없지.”

한민은 안심했다. 서규의 솔로 중에 시작한 현예의 허밍. 그건 분명 부정할 수 없는 베이스 연주였다. 한민의 귀에 남은 오늘 공연은 트리오 구성이었다. 이제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현예가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린 노트를 듣고 한민은 확신했다.

과거 Ron Jarrett와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마약으로 모든 걸 잃고, 왼손이 마비되어 피아노 연주를 할 수 없게 된 그 순간, 그 어느 때보다 더 강렬하게 연주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고.

Ron Jarrett는 베이스 음역은 모두 베이스에게 맡기고, 왼손 두 손가락으로 고음역에서에서 코드를 짚고, 오른손으로 솔로하는 주법을 개발했다. 말도 안 되는 짓이라고 비웃었지만, 그 말도 안 되는 짓을 훌륭한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한 번 눈을 뜨면, 돌아오게 되어 있어. 감을 수가 없거든, 처박힌 곳이 나락이라도’

누런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는 Ron Jarret의 모습에서, 살아 숨 쉬는 재즈를 볼 수 있었다.

너무 느껴버렸다.

너무 즐겨버렸다.

죄의식이 느껴졌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사방에서 멜로디가 메아리쳤다. 음의 입방체에 갇힌 기분이었다.

그때 한 목소리가 벽을 깨고 들어왔다.

“역시 선임님이셨군요.”

서규였다. 뛰어 나왔는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네, 근처에 볼 일이 있어서 왔다가 들렀어요.”

“저희 잘하고 있죠?”

순수로 가득 찬 눈으로 서규가 말했다.

“아주요.”

“그래도 베이스 자리를 채우긴 버거워요. 왜 그 같은 높이의 Db라도 베이스만의 색을 낼 순 없잖아요.”

서규는 손으로 뒷머리를 긁었다.

“선임님 같은 베이스는 꿈도 못 꾸고요.”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딱 한 번이었지만, 계속 생각나더라고요.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저한텐 너무 큰 자극이었어요.”

손에서 힘이 빠져 나갔다. 몸이 빈 공간으로 채워졌고, 서규가 하는 말과 공명했다.

“서규 씨.”

“네, 선임님.”

손가락 끝이 따끔거렸다.

“재즈가 하고 싶어요.”

눈시울이 붉어졌고, 주저앉아버렸다.

아소는 불만에 가득 차 폭력적으로 스틱을 휘두르며 솔로를 하고 있었다. 서규가 연주 도중 갑자기 뛰쳐나가는 바람에 홀로 곡을 이어 나가야 했다. 관객들은 이것도 퍼포먼스의 일환인 줄 알았는지, 거세게 환호했다. 아소가 괴성을 지르며 드럼셋을 연타했고, 더블킥과 고속롤의 향연이 이어졌다. 빗자루를 빠르게 쓸 듯이 스네어와 톰, 하이햇을 한 번에 쓸어쳤고, 시원한 타격음이 공중을 갈랐다.

‘온다. 온다. 온다.’

흥이 달아오를수록 아소의 의식이 희미해졌갔고, 관객들의 호응도 커져갔다. 눈앞이 새하얗게 변하고, 라이드를 찍어 눌렀을 때,

피아노가 들어왔다.

세상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갑자기 왜 뛰어 나간 거야! 그 덕에 10분 동안 솔로했다고!”

아소가 아우성쳤다.

“대단하네, 역시 1등 드러머야!”

“그건 당연한 거고! 그래서 이유는?”

“기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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