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보증재단 직원이 콘트라베이스를 못 숨김 13화

by 설다람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도한아, 트럼펫은 무기야. 찔러야지 살 수 있어. 망설이지 마.’

초등학교 학예회 때 도한은 할머니의 트럼펫을 꽉 잡고 교실 앞에 섰다. 그러고는 시작했다. 대망의 첫 솔로를. 말 그대로 진짜 솔로였다. 반주도 없었고, 박수도 없었다. 학생들과 부모님, 선생님은 꼼짝없이 5분 넘게 이어지는 괴기한 트럼펫 연주를 들어야 했다. 그날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낸 것은 도한의 할머니뿐이었다.

“할머니가 미안해.”

“뭐가요.”

“다른 애들은 다 엄마, 아빠가 오잖아.”

도한은 지하철 창문 밖으로 보이는 강을 바라보았다.

“괜찮아요. 엄마, 아빠는 할머니처럼 박수 안 쳐줬을 거예요.”

할머니는 도한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마우스피스를 트럼펫에 끼우고, 무대로 나갔다.

“무슨 곡 하실래요?”

비니 쓴 여자가 비브라폰 채를 들고 물었다.

“’Three Base Hit’요.”

“템포는?”

“210bpm으로.”

여자가 눈웃음을 지었다. 진짜? 라는 뜻이었다.

눈을 감고 도한이 트럼펫에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뿔테 안경의 민머리 드러머도 익살스럽게 웃으며, 빠르게 라이드를 치기 시작했다. '어디 한 번 들어와 봐라'라는 듯이.

하나둘 셋. 카운트를 하고,

도한인 숨을 불어넣었다.

창 같은 트럼펫 선율이 공기를 찢고 뿜어져 나왔다. 음의 벼락이 내리쳤고, 사람들은 놀란 표정으로 도한을 바라보았다. 격정적인 연주 속에서도 도한은 침착하게 평정을 유지했다. 고요한 폭풍우가 볼 속에서 몰아치고 있었다. 비브라폰은 거칠게 코드를 가로지르는 트럼펫을 따라가지 못하고, 계속 미스를 냈다. 3루타로 뻗어 나가는 듯한 솔로를 마치자, 신음소리가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배턴을 받은 비브라폰이 애를 썼지만, 기세를 이어가기엔 무리였다. 그렇게 ‘Three Base Hit’은 도한의 독주로 막을 내렸다.

다음 곡이 이어졌고, 도한을 제외하고 다른 세션들은 하나둘 교체되었다. 마지막 곡으로 ‘Verdandi’를 해치우고 났을 때, 도한도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온몸이 땀에 젖은 채로 무대에서 내려온 도한에게 박수가 쏟아졌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팀 구하고 있으면 우리 밴드로 올래?”

끝에 ‘Verdandi’를 함께 연주한 피아니스트가 제안했다.

“같이 할 사람들이 있어요. 아직 허락받진 않았지만.”

“우리보다 잘해? 꽤 괜찮지 않았어?”

피아니스트는 엄지를 꺾어 뒤에 있는 드럼과 베이스 주자를 가리켰다.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예요.”

“톤이 다른 거군.”

“그보다 조금 더 근원적인 거요.”

“그게 뭔데?”

“음, 그건 저도 아직 잘 모르겠네요.”

도한이 가방을 메고 작별의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냥 둘러대는 것 같은데? 여튼 맘 바뀌면 연락해!”

쾌활하게 피아니스트도 손을 흔들었다.

박차운은 Bebop in Pastel의 베이시스트였던 도한이 트럼페터가 등장한 것에 놀랐고, 예상치 못한 실력에 충격받았다. 그날 잼데이에서 가장 주목받은 뮤지션은 부정의 여지 없이, 도한이었다. 그런 도한이 도너츠의 터줏대감인 지소카도 밴드의 영입 제안을 거절했다. 도너츠의 단골 뮤지션인 지소카도에 일원으로 함께하면, 든든한 아군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도한이 도너츠를 발판 삼아, 다른 곳으로 간다면, 그건 나쁜 신호였다.

처음 서규네 트리오의 연주를 들었을 때 느꼈던 꺼림칙한 기분이 되살아났다.

“제 오디션 테이프예요.”

도한이 도너츠 잼데이 라이브 영상을 틀어주며 현예에게 말했다.

“트럼펫을 불었어요?”

“할머니한테 배웠어요. 어깨 너머로.”

“원래, 도한 본캐는 트럼펫이었어요.”

“이제 본캐가 베이스이신 분이 계시니, 저도 본캐로 참여해도 될까 여쭤보러 왔어요.”

“잼이야 언제든 환영이죠!”

서규가 두 팔을 벌렸다.

