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8 우리는 모두 시차가 필요하다
유럽 교환학생으로 지내며 내가 느낀 행복의 대부분은 시차에서 왔다. 오스트리아로 떠나 이방인으로 지내는 보상으로 나는 합법적인 시차를 인정받은 셈이다. 한국사회의 시간으로 살지 않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다른 시간대에 위치한다는 대단한 핑계를 얻었다.
그럼에도 때로는 힘들었다. 내 사람들과의 8시간의 시차는 오스트리아와 한국 사이의 거리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평소에는 미움받을 용기가 가득한 나지만 종종 미움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내 편인 사람들이 사실은 다 아닌 것 같을 때. 내가 하는 일들이 순탄하게 진행되고 큰 걱정이 없을 때 이런 불안함이 든다. 이렇게 행복하기만 할 리가 없는데. 내 마음대로 양껏 여유롭게 살아도 되나.
우리는 모두 시차가 필요하다.
내 행복의 근원이 내 사람들과의 간격임을 미리 알았더라면 조금 더 담담하게 외로움을 즐겼을 텐데. 사람이 그리운 밤에는 누구든 일찍 일어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올려주길 기다리다 새벽 4시에 잠들었다. 친구에게 보고 싶다는 카톡 하나 남기려면 긴 밤이 지나 아침이 와서 한국에도 느지막한 오후가 되기를 기다렸다. 그 외로움과 불안함들이 시차를 인정받는 대가였을까.
2019년 10월 8일
갑자기 미움받는 느낌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내 편인 사람들이 사실은 다 아닌 것 같을 때.
어젯밤이 그랬다.
이 좁은 나라에서 몇 달, 혹을 몇 년을 느리게 사는 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가. 그들은 뒤늦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단히 노력한 결과로 그들의 시간을 사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들이 만든 시차는 인정받아 마땅하다. 느지막한 오후에 눈을 뜨는 누군가에게 게으르다 해선 안된다.
요즘 미라클 모닝이 유행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를 남들보다 일찍 시작해서 보내는 시간을 '기적'이라고 부른다. 서너 시간을 빠르게 살면 기적과 같은 변화가 찾아온다고 믿는다. 이렇게라도 시차를 만들지 않으면 나만의 시간대를 인정받기 힘든 우리네 현실이다.
언젠가는 오후 5시에 시작하는 하루를 기적이라 부르는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