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보증재단 직원이 콘트라베이스를 못 숨김 12화

by 설다람

콘트라베이스를 구해야 한다.

그냥 콘트라베이스가 아니라 ‘그’ 콘트라베이스를

현예는 예전에 중고 거래했던 구매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5년 전에 거래했던 판매자인데요. 혹시 콘트라베이스 다시 살 수 있을까요?’

-아, 그거요. 저도 몇 년 전에 팔았는데…

‘혹시 어느 분에게 파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거 알려주면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아닌가요?

‘꼭 그 베이스를 찾아야 해서 부탁드립니다.’

-저야 도와드리고 싶지만, 그건 어렵겠습니다.

옳은 말이었다. 스미싱이라고 기오인당하 딱 좋은 접근이었다.

중고 악기 사이트에 콘트라베이스 사진과 함께 구매글을 올렸다.

댓글은 없었다.

현예는 처음으로 베이스를 판 것을 후회했다. 팔지 않으면 더 많이 후회할 것 같아 팔았다. 팔고 나서는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지워냈다. 후회의 싹을 완전히 잘라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아래 비대한 뿌리가 자라고 있었다. 다시 베이스를 치기로 한 지금, 현예는 어느 방향으로 기우는지 알 수 없는 거대한 후회와 마주했다.

게시한 글을 내리려고 했을 때, 한 사람이 쪽지를 줬다.

‘낭만상가 미성악기로 가보세요. 사진 보니 헤드 머신 사이에 미성1호라고 되어 있네요. 거기서 만든 걸 거예요.’

미성의 아버지는 평생을 악기 만드는 데 삶을 쏟았다.

자신의 이름을 따서 지은 미성악기점은 아버지의 정체성과도 같았다.

연주를 하진 못했지만, 누구보다 귀가 좋았던 아버지와 닮아 미성은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의 일을 도왔다. 애한테 위험한 연장을 들게 한다고 아내한테 등짝을 맞았지만, 미성에게는 타고난 감각과 체력이 있었다.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본격적으로 조수 일을 했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혼자서 콘트라베이스를 짤 수 있는 실력이 되었다. 아직은 만족할 수 없는 소리다. 소리를 찾기 위해 미성은 독일로 떠났다. 200년째 가문대대로 내려온 빈델반트 악기점에 수습으로 들어간 미성은 손이 닳도록 악기를 만들었다. 3년이 지났을 때, 가게 주인이자 스승인 빈델반트는 손에서 아름다운 소리를 피워낼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도 좋다고 했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병환으로 쓰러졌고 미성이 악기점을 운영하게 되었다. 악기점을 운영하고 나서, 처음으로 만들게 된 악기가 콘트라베이스

고민하던 남자는 현악기점을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자신의 악기점에 도착했다.

“혹시 여기 가장 저렴한 콘트라베이스는 얼마일까요?”

깍듯한 목소리로 남자가 말했다.

“100만 원이요.”

미성은 자신이 중학교 때 만들었던 콘트라베이스를 가리켰다. 미성 1호였다. 아버지가 자랑으로 프론트에 둔 것이었지만, 미성에게는 어설픈 초보작이었다.

“흐음…알겠습니다.”

남자는 그대로 사라졌다가, 일주일 뒤 다시 나타났다. 환한 웃음 그리고 100만 원과 함께.

베이스를 구매하고 나서, 남자는 그 자리에서 ‘Joy Spring’을 연주했다.

그러고 4년 뒤, 남자가 다시 나타났다.

“콘트라베이스를 맞춰서 짜면, 가격이 어느 정도 되나요?”

“가장 싸게 해도 300은 나가요.”

“그 정도는 낼 수 없지만, 내고 말게요!”

3년 전과 달리 호기롭게 남자가 말했다.

“여유가 생기셨나 봐요.”

“아뇨, 제 베이시스트가 칠 거니까, 좋은 걸 사야 해요.”

“돈은 있고요?”

“벌어야죠. 과외 뛰고 있어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럼, 바디랑, 브릿지, 테일피스, 다 정하고 가세요.”

“아직 주문 안 했는데요.”

“다시 올 거잖아요.”

미성이 제작 안내서를 서랍에서 찾으며 말했다.

“네, 물론이죠. 언젠가 'Village Catwood'에서 연주할 거예요.”

“꿈도 야무지네요.”

“야무져야 꿈이죠.”

그러나 남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미성 31호는 그렇게 혼자 남게 되었다.

“미성 1호랑 같은 걸 원한다고요?”

미성악기의 젊은 사장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제 악기였어요.”

