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글에서, ‘샘이 깊은 물’ 같은 기업, ‘뿌리 깊은 나무’ 같은 기업, 한 우물을 오랫동안 깊이 파는 기업이 오래간다고 했다. 그런 기업은 전문성과 차별화된 가치를 보유하고 있으므로 불황(외풍, 위기)에 강하다.
‘샘이 깊은 물’은 산골짜기나 동네 우물에 머무르지 않고 강으로 바다로 나아간다. 한 우물을 오랫동안 깊이 있게 판 기업에게 한반도 남쪽은 너무 좁다. 우물처럼 답답하고 비좁게 느껴진다. 바다처럼 넓은 세계시장으로 나아가는 게 자연스럽다. 세계시장에서도 통하는 중소기업을 ‘글로벌 강소기업’이라고 부른다. ‘글로벌 강소기업’은 전문성과 차별화된 가치를 지니고 있고, 드넓은 세계시장을 무대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므로, 다른 기업에 비해 불황에도 더 강할 수밖에 없다.
세계시장에서 통하는 글로벌 강소기업의 애칭은 ‘고고클럽’이다. ‘고고클럽’이란 ‘온라인을 활용하여 세계시장을 성공적으로 공략하는 글로벌 강소기업’이다. ‘go global & online’을 줄이면 ‘고고’가 되는데, 필자의 작명으로, 1970년대의 ‘고고’와는 전혀 다른 의미다.
1964년 미국 LA의 ‘위스키 어 고고’(Whisky a Go-Go)라는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던 ‘자니 리버스’(Johnny Rivers)라는 가수가 유행시키기 시작했다는 ‘고고’ 춤은 복잡한 스텝이 따로 없고 파트너도 필요 없는 로큰롤풍의 자유분방한 춤이었다. 그래서 인기였다. 1970년대 한국의 살벌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짓눌려있던 청춘들에게 ‘고고’ 춤은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대부분의 호텔이나 도심의 번화가에는 어김없이 ‘고고’ 장이 있었다. 1970년대의 청춘남녀들이 ‘고고’ 장에서 신나게 춤을 춘 것처럼, 2020년대에는 중소기업인들이 ‘고고클럽’에서 신나게 사업하고 성과를 거두길 바란다.
지금 이 시점에서 왜 ‘고고클럽’인가? 왜 글로벌이 중요하고 세계시장이 중요한가? 히든 챔피언을 가장 많이 배출한 독일의 중소기업들은 좁은 내수시장을 벗어나 세계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창업 초기부터 세계시장을 염두에 두고 준비한다. 반면, 우리 중소기업은 세계시장을 겨냥한 제품개발과 마케팅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물론 세계시장 공략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며 실패 확률도 높다. 그런데 요즘 젊은 벤처인들 사이에서는 ‘본 글로벌’(Born Global)이 유행어다. 그만큼 꿈이 크고 도전적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무역협회나 코트라(kotra), 중소기업진흥공단 같은 기관에서도 스타트업들의 해외시장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은 물론 네이버, 넥슨, 엔씨소프트 등도 결국은 세계시장을 성공적으로 공략했기에 오늘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다.
왜 온라인인가? 중소벤처기업이 해외시장을 혼자 힘으로 공략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나라의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를 활용하여 글로벌 전자상거래 플랫폼에 접속한다면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세계시장의 많은 소비자들이랑 직접 연결하고 소통할 수 있다.
온라인을 가장 성공적으로 활용한 IT업체가 미국의 '아마존'이고, 중국의 ‘알리바바’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와 알리바바의 마윈은 둘 다 1964년생이다. 둘 다 1990년대에, 아마존은 1994년, 알리바바는 1999년에 창업했다. 둘 다 정보통신과는 거리가 먼 직업을 갖고 있었다. 제프 베조스는 유망한 펀드 매니저였고, 알리바바는 실패한 영어 강사였다. 인터넷과 온라인 쇼핑의 비전을 보고 과감하게 도전해서 성공했다. 최근 미국의 유명 백화점들이 무너지고,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파산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아마존’의 매출과 수익은 계속해서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무인결제, 드론 배송, 클라우드 서비스 등 첨단기술과 서비스를 통해 고객들을 온라인에 묶어 놓고 있다.
‘알리바바’는 중국의 ‘아마존’이다. 중국의 온라인 쇼핑몰과 간편결제 서비스 등을 통해 중국의 청년들을 휴대폰과 온라인에 붙잡아 놓고 있다. 알리바바는 해마다 중국판 블랙 프라이데이인 ‘광군제’에서 하루에만 수십조 원의 매출을 올린다. 알리바바, 타오바오, 티몰, 허마셴셩, 알리페이, 위어바오, 알리왕왕 등 최첨단 서비스는 과거에 우리가 알던 중국이 아닌, 전혀 새로운 중국을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도 네이버, 카카오,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 쿠팡, 비바 리퍼블리카 등 ICT 서비스(인터넷 포탈, SNS, 게임, 인터넷 쇼핑, 물류, 핀테크 등)를 중심으로 성공한 기업들이 제법 있다. 홍진크라운, 와이지원, 유닉스전자, 오로라월드 등 제조업을 중심으로 성공한 히든챔피언들도 있다. 그러나 히든챔피언, 유니콘기업, 글로벌 강소기업, ‘월드클래스 300’ 등 정부가 선정하는 어떤 기준에서 평가해 보더라도 양적으로, 질적으로 우리 중소기업들이 가야할 길은 아직 멀기만 하다.
코로나의 확산으로 경기가 어려운 지금이야말로 세계시장 개척을 장려하고, 글로벌 강소기업의 육성에 매진할 때다. 투자는 불경기 때 시작하고, 창업은 남들이 주저할 때 시작해야 성공확률이 높다. 불황에 강한 기업의 육성이 절실하며, 기업이든 나라든 지금이 투자의 적기다. 한국경제는 과거의 관행과 경로, 성공의 함정에서 벗어날 때다. 지금까지는 대기업 중심 경제구조로 큰 성과를 거뒀다면, 앞으로는 중소벤처기업 중심의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하체가 튼튼한 경제로 전환해야 미래가 있고 지속가능하다.
중소기업을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고고클럽’으로 변화시킬 인재들을 끌어 모으려면 많은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 흔히 중소기업 CEO들은 인재가 부족하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그런데 유능한 청년들은 중소기업을 쳐다보지 않는다. 지금 당장 대기업 수준의 현금 보상을 할 수 있는 중소기업은 많지 않다. 따라서 현금과 더불어 다른 매력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수평적이고, 양성 평등하며, 일-가정이 양립하는 기업문화를 팔아야 한다. 빠르고 효율적인 의사결정, 투명한 거버넌스, 환경 친화적이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이미지로 호소해야 한다. 스톡옵션 등 성과보상제도의 활성화를 통해 기업의 성장과 직원의 성장이 연동되어야 한다. 그런 조건이라야 우수한 인재들이 미래를 보고 중소기업에 올 수 있다. 참고로, 삼성이 오늘날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이유 중 하나는 ‘인재제일’의 사훈을 내걸고, 창업 초기부터 업계 최고의 처우를 통해 국내 최고의 인재를 모으려고 애썼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