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냐?, 나도 아프다.
언니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애들은 꼭 일요일 저녁에 열이 오르더라.”
어차피 아플 거라면 금요일 저녁에 열이 나면 다음날 병원 갔다가 주말 내내 엄마 아빠 보살핌 받고 월요일날 너는 등원, 나는 출근하면 좀 좋겠냐만은 아이들은 주말 내내 신나게 놀고 일요일 저녁에 열이 난다. 다음날 갑작스러운 연차 사용은 불가피하다.
우리 첫째도 돌이 막 지났을 무렵 일요일 늦은 오후 낮잠 자다 소리를 지르면 일어나 갑자기 우는데 그
좋아하는 뽀로로를 틀어도 울음을 그치지 않아 아동병원에 접수 후 장장 3시간에 기다림 끝에 급성 중이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때 그 어린 녀석이 얼마나 아팠으면 나에게 안긴 채로 자동차 문을 붙잡고 엉엉 울었더랬다. 그 이후로도 병원이 문 닫은 시간에 갑자기 울면서 잠에서 깨면 혹여 또 중이염일까 대학병원 응급실까지 간 적도 있고 다양한 이유로 응급실과 친하게 지냈다.
임신 막달,
잘 자고 있는데 아이가 자지러지며 깨어났다. 한참 밤 기저귀를 떼는 연습을 하던 중이라 소변을 보고 싶으면 짜증 내며 일어나던 시기라 또 소변이 마려운 가보다 하고 어르고 달래 소변을 보게 하려는데 소리를 지르며 눈이 아프다고 두 눈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달래도 안되고 병원 갈까?라고 물으니 엉엉 울며 의사 선생님을 만나겠다는 아이를 안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 아이는 다행히 좀 진정이 되었고 그래도 이왕 왔으니 진료 보고 가자는 남편의 말에 응급실로 행했다. 대학병원의 응급실은 시간을 가리지 않는다. 새벽 2시를 향해 갔는데 대기 2시간이라는 말을 듣고 어쩔까 하다 내일 의사 선생님 만나도 되겠다는 아이를 안고 다시 집으로 왔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돌아오면서 심란한 마음을 남편에게 떨어놓았다.
“또 이런 일 생기면 어쩌지? 지금이야 하나는 아픈 애 안고 하나는 운전하고 가는데.. 애가 둘이면 이걸 어째? 가까이 애 맡길 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남편은 대답이 없었다. 문제는 알아도 정답은 없었으니까.. 뭐 할 수 있는 말은 닥치면 다 해 정도였겠지.
그런데 나의 걱정은 참 빨리도 현실이 되었다.
갓난쟁이가 집으로 오고 첫 주말.
동생이 집에 온 걸 기념한 건지 낮잠에서 일어난 첫째가 열이 올랐다. 토요일 늦은 시간이었지만 오후 늦게까지 하는 병원을 수소문해 가기로 했다. 아빠와 첫째만 보내려고 했지만 갑자기 열이 오른 탓에 컨디션이 안 좋으니 엄마만 찾아대기에 결국 갓난쟁이와 나도 차에 올랐다. 사실 나는 나대로 애가 탔다. 아프면 몇 시간이고 나에게 안겨있는 아이인데 혼자 카시트에 앉아 울며 병원에 갈 생각 하니 그건 그거대로 마음이 아팠다. 병원 주차장에서 남편이 둘째를 안고 있고 난 첫째를 안고 병원으로 향했다.
“ 목이 좀 부었네요. 구내염 증상도 살짝 보이는데 심하진 않아요. 해열제 있죠? 그거 먹이세요.”
돌아오는 길은 병원 오기 전에 먹은 해열제 덕분인지 약국에서 산 비타민 때문인지 녀석은 평소 컨디션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현실은 늘 그렇듯 생각보다 혹독하다.
월요일 아침, 토요일 갔던 병원이 영 미덥잖아 갓난쟁이를 산후 도우미분께 맡기고 늘 가는 소아과로 향했다.
“수족구네요”
수... 족구? 그 전염성 강하다는 수족구? 약도 딱히 없고 열 오르면 해열제 먹고 구내염이 심하게 오면 밥도 못 삼킨다는 그 수족구...
“아.. 하.. 집에 갓난쟁이가 있는데..”
“아.... 격리하셔야 해요. 6개월 미만은 수족구 걸리면 바로 입원이에요. 어른들도 조심해야 해요.”
눈 앞이 깜깜했다. 당장 몇 시간도 맡길 데가 없는데... 일주일을 어디 보내지? 근데 아픈 애를 어디 보내는 게 맞는 건가? 그렇다고 둘을 같이 둘 수도 없다. 어떻게든 우리 부부가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남편은 바로 휴가를 내고 집으로 오며 시누이에게 사정을 말하고 일주일 동안 아이와 남편이 시누이 댁에 있기로 했다.
난 집에 와 서둘러 아이 짐을 싸고 아이에게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아기가 지금 너무 아픈데 네가 있으면 너도 아파진다. 아빠랑 고모집에 가서 신나게 놀다 오면 아기도 괜찮아질 거다. 괜스레 너 때문에 아기도 아플 수 있으니 고모네에서 낫고 오라고 하면 상처가 되진 않을까 해서 돌려 돌려 말했지만 사실 다 알고 있는 듯했다. 지금 자기가 아프고 그리고 자기 때문에 아기도 아플 수 있다는 걸. 생각보다 순순히 첫째는 현실을 받아들였고 급히 집으로 온 남편을 따라 고모댁으로 떠났다.
집에 남은 나는 남은 숙제를 했다.
혹시 집에 남아있을지 모를 수족구균을 없애려 이불은 빨래방에서 빨고 장난감은 씻고 말리고 집안 곳곳에 알코올을 뿌리며 소독했다.
산후도우미님도 퇴근하고 아직은 잠만 자는 둘째와 단 둘이 맞이한 저녁.
참 오랜만에 집이 고요했다.
첫째는 고모댁에 도착해 잘 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열도 없도 구내염도 심하지 않은지 밥도 잘 먹고 컨디션도 괜찮다고
하지만, 내 마음이 참 아팠다.
단 일주일이었지만 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쌓인 회포도 풀기 전에 또 아이와 떨어져 있어야 했다. 그것도 아픈 아이와... 아픈 애를 멀리 보낸 것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깊이 잠들어 있는 둘째를 바라보며 괜한 원망도 해 보았다.
“어이-, 너 때문에 우리 아들 멀리 보냈잖아~!”
둘이서 하나를 키우다
둘이서 둘을 키우는 건 참 아주 많이 어려운 일이다.
누구보다 그 사실에 적응해야 하는 아직도 어린 나의 첫째에겐 더 많이 어려운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