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역전? 취업해서 월급받는 것으로는 쉽지 않다. 2005년부터 온라인을 중심으로 화장품과 패션 상품을 판매하던 ‘스타일 난다’가 2018년 다국적 화장품업체 로레알에 매각됐다. 인수합병(M&A)을 통해 30대 중반의 김소희 대표는 5천억 안팎의 자산가로 변신했다. 13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으로 성취한 '인생 역전'이다. 이처럼 취업이 아니라 창업을 하면 가능성이 높아진다. 준비된 창업으로 시련을 극복하고 회사를 키워서 매각(M&A)하거나, 주식시장에 상장(IPO)함으로써 투자금을 회수(exit)할 수 있고, 수십 년 이상 사업을 운영할 수도 있다.
반듯하고(decent) 오래가는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 기업가정신으로 충만한 기업가 1인이 수천, 수만,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낸다. 중국의 마윈이 1999년 설립한 알리바바의 임직원은 2020년 현재 10만 명에 육박한다. 미국의 제프 베조스가 1994년 설립한 아마존의 임직원은 2019년 말 기준 80만 명에 달한다. 故정주영 회장이 1950년 설립한 현대건설의 임직원은 2020년 현재 6,500여 명이고, 현대건설이 속한 현대자동차그룹만 계산해도 14만여 명에 달하며, 현대백화점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산업개발그룹 등 범현대가를 아우르면 훨씬 더 많아진다.
피터 드러커는 《혁신과 기업가정신》(1985)에서 기업가를 새롭고 이질적인 것에서 유용한 가치를 창출하고, 변화에 대응하고 도전하여 기회로 삼는 사람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수많은 기업가 중에서 자신의 인생 역전은 물론이고, 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친 기업가를 몇 분 소개해 보려고 한다.
고 정주영 회장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무에서 유를 창조한 기업가다. 그의 좌우명이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임자, 해봤어?”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시련과 실패를 도전정신으로 극복했다. 아산(故 정주영 회장)은 1933년 강원도 통천군 아산리 시골집을 떠났다. 네 번째 가출이었고 그의 나이 열아홉이었다. 인천 부두에서의 막노동, 서울의 쌀 가게와 자동차 정비업 등 15년 이상의 경륜을 쌓은 후 1950년 현대건설을 세웠다. 6.25 발발 이후 국민들은 어려운 시기를 보냈지만, 현대건설은 미군부대 발주 공사에서 선진 기술을 배웠고 돈도 벌었다. 1965년 태국의 ‘파타니-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했고, 1976년 사우디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수주했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시장으로 지평을 넓혔다. 강원도를 떠나 맨 몸으로 시작한 그의 장정은 ‘메이드인 코리아’의 세계 진출로 이어졌고, 건설, 자동차, 조선, 전자, 철강, 유통, 증권 등으로 사업 영역도 넓어졌다. 정든 고향과 고국을 벗어나 글로벌 기업인으로 거듭났다. 근검과 절약이 몸에 배었고, 창의성과 도전정신으로 난관을 극복했으며,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기업가정신의 전형이었다.
제프 베조스는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지만 펀드매니저가 되었다. 1994년 그의 나이 30세에 연봉 100만 달러를 받았던 월가의 헤지펀드 회사를 과감하게 박차고 나왔다. 해마다 2배 이상씩 급증하는 인터넷 가입자 추세를 보고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내 열정을 따르려고 덜 안전한 길을 택했다. 그 선택이 자랑스럽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지인들로부터 200만 달러를 모금하여 차고에서 온라인 서점 아마존을 창업했다. 2020년 현재 아마존은 책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을 온라인에서 파는 회사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벗어나 가장 혁신적인 회사로 변신했다. 전자책 ‘킨들’, 음성인식 스피커 ‘에코’, 무인결제, 인공지능(AI), 드론, 클라우드서비스, 자율주행, 우주여행 등 첨단 서비스 개발에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존 성공의 비결 중 하나는 ‘고객 집중’이다. 온라인 쇼핑몰 최초로 ‘고객 리뷰’를 올릴 수 있게 만들었다. 고객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객의 불편함을 덜어주는 새로운 서비스를 끊임없이 도입했다. 또 하나의 성공 비결은 ‘실패’다. 그는 “아마존은 세상에서 가장 실패하기 좋은 회사입니다. 실패와 발명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직원들이 대담해지도록 독려하는 것이 저희 업무”라고 말했다.