“사간 건 남학생이었는데…10년 전에”

남학생이라는 말에 현예는 가슴아래께가 서늘해졌다.

“네, 선배가 준 거예요.”

“그 선배랑 연락해요?”

악의 없이, 순수한 목소리로 사장이 물었다.

“두고 간 게 있어서요. 꼭 온다고 했는데, 올 생각을 안 하나 보네요.”

다그치는 투는 아니었다.

“죽었어요.”

현예가 건조하게 말했다.

표정 없던 사장의 눈동자가 여리게 흔들렸다.

“아, 그랬군요. 제가 실수했네요.”

“선배가 두고 간 게 뭔가요?”

“자기 베이시스트한테 줄 콘트라베이스를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정식 주문은 아니었지만, 꼭 올 거라고 생각해서 미리 만들어 뒀는데, 일이 그렇게 됐네요.”

‘자기 베이시스트’… 현예는 선배가 지칭한 ‘자기 베이시스트’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자기 트리오에 들어와서 꼭 베이스쳐야 한다고, 'Village Catwood'에 같이 가야 한다고, 닳도록 말했다. 뾰족한 얼음이 심장을 관통하는 것 같았다.

“그럼, 미성 1호 대신 그걸 살게요.”

“미성 1호보다 훨씬 비싸요.”

“얼마죠.”

“300이요.”

예상 밖의 지출이었다. 그러나 사야 할 것이었고, 써야 할 돈이었다.

“네, 계좌로 보내드리면 되나요?”

“혹시 선배가 말한 베이시스트예요?”

“아마도요.”

“그럼, 'Village Catwood'에 갔다 와서, 지불해요. 거기 가려고 태어난 애니까.”

물기 없는 대화였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격렬한 강물이 몰아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사장이 악기를 꺼내 와 보여줬다. 헤드 머신 아래에는 ‘미성 31호’라고 쓰여 있었다. 3/4 사이즈에 풀 솔리드였고, 스프루스로 만들어진 상판은 빛을 받을 때마다, 미세한 무늬를 드러냈다. 테일피스는 네 갈래로 쪼개진 Golia였고, 브릿지는 빠른 연주에 적합하게 낮춰져 있었다. 넥의 곡률도 완만해, 지판 위를 바쁘게 달릴 때도, 손가락이 편했다.

“한 곡 연주해줄 수 있어요?”

소리를 듣기 위해 짧게 손을 푼 현예에게, 사장이 부탁했다.

“어떤 곡을 듣고 싶으세요?”

“Joy Spring’

현예는 눈을 감고 현을 왼손으로 모두 덮었다가, 연주를 시작했다. 깊고 굵은 음이 두껍게, 그러나 무겁지는 않게, 봄의 발자국을 그려나갔다. 커튼을 열고 창을 열어 햇빛을 받아내는 듯한 선율이었다. 헤드가 끝나고 나서, 솔로에 들어갔다. 주 멜로디의 코드에서 벗어 나, 넓은 영역으로 나아갔고, 음과 음을 잇기 위해 지판을 탐색했다. 튀어 나갈 듯이 벅차오를 때, 숨을 죽였고, 숨이 막힐 때, 바닥을 찼다. 피치카토를 하는 오른손이 어느새 타악기가 되어, 리듬을 만들어 냈다. 흥겨운 박자를 일순간 멈췄다 곧바로 주제로 돌아왔다.

화창한 날씨 같은 곡이 베이스를 울리고 지나갔다.

외롭게 박수 소리가 났고,

베이스 현을 천으로 닦았다.

서규

어떻게 등장시키는 게 좋을까.

월요일 휴무일 서규와 아소가 연습하고 있을 때 문이 열리고

서규 연습 아소와 연습

문이 열렸고, 거대한 장수풍뎅이가 들어왔다. 선임님

‘Bebop in Pastel’의 휴무일인 월요일, 오전부터 시작한 연습은 유난히도 잘 풀리지 않고 있었다. 점심을 샌드위치로 때우고 둘은 음악에 집중했다.

“너무 흥분해서 달리고 있어!”

“그건 오빠가 지나치게 조심스럽게 진행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끼는 거야. 나한테 맞춰.”

아소가 요구했다.

“아니야, 너한테 맞추면 편곡의 의도가 희미해져. 여기선 긴장보다 이완이 중요한 부분이야!”

서규는 양보하지 않았다.

으르렁거리며 아소도 물러서지 않았다.

“제 생각에도 이완시킨 뒤 포인트를 주는 게 적절할 것 같아요.”

익숙한 목소리에 서규와 아소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장수풍뎅이를 업고 있는 현예가 있었다.

“언니? 지금 근무 시간 아니에요?”

