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업이 오래 살아남을까?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니 꽃이 좋고 열매가 많으며,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그치지 않으니 내(川)를 이루고 바다로 나아간다.” 용비어천가의 제 2장인데, 전체 125장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문장이다. 나라를 세운 선조들의 유훈(‘용비어천가’ 등)을 열심히 실천한 왕들이 있었기에 조선 왕조가 500년을 넘길 수 있었다. ‘뿌리 깊은 나무’ 같은 기업, ‘샘이 깊은 물’ 같은 기업이 장수한다. 한 우물을 깊이 파는 기업이라야 ‘융합’과 ‘연결’의 기회도 찾아온다.
‘히든 챔피언’(세계시장 점유율 3위 이내, 5조원 이하 중소기업) 연구로 유명한 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2014)에 따르면, 한 우물을 오랫동안 깊이 있게 파는 기업, 시장을 선도하고 세계시장을 개척하는 기업, 최고수준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연구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고 지속적으로 혁신하는 기업, 고객에 대한 밀착 서비스를 빠르게 제공하는 기업이 살아남는다.
동영상으로 수술 부위를 보여주는 시스템을 개발하여 세계 각국의 병원과 의사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독일의 히든챔피언 ‘브레인 랩’도 1989년부터 한우물만 파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자리에 올라올 수 있었다. 독일은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기술을 연마한 마이스터(명장)가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으며, 대를 이어 경영하는 가족기업들이 널려있다. 그런 토대 위에서 벤츠, BMW, 폴크스바겐, 지멘스, 보쉬, ‘SAP' 같은 세계 최고의 기업들이 수두룩하다. 1668년에 설립된 제약회사 ‘머크’(Merck)는 유서 깊은 가족기업이면서 동시에 세계 최고의 기업이다.
일본 교토는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데, 천년 이상 묵은 가게가 여럿 있다. 그 중 하나가 ‘이치와’(一和, 一文字屋 和輔, 이치몬지야 와스케)다. 창업자의 24대손이 오늘도 변함없이 인절미(아부리 모찌)를 굽고 있다. 맛있는 쌀을 원료로 떡을 만들고, 대나무 꼬치에 끼워서, 숯불에 구운 후 맑은 조청 같은 소스를 발라서 내놓는다. 좋은 재료로 정성껏 만들어서 친절하게 파는 것이 천년을 버틴 ‘이치와’의 비결이다. 정체불명의 맑은 조청 같은 달콤짭잘한 소스가 비장의 무기다. 전통과 혁신이 공존하는 도시 교토에는 교세라 이외에도 닌텐도, 와코루, 오므론, 일본전산, 무라타제작소, 호리바제작소 등 세계적 기업들이 여럿 있다. 교토는 묵은 도시가 더 아름답고, 묵은 기업이 더 강하고 더 혁신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독일이나 일본의 제조업이 강한 것은 이처럼 한 우물을 파는 사람과 기업이 존경받는 사회적 토대가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국내외 경제의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다. 로봇의 활용과 자동화가 더욱 활발해 지고, 온라인 강의, 온라인 쇼핑, 재택근무, 해외직구 등 소비 행태와 라이프 스타일이 크게 변하고 있다. 거리에 돌아다니는 학생이나 직장인, 관광객이 줄어듦에 따라 오프라인 중심의 자영업은 굉장한 고통을 받고 있다. 많은 식당과 가게들이 문을 닫고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가게나 식당, 기업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지만, 반대로 웃고 있는 분들도 있다. 보건-의료-바이오 관련 선도적 기업들뿐만 아니라, 인터넷 관련 서비스업, 온라인 판매업, 택배업, 온라인 게임, 온라인 강의나 재택근무를 지원하는 솔루션 서비스업 등이 그렇다.
코로나19와 같은 대규모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기업들이 있는데, 기본에 충실하고 오래 준비하고 꾸준히 노력하는 기업, 한 우물을 오래 그리고 깊이 판 기업, ‘샘이 깊은 물’ 같은 기업이다. 예를 들어, 와이지원(절삭공구), 홍진크라운(오토바이헬멧), 모텍스(전자저울), 오로라월드(캐릭터완구), 캐프(와이퍼), 유닉스전자(헤어드라이기), 쓰리세븐(손톱깎이) 등이 한국의 ‘히든 챔피언’이고, ‘샘이 깊은 물’ 같은 기업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계보건기구(WHO)에 보고된 2019년 연말부터 발 빠르게 준비하여 진단키트를 국내 최초로 개발해낸 ‘씨젠’도 20년 동안 한 우물을 판 기업이다. 20여년 흘린 땀과 축적의 시간이 올해 드디어 빛을 발하고 있다. 씨젠의 진단키트를 구해달라는 해외 각국의 러브콜이 올해 연초부터 쇄도했다. 그 결과 올해 씨젠의 매출과 수익은 급증하고 있다. 주가는 연초대비 10배가량 올랐다. 씨젠의 설립자는 안정적인 대학교수의 자리를 박차고 험난한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미국에서 생명공학 박사 학위를 받고 국내에 들어와 생명공학 교수를 하고 있었는데, 안정된 직업을 버리고 창업자와 기업인이라는 힘든 길을 선택한 것이다. 과감한 도전과 고된 노력의 결과가 20년 만에 결실을 맺고 있다.
한국은 독일이나 일본과 달리 산업화의 역사가 짧고, 시장경제와 기업가정신의 토대 역시 일천하다. 청년들은 창업보다는 취업, 기업인보다는 공무원을 선호하고 있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이 있듯이, 기업가정신을 장려하고 창업을 활성화하고, 마이스터(명장, 장인)와 기업인들이 존경받는 사회적 분위기를 꾸준히 만들어 가야 한다. 건물주나 공무원이 청년들의 꿈인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 기술개발과 창업에 도전하는 청년들이 많아지는 나라, 한 우물을 깊이 파는 마이스터와 기업인이 존경받는 나라를 만들어야 미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