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4 내가 사람과 여행을 기억하는 방법
2019년 9월 24일
그 순간에 있으면서도 잊지 못할 순간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함께하는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지 못하는 사람이 또 늘었구나.
와이너리 투어 예약 시간을 기다리며 강을 바라보는 벤치에 앉았다. 햇살이 너무 따뜻해서 친구에게 기대어 잠깐 눈을 감았다 뜨는데 보이는 풍경이 그림 같았다. 따스히 내려오는 햇살이 도우루 강 표면에서 부서져 반짝이고 있었고 그 너머에는 조각조각 예쁜 풍경이 가득했다. 전체적으로 주황빛의 평범하지만 독특한 포르투의 매력에 완전히 빠진 순간이다.
그 순간에 있으면서도 잊지 못할 순간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함께하는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잊지 못할 순간에 함께했던 사람들 역시 쉽게 잊히지 않는다. 잊고 싶은 아쉬움, 실망, 좌절, 그래서 상처 받은 순간들에도 함께한 사람들은 잊히지가 않는다. 감정은 흐려지지만 기억은 흐려지지 않는다. 나는 누군가의 어떤 순간에 있었을까.
서울대 합격을 확인하는 순간에 나는 반 친구들과 펜션에 둘러앉아있었다. 성인이 되어 여행을 떠나 인생 첫 술을 먹으려고 준비하는 중에 담임선생님께 한번 확인해보라는 문자가 왔다. 내가 만약 합격하면 기분 좋은 저녁이 되겠지만 만약 아니라면 내가 아쉬움을 친구들과 공유해야 할까. 기꺼이 함께 아쉬워해줄 친구들이라는 걸 알기에 함께 확인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행히 좋은 소식이었고 다 같이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다. 그리고 학교를 다니는 내내 그 순간, 그리고 그 친구들이 떠오른다.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가더라도 여전히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잊지 못할 순간들로 사람을 기억한다.
그래서 잊지 못할 순간에 함께하는 사람을 보며 생각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지 못하는 사람이 늘었구나.
나의 첫 유럽여행이 친구와의 포르투 여행인 것은 나에게 엄청난 행운이었다. 너무나 좋은 기억들로 가득했기에 이후의 여행을 계획할 때 나는 주저하지 않을 수 있었다. 포르투는 기대했던 좋음을 뛰어넘는 행복을 느끼게 해주었다. 스냅촬영시간 직전 거짓말처럼 먹구름이 걷히며 예쁜 포르투를 예쁘게 담을 수 있었고, 그날 저녁 작가님과 함께한 저녁식사도 맛있었고, 운 좋게 스냅사진을 세 차례나 찍을 수 있었다. 덕분에 포르투가 그리울 때 꺼내볼 수 있는 사진들이 참 많다.
포트와인은 달고 향긋하고 깔끔하고 취기도 돌면서 포도향이 오래오래 남는 기분이 좋아지는 술이다. 포르투에서 만들어져서 그런지 포르투와 닮아있는 술이다. 동루이스다리를 바라보며, 와이너리 투어를 기다리며, 재즈바에서 연주를 감상하며 나는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을 알았다. 어느 여행지를 다니더라도 여기에서 봤던 풍경이 떠오를 것이고 맛본 술과 음식이 그리울 것이고 그리고 처음 혼자 비행기를 타고 와서 친구를 만나던 반가움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순간들을 함께한 친구를 기억할 것이다.
처음 마주하는 감정이 들 때마다 낯선 곳에 있다는 게 실감 난다. 비엔나 공항도 처음 가봤고 뒷문으로 비행기에 타는 것도 처음이었다. 이륙은 지연되었지만 착륙은 오히려 빨리 도착한 것도 이상하고 비행기 안에서 사람들이 복도랑 비상구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 대화하며 웃는 것도 이상했다. 심지어 어떤 커플은 남자 위에 여자가 앉아서 가고 있었다. 그러나 제일 낯설고 이상한 건 나였다. 나만 그런 감정을 느끼는 그 상황이 당황스러울 만큼 낯설었다. 그들에게는 내가 이상했다. 내가 세상과 연결된 끈이 똑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의 완전한 타인이 되어버린 두려움을 잊지 못한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여행지에서 내가 나를 기억하기 위해 애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