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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뺨 Jun 17. 2020

달의 요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동네요가 동네명상 #3

  처음 요가와 명상을 접했을 때는 직장인이었다. 하루 종일 이리저리 치이다가 요가와 명상을 하러 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내적 갈등을 했었다. 할 것이냐 말 것이냐에서는 역시나 하는 것을 추천한다. 무거운 몸과 어두운 마음을 질질 끌고 무표정으로 요가원에 들어선다. 밝게 인사해주는 선생님과 직원들을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 입구가 혼란한 틈을 이용해서 라커룸으로 도망쳐 갔다. 애기 곤충이 탈피를 하고 어른 성충(成蟲)이 되듯 사무실 복장을 벗고 요가복으로 갈아 입으면 곧장 성인(聖人)이 된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용서할 준비가 된 기분이었으니까.

    

  주중에는 하루의 해가 저물 때 요가와 명상을 했다. 정시 퇴근을 하면 달이 뜬 저녁에, 야근을 하면 별까지 뜬 밤에 음(陰)의 기운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반면에 주말에는 해의 기운을 받는 아침부터 밝은 햇살을 받으며 양(陽)의 기운이 가득한 요가와 명상을 했다. 지금 돌이켜보니 음양의 기운이 의도치 않게 균형을 잡은 셈이었다. 요새는 정적인 요가를 한 분야로 만들어서 달의 요가, 인요가(Yin Yoga)라고도 부른다. 바빴던 몸과 분주했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며 한 동작에 한참을 머무르는 것이다. 동양의 음양오행 사상을 요가에 접목한 서양인들의 감각이 돋보인다. 그런 이유로 언젠가는 미국, 뉴욕에 가서 그들의 요가를 배워보고 싶기도 하다.



    

  불교대학원의 명상학과에 들어가려는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인요가처럼 동양의 보석 같은 철학과 사상들이 현대에 적용되지 못하고 잊혀지는 것이 못내 아쉬워서이다. 서양인들은 고귀하게 대하는 우리만의 것들을 우리 스스로 발굴하고 개발해서 현대인들에게 유용하게 전파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어느 글에서 읽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은 많아졌으나, 삶의 문제를 알아차리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는 내용의 비지니스 글이었다. 동시에 '요가디피카'라는 책에서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글도 읽는다.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삶은 무엇인지 가치관의 충돌이 일기도 한다.

  

  가치관의 충돌은 때때로 눈앞에서 현실로 펼쳐진다. 요기로서의 삶을 선택한 이상 오늘 하루 요기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어젯밤 잠들 때 계획했던 것들을 새벽부터 실행하지 못 할 때 스스로 좌절감을 맛본다.

  '나는 근성이 없어. 글러 먹었어.'

  '어차피 되지도 않는 아사나들 뿐이고 명상도 할 때 찰나 뿐이야.'

  '나 같은 게 뭘 하겠다고.'

자신의 채찍으로 자기 등을 흠씬 내리친다.


  요가와 명상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고 전진해 나아가는데 있어서 바닥에 깔린 삶의 가치관은 이렇다. 일찍 일어나서 일찍 자자. 단순하고 명쾌하기 그지 없다. 그러나 지키기란 상당히 어렵다. 코로나로 모든 수업이 휴강을 하던 때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바이러스 전파력이 높다고 여겨지는 곳이나 확진자가 나왔을 때 사회적 책임이 막대하다고 여겨지는 곳들은 수업을 재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중에 최소한의 생계 유지를 위해서 수업을 하나 구했다. 그런데 수업 시간이 밤 10시이다. 집에서 수업 장소가 멀지는 않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다보니 시간이 제법 걸린다.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므로 기꺼운 마음으로 발걸음 가볍게 개인 수련을 마치고 수업 장소로 이동했다.

  

  가치관의 충돌은 수업을 마치고 회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에 택시 안에서 불쑥 찾아왔다. 코로나로 인해서 지하철 운행이 단축되었음을 실감하지 못하고 지내다가 어제서야 몸소 체감한 것이다. 지하철 환승을 하려는데 역무원이 안전봉으로 입구에서 안내를 했다.

  "3호선 운행 종료되었습니다."

  '아...'

서둘러 네이버 지도를 켜고 집에 가는 길을 검색했습니다. 다행히도 버스를 두 번 더 갈아타면 갈 수 있었어요. 버스정류장을 찾아서 걸음을 재촉합니다. 하나의 버스는 탔지만, 다른 하나의 버스는 막차로 이미 버스정류장을 통과했습니다. 날은 선선하고 아파트 단지를 돌던 중에 내려서, 낯선 곳이었지만 무섭지는 않았어요. 이제는 마지막 방법으로 카카오 택시를 부릅니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합니다. 자정을 훌쩍 지난 12시 35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자.

이제 막 수업을 시작한 요가 강사에게 코로나의 시련은 선택의 폭을 좁게 만들고 그 의지를 시험하려 듭니다. '늦은 시간의 수업이라 수업료가 조금 더 높았던 데에는 이런 까닭이 있구나.'라고 뒤늦게 깨닫습니다. 밤 10시에도 요가 수련을 위해 찾아오신 분들의 길었을 하루를 생각하면 그런 가치관이나 의지쯤은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새벽에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꾸만 주저 앉아 쉬고만 싶습니다. 집에서 딸의 귀가를 기다리며 잠 못 이룰 어머니에게 괜히 화가 납니다. 서로 따로 살고 있었더라면 늦은 새벽에도 샤워를 시원하게 하고 잠들텐데. 어머니의 수면에 방해되지 않도록  까치발을 들고 잠 잘 준비를 해야겠구나.


  밤 10시, 한 장소에 모인 사람들과 달의 요가 'Yin Yoga'를 하자며 수업을 열었을 때의 마음은 어디로 갔을까요. 택시비 7500원에 속이 쓰라렸기 때문일까요.


  집에 도착해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방에 불을 켜놓은 채로 딸의 무사 귀환을 바라던 어머니가 마중을 나옵니다. 오늘 첫 수업은 어땠는지, 매번의 귀가가 이렇게 늦어지면 안전할런지 등을 물어보십니다. 어머니에 대한 반응은 빗나갔습니다. 마음 편하게 샤워를 하고, 그대로 뻗어서 잠을 자고 일어났죠. 새벽 5시에 한 번, 아침 7시에 한 번 눈은 떠졌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감고 아침 9시까지 누웠다가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했죠. 마음이 무겁지 않습니다. 아마도 수업은 계속 할 것이고, 회원들에게 양해를 구해서 수업 종료 후 정리까지의 시간을 단축할 겁니다. 코로나가 지하철 막차 운행을 정상 운행할 때까지 말이죠.


  어제는 오늘이 아닙니다. 내일도 결코 오늘이 아닙니다. 저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가 지금 현재의 순간을 잘 살아내기를 바랍니다. 바로 한 시간 전이나 일 분 전의 스스로에게 실망했거나 화가 나더라도 이미 그 순간조차도 흘러가 사라졌습니다. 다시 받아들이고 다시 시작하세요. 삶의 경험에 따라 얼마든지 유연하게 살 수 있습니다. 큰 방향성은 잃지 말고, 작은 충돌에는 기꺼이 부숴지세요. 산 중의 작은 이슬이 방울방울 모여서 시냇물이 되고, 강이 되어 흘러서 마침내 바다에 이르듯이 말이죠.



  

  여러분의 지금은 어떤가요?

당신의 지금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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