마윈도 베조스처럼 1964년생이다. 그 역시 실패와 도전을 통해 성공한 사람이다. 재수 끝에 고등학교에 들어갔고, 삼수 끝에 대학에 들어갔다. 수학 점수가 말썽이었다. 첫해에는 1점, 두 번째는 19점, 세 번째는 79점을 받아 항저우사범대학 영어교육과에 합격했다. 대학 입시에 낙방한 후 호텔 입사 면접에 들어갔지만, ‘서비스업에 부적합한 외모’라는 이유로 낙방했다. 162cm, 45kg의 왜소한 체격에 얼굴도 호남형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런 좌절과 시련이 그를 단련시켰다. 항저우전자공업대학 영어 강사로 취업했지만 오래 있지 못했다. 1992년 항저우에 ‘하이보(hope translation) 번역회사’를 차렸고, 1995년 인터넷 홈페이지 제작업체 ‘황엽’(China Yellow Page)을 설립했다. 1997년에는 중국 대외경제무역부와 공동으로 ‘온라인 중국상품거래시장’ 제작과 사업에 참여했다. 여러 실패를 밑천 삼아 알리바바를 세웠다.
1999년 알리바바 창업 이후 2014년 뉴욕 상장에 이르기까지도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창업 이후 1단계 도약을 위한 투자자금 조달을 위해 접촉했던 40여명의 투자자로부터 딱지를 맞았다. 그런 역경을 딛고 골드만삭스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으로부터 각각 500만달러(약 57억원)와 2000만달러(약 230억원)의 거금을 유치할 수 있었다. 그 이후 승승장구하던 알리바바에 다시 브레이크가 걸렸다. 준비 없이 실리콘밸리에 연구소를 세웠다가 돈만 날렸다. ‘야후 차이나’를 인수하고 검색 분야에 진출했다가 결국 포기했다. 알리바바는 밖으로 나가기 전에 먼저 내실부터 키워야 하며, ‘전자상거래’라는 핵심역량에 집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1999년 창업 당시 18명이었던 임직원이 지금은 10만여 명(2020년 10월)에 달한다. 기업가치(시가총액)는 약935조원(20년10월)에 달하여, 네이버(46조 원)의 20배, 현대자동차(36조원)의 26배에 이른다. 마윈은 2019년에 회장 자리를 전문경영인에게 물려주고 55세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교육사업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교육자에서 기업가로 변신했다가 다시 교육자로 돌아간 셈이다.
준비된 창업이 중요하고 기업가정신이 중요하지만, 우리의 사정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세계기업가정신발전기구(GEDI)에 따르면, 2018년 우리의 기업가정신 지수는 54.2점(24위)으로 OECD 평균(59점)보다 4.8점이나 낮았으며, 호주(5위), 홍콩(13위), 대만(18위) 등 주요 아시아·태평양 국가보다 한참 아래에 있었다. 기업가에 대한 '직업적 선호도'가 특히 낮았는데, 주요 52개국 중 49위에 그쳤다. 기업의 국제화 수준 지수도 OECD 평균(0.68)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0.32를 기록했다. 암웨이에서 발표하는 글로벌 기업가정신 보고서(AGER)에 의하면, 한국은 2016년 23위에서 2018년 33위로 하락했다. 창업을 가정했을 때 "가족이나 친구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줄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54%에 그쳤다. 글로벌과 아시아 평균이 각각 70%임을 고려하면 매우 낮은 수치다.
지금 정부에서 신설한 중소벤처기업부가 중심이 되어 기업가정신 함양과 창업환경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신설법인과 벤처투자 실적은 전년대비 큰 폭의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정책금융기관의 연대보증을 폐지했다. 1.4조원의 묵은 채권을 해소하여 2만 명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부여했다. 기술력 있는 기업에게 과감히 기술금융을 공급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노력들이 밑거름이 되어 기업가정신으로 충만한 스타트업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속속 생겨나기를 바란다. 한국경제의 미래는 기술혁신형 창업, 기업가정신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