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등이 없으면 1등도 없다

경쟁하며 함께 파이를 키우자

by 김이울

“2등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면서 삼성의 혁신과 재도약을 촉구했던 분이 어제 돌아가셨다. 하지만, 2등이 없으면 1등도 없다. 2등을 하다가 1등으로 올라서기도 한다. 삼성도 그랬고, 김연아 황영조도 그랬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황영조 선수는 10여 명의 선두그룹에서 한참을 달리다가, 33킬로미터 부근에서는 세 명이 달렸고, 잠시 후에는 일본의 모리시타와 둘이서 각축을 벌이다, 40킬로미터 부근의 몬주익 언덕에서 치고 나가 우승했다. 이처럼 같이 뛰는 경쟁자들이 있어야 기록과 성적이 향상된다. 아사다 마오가 있었기에 김연아도 더 분발했을 것이다. 이처럼 스포츠 경기에서든 일반 사회에서든 적절한 경쟁은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

LG전자는 1958년 금성사로 출발하여 라디오, 선풍기, TV 등 가전 분야를 선도하는 1등 기업이었다. 삼성전자는 1969년에 뒤늦게 출발했지만 금세 LG를 추격했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국내 전자제품 시장을 양분해 왔다. 50여 년에 걸친 경쟁을 결산해보면, LG는 여전히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을 비롯한 가전에서 꾸준한 성과를 내고 있다. 반면, 삼성은 부가가치가 낮은 가전을 해외 생산기지로 옮기고 있으며, 세계 최고 수준의 휴대폰 및 반도체 회사로 도약했다.


두 회사는 50여 년의 오랜 라이벌 의식과 선의의 경쟁을 통해 파이를 키우고 함께 성장했다. 지금은 종업원, 매출액, 영업이익, 시가총액 등 각종 지표에서 삼성이 크게 앞서가고 있지만, LG도 많이 성장했다. 가늘고 길게 장수하는 2등도 나름의 장점이 있다.

1984년에 시작된 우리나라 이동통신 서비스는 1995년까지 011(SK텔레콤), 017(신세기통신) 두 회사가 양분하고 있었다. 1996년 016(KTF), 018(한솔PCS), 019(LG텔레콤) 등 세 회사가 시장에 추가로 진입했다. 다섯 회사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다. 그 결과 이동통신 가입자는 1984년 3천여 명에서 1995년 100만 명, 1998년 1000만 명, 2010년 5000만 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2020년 10월 현재 인구(5200만 명)보다 이동통신 가입자(약 7000만 명)가 훨씬 많다. 지금은 세 회사(SKT, KT, LGU+)로 정리되었지만, 이동통신 분야의 경쟁 정책은 서비스는 물론이고 관련 제조업, 설비, 인프라 분야에까지 긍정적 파급효과를 초래했던 성공 사례로 꼽힌다.

강력한 경쟁자는 서로를 자극하는 메기와 같다. 메기 효과(catfish effect)는 바다에서 잡은 정어리 수족관에 천적인 메기를 넣어놨더니 전에 비해 많은 수의 정어리들이 싱싱하게 살아 있었다는 북유럽 어부의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역사학자 토인비도 ‘도전과 응전’이 인류 문명을 발전시킨 원동력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경쟁이 개인과 조직, 기업, 경제 전반의 발전에 유익하다는 많은 사례가 있다. 마라톤 경주, 삼성과 LG의 경쟁, 이동통신서비스의 경쟁 정책도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규모가 작다고 해서 중소기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지원하는 것은 옛날 방식이다. 이미 2005년 봄에 “중소기업 스스로 혁신과 구조조정을 촉진해, 전문화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것을 주문”한 분이 바로 故노무현 대통령이었다. 중소기업의 경쟁과 혁신을 촉진하고 관련 정책의 효율성 제고를 주문했다.


혁신적인 기업을 지원하는 것이 좀비와 낭비를 최소화하는 지름길이다. ‘중소기업부’를 '혁신기업부'로 바꿔야 하고, 중기부와 산업부의 역할 조정도 필요하다. 중기부는 매년 '글로벌 강소기업'을 선정하여 발표하고, 산업부는 '월드클래스 300' 기업을 선정한다. '한국형 히든챔피언' 지원 정책도 있다. 중기부는 최근 '예비 유니콘' 15개사를 선정해 발표한 바 있다. 비슷한 정책들 간의 중복에 따른 부작용보다 경쟁의 긍정적 효과를 기대해 본다.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올 상반기에 시가총액이 크게 증가한 기업들이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씨젠, 엘지화학, 네이버, 카카오, 쿠팡, 엔씨소프트 등이다. 대부분 바이오(B), 배터리(B), 인터넷(I), 게임(G) 등 新성장동력 분야의 기업들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BBIG 트렌드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그럴수록 전통산업 분야의 기존 대기업들도 바빠져야 한다. 대기업들이 청년정신과 도전정신을 되살리고 新성장동력을 발굴할 기회를 얻으려면, '메기'가 필요하다. 비교적 선전하고 있는 삼성조차도 "시간이 없다"고 서두르는 비상시국이다. 기업형 벤처투자(CVC)를 활성화하고 新성장동력의 발굴을 지원하는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 "재벌 대기업이 기존 벤처생태계를 잠식할 수도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지만, 상생하고 윈윈하는 지름길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창업과 성장의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 창업한 기업이 점차 강소기업으로, 유니콘과 히든챔피언으로 성장해가는 건강한 생태계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경쟁하면서 파이를 키우고, 경쟁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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