“선임님?”

“오늘 연차냈어요. 그럼 다시 시작할까요.”

“설마, 같이 하는 거예요?”

아소가 비명 지르기 직전의 목소리로 말했다.

“네, 도한 씨가 오기 전까지 제가 대신 연주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서규가 환하게 웃었다.

현예가 풍뎅이의 껍질을 벗겼다. 우람한 덩치를 자랑하며 콘트라베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급스럽게 윤나는 콘트라베이스였다. 튜너로 조율을 마친 현예가 서규와 아소가 연습하고 있던 ‘Romain’의 인트로를 연주했다. 서규가 자연스럽게 따라서 화음을 넣었고, 아소가 킥 드럼을 치고 들어왔다. 비로소 테마가 제대로 된 리듬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박차운은 이오케이와 함께 테이블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도너츠의 무대에는 방송에도 곧잘 출연하는 펑크 재즈 밴드 ‘제2 원소’가 연주 중이었다. 5박과 7박을 넘나드는 변태적인 박자에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칼박자 호흡이 밴드의 강점이었다. 현대 재즈 애호가의 입맛에 맞는 지적인 연주였다.

“어때, 잘하지?”

“명색에 매니저라는 사람, 이렇게 귀가 낮아서야 되겠어?”

이오케이가 씨익 웃었다.

“지난번 잼데이 오프닝 세션에서 베이스 쳤던 여자 기억해?”

차운의 질문에 이오케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신현예? 걘 내가 발랐잖아.”

“이름도 알고 있어? 의왼데?”

“동문이야.”

이오케이가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그 이름을 자신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게 불쾌한 듯했다.

“네가 그날 무대를 찢은 건 맞아. 그러나 신현예를 발랐다? 그건 좀 다른 이야기야. 지금 뜨고 있거든.”

“뭐? 그 허접이? 그냥 잠시 긱 뛰어온 거 아니었어?”

“그런 줄 알았어. 원래 베이시스트가 따로 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신현예가 없는 그 트리오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야. ‘Bebop in Pastel’이라는 클럽에서만 활동 중이지만, 단시간에 팬이 급속도로 불어났어. 무시하기엔 세가 꽤 커.”

““사람들 귀에 곤약을 박아뒀나? 그렇게 미숙한 테크닉을 듣고도 구린 걸 몰라?”

“테크닉이 부족한 건 맞아. 특히 네 기준에선 그렇겠지. 그런데 말이야. 이건 음악이야. 어떠한 방식으로든, 신현예는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있고, 그건 대중에게 먹혀들고 있어.”

“대중? 웃기는 소리. 껌딱지만도 못한 재즈 클럽에서 빌빌거리는 게 퍽도 대중에게 먹히는 음악이겠다.”

“너무 비아냥대지 마, 그러다 누가 들으면 네 이미지만 나빠지니까.”

“나빠지라고 그래.”

오만하기 그지없었다. 실력과 인지도만 아니었다면, 상종하지도 못할 부류였다. 차운이 이오케이와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블루코드가 한국에 다시 들어 올 것이고, 주변에 블루코드 이사진과 연이 있는 사람은 이오케이가 유일했다. 도너츠 매니저 경력을 바탕으로 블루코드 지배인 자리를 노리는 차운에게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지켜야 하는 끈이었다. 블루코드 서울 간판 아래 서기 전까지, 도너츠는 최고여야 한다. 어쭙잖은 사장을 데려다, 한 번 말아먹은 적 있는 블루코드는 아무나 지배인으로 세우지 않을 것이다. 그에 걸맞은 타이틀을 가진 사람, 그 사람이 자신이어야 한다.

제2원소가 현란한 연주를 끊임없이 펼쳐냈다. 날카롭고 세련된 프레이즈가 갈퀴처럼 귀를 긁고 지나갔다. 재즈 팬들의 수능금지곡이 될 것 같은 중독적인 멜로디가 반복되었고, 차운은 ‘Bebop in Pastel’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보았다. 어느새 계정 팔로워 수는 만 명이 넘어갔다.

아직 움직일 때마다 온몸이 뻐근했다. 왼쪽 다리가 이따금 저리긴 했지만,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다. 의사는 평생 안고 가야 할 통증이라고 했다. 여러모로 귀찮아진 몸이었다. 퇴원하고고 나서, 아소에게 일부러 연락하지 않았다. 정기 업로드되는 ‘Bebop in Pastel’ 라이브 스트리밍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서규 네에게 베이스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짙은 밤색 가죽 케이스를 들고, 도한은 재즈 클럽 도너츠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늘은 도너츠 잼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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