“아, 제 뜻은 정식 멤버로요. 신현예 트리오에 들어가고 싶어요”

결연한 목소리로 도한이 말했다.

“그건 리더가 결정할 일이네! 어때요. 언니?”

아소가 현예를 가리켰다. 서규와 도한이 현예를 바라보았다.

“트리오에는 안 돼요.”

현예가 고개를 저었다.

도한의 표정에 실망의 그늘이 내려왔다.

“트리오는 세 명이니까요.”

현예가 손가락 세 개를 폈다.

“그러니 쿼텟으로 가죠.”

마지막으로 새끼손가락을 편 현예가 미소지었다.

도한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소가 도한을 꽉 안아 주었다.

“자, 그럼 연습할까요. 트럼펫이 들어오면, 느낌이 완전 달라질 테니. 구성도 좀 바꿔야겠어요. 도한 씨 플레이가 잘 녹아들 수 있게. 오늘은 가볍게 잼한다 생각하고 편하게 합주해 봐요.”

현예가 일어 나 베이스를 잡으러 갔다. 도한도 트럼펫을 꺼내었고, 서규와 아소도 피아노와 드럼 앞에 앉았다.

“뭐부터 할까요, 선임님?”

서규가 물었다.

“Four로 가시죠.”

트럼펫을 데우기 위해 도한이 롱톤을 뽑아냈다. 그 소리에 맞춰 아소도 드럼셋을 정비했다. 현예는 조율을 끝내고, 도한에게 사인을 줬다.

출발 신호탄을 들은 경주마처럼, 트럼펫이 튀어 나갔다.

관객들은 질주하는 쿼텟 사운드에 열광했다. 서규가 쌓아 올린 견고한 화음의 계단을 밟고 올라간 도한이 선율의 비를 내렸다. 샤워하듯 관객들이 눈을 감고 음을 맞았다. 그 아래로 탄탄한 현예의 베이스가 흐름의 생기를 더했고, 아소의 드럼이 흥분을 고조시켰다. 화끈하면서, 청량한 맛에 사람들이 황홀경에 빠져들어 갔다.

피아노 솔로가 가장 높은 곳에서 끝났고, 일순간 모든 악기가 연주를 숨 멎듯, 한 템포 정지했다. 그다음 박자 첫머리에 베이스가 한 걸음을 내디뎠다.

아.

여기저기서 탄식과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발가락으로 물표면을 치듯이, 현예의 손가락이 현을 튕겼고, 음의 물결이 공기 중에 퍼졌다. 밀도 높은음이 가슴을 울렸다. 담백하면서도 멜로디컬한 라인이 귀를 잡아 끌었다. 도입부가 끝나고, 천천히 리듬을 복잡하게 변형시키며 올라가기 시작했다. 현예의 신호를 알아챈 서규가 화음을 확장했고, 아소가 풍부하게 스네어와 탐을 운용했다. 도한이 백비트 악센트로 리듬에 탄력을 주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고양감으로 사람들이 부유했고, 붕 뜬 기분에 취한 사람들이 눈을 감고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은밀한 기쁨을 느끼는 중이었다. 재즈를 처음 듣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갔다.

매 공연이 끝날 때마다, 관객을 늘었고, 인스타 계정은 어느새 만 명이 넘어갔다. 카운터를 볼 직원이 없어 시작한 키오스크 없는 무인 주문 시스템-알아서 꺼내 드시고, 계좌번호로 송금해 주세요-도 Bebop in Pastel을 힙하게 만드는 문화 요소가 되었다.

토요일 저녁, 유율은 남편과의 식사를 마치고 친구들을 보러 나갈 준비를 했다.

“잘 다녀와, 어디 간다고?”

“재즈 클럽.”

“듣기만 해도 지루한데.”

“나도 그럴 것 같아. 그런데 연랑이 졸라서.”

“아, CK엔터에서 일하신다는 분. 그럼 재밌는 공연하나 보네.”

“엔터에서 일한다고 취향이 다 재밌는 건 아니야. 생각 너무 단순해.”

“남편은 손을 흔들었다.”

“복잡한 거 질색이야.”

“재즈도 복잡하다던데.”

“그럼, 질색이야.”

“그놈의 질색. 나 간다.”

“응, 잘 다녀와. 차 조심하고.”

“내가 무슨 애야?”

“애기지. 애기.”

우쭈주 하는 남편을 두고, 유율은 재즈 클럽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동기 모임을 재즈 클럽에서라니, 연랑이는 여간 취향주도적인 인간이 아니었다. 오늘 모이는 셋 중에 연랑만큼 입김이 센 사람이 없기에, 결국 재즈 클럽에 가게 되었지만, 한켠에는 굳이 거길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박혀 있었다. 재즈처럼 듣기 어려운 음악을 돈을 내면서까지, 들으러 갈 필요가 있을까.

녹슨 철문을 밀고 들어간 유율은 친구들을 찾아 안으로 들어갔다. 연랑과 친구들은 무대 뒷자리에 자리를 잡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찍 온다고 왔는데도, 앞자리는 다 찼더라고 아쉬운 대로 여기 잡았어.”

시원한 목소리로 연랑이 말했다.

“유명한 곳인가 봐?”

오기 전에 어떤 장소인지 검색도 해 보지 않은 유율이 물었다.

“떠오르고 있는 곳이지. 내가 여기를 제일 먼저 발견했는데, 너무 뜨고 있어. 애석하지만, 기쁘다. 이 땅에도 재즈 붐이 오고 있는 거야.”

“아까부터 재즈붐 타령이야.”

단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떻게 발견했는데?”

“남편이 소개팅 날 길을 잃어서 가게를 잘못 들어갔어. 재즈 클럽이라길래, 당장 달려갔지. 그리고 ‘뱅’”

연랑이 무대 쪽으로 몸을 돌리고 박수를 쳤다. 연주자들이 한 사람씩 나와 각자의 악기로 갔다.

그때 유율은 익숙한 얼굴이 콘트라베이스를 잡는 것을 보았다.

“신 선임님?”

“뭐야 아는 사람이야?”

연랑이 베이시스트를 알아본 유율에게 물었다.

“회사 사람….”

“너 회사면, 신용보증재단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어떻게 이런 곳에서 연주하셔?”

단희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유율도 정확히 그게 궁금했다.

“대박이다. 현예 씨. 풀타임 연주자가 아닌데, 이 정도 실력인 거야? 미쳤다.”

연신 감탄하며 연랑은 현예를 바라보았다.

“이번에 들려드릴 곡은’Camouflage’입니다.”

곡을 소개하고, 현예가 줄을 튕겼다. 고요 사이로 음의 잔향이 퍼지다, 곧바로 드럼이 채찍질을 시작했고, 현예의 손가락이 달리기 시작했다. 거세어지는 리듬 위로 피아노가 겹쳤고 거대한 화음의 파도가 높게 올라갔을 때, 트럼펫이 선율을 불었다.

번개 치는 듯한 프레이즈가 사납게 뛰어다녔고, 베이스가 격렬하게 질주했다. 재즈가 이런 거였나? 카페 재즈 플레이리스트를 생각했던 유율은 박진감 넘치는 음악에 놀랐다. 손가락 끝이 찌릿찌릿해져 왔다. 연랑은 이미 한껏 흥분해 비명 같은 환호성을 질렀다. 단희도 연랑을 보고 웃다가 따라서 감탄의 신음을 뱉었다. 유율이 분위기를 타지 못하고, 부유하고 있자, 연랑이 유율의 손을 잡고 들어 올렸다.

“빨리 소리 질러”

귀에다 대고 연랑이 속삭였다.

“Yeah…”

“조금 더 자신 있게!”

“Yeah!”

살면서 처음으로 연주 위에 신음을 던진 유율은 묘한 전율을 느꼈다.

“선임님, 하나 여쭤봐도 되나요?”

“백두산 두부집 현장실사 건 관련인가요?”

“아뇨, 혹시 악기 연주하세요? 그 왜 재즈에서 쓰는 엄청 커다란 거”

유율이 고개를 바짝 가까이 대며 작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팔은 크게 벌리는 기묘한 동작을 했다. 볼썽사나웠는지, 현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니요.”

“아, 정말요? 전 또, 어제 ‘Bebop in Pastel’이라는 재즈 클럽에 갔는데, 베이스 치는 분이 선임님이랑 똑같이 생기신 거예요. 이름도 같고. 역시 아니죠? 선임님이 그런 걸 하시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유율의 말을 들은 현예는 코앞까지 다가와 속삭였다.

“선임님만 아시나요?”

살기까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네…”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말아 주시면 감사하겠어요.”

“물론이죠. 저는 그냥 감동 받았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제대로 된 재즈는 처음 들었거든요. 뭐랄까. 가슴이 부풀어 오르다 터질 것 같았어요.”

감상 소감을 말하자, 현예의 표정이 누그러뜨려졌다.

“고마워요.”

“다음엔 남편도 데리고 갈게요!”

현예가 한 번 더 감사를 표했고, 둘은 함께 사무실로 돌아갔다.

화장실 칸에 있던 윤 책임은 두 사람이 완전히 나가고 나서 듣고 밖으로 나왔다.

‘신 선임이 재즈 클럽에서 연주를 한다고?’


매거진의 이전글신용보증재단 직원이 콘트라베이스를 못 숨김 1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