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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딘 Feb 22. 2021

여행의 성공 비법 두 가지

DAY 89 좋은 사람이 좋은 여행을 만든다

유럽여행이 흔하던 시절, 커뮤니티를 통해 동행을 구해 여행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나는 그렇지 못했다. 남을 잘 믿지 않는 사람이라 나의 소중한 순간에, 그리고 그 공간에 누군가를 들이는 일을 주저하기 때문에 여행을 남이랑 같이 한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래서 혼자 영화 보고 혼자 카페 가고 혼자 밥 먹는 일이 많다. 특히 가장 아끼는 공간들은 혼자만 간다. 나중에라도 그 사람과 사이가 안 좋아지면 함께한 기억이 묻은 공간을 편하게 갈 수가 없어지니까. 모든 공간에는 기억이 묻어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나한테 사람이 중요하다. 어느 곳에 가든 무엇을 먹든 함께한 사람에 따라 기억의 느낌이 달라진다. 한 친구는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날씨와 사람이라고 말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여행을 가서 어딜 가는지 어느 숙소의 침대에서 자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때로는 맛없는 음식을 먹는 것도 큰 문제는 아니다. 지난 여행에서 행복한 순간들은 아름답게 떨어지는 해를 보고, 저녁에 와인 한잔하며 대화를 나눌 때이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날씨와 사람이다.



그다지 친하지 않아도 같이 여행 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랑 같이 여행 가면 좋겠다. 왜인지 함께 어딘가로 떠나면 좋을 것 같은 사람. 마찬가지로 처음 와봤지만 누군가랑 같이 오고 싶은 여행지가 따로 있다. 그 사람과 여기에 오면 좋겠다. 예를 들어 프라하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떠오르고 포르투에서는 엄마가 떠오르는 것처럼. 그 둘이 만나 '이 사람이랑 여기를 같이 가고 싶다'의 구체적인 명제가 되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토록 많은 일행들이 돌아오는 여정에 약간의 불편함과 함께한다. 그 마음이 새어 나와 싸우기도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데면데면해지기 쉽다. 좋은 날씨는 권한 밖의 일이라 쉽게 포기할 수 있지만 사람은 내가 정하는 거라 아쉬움이 큰 법이다. 그래서 좋은 사람인 줄 믿었던 사람과 함께하는 여행은 보통 최악의 여행이 된다.


실망하지 않으려면 차라리 혼자 떠나 스쳐가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전략이다.




어느 도시를 가는 것과 가보는 것의 차이


여행을 가는 것과 가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바르셀로나, 파리, 런던 그리고 오스트리아 빈 정도는 계획해서 가는 도시들이다. 그러나 좀 더 작은 도시들, 내가 지낸 린츠와 그 옆의 잘츠부르크, 프라하, 체스키 크룸로프는 기회가 생기면 한번 가보는 도시들이다. 이를테면 추가 구성품 같은 목적지. 유럽에서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직항으로 올 수 있는지다. 점점 인기를 끌고 사람들이 이곳을 가게 되면 항공사에서 재빠르게 직항 노선을 만든다.


오스트리아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그런 도시들을 편하게 가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당일치기로 빈과 잘츠부르크, 프라하를 다녀올 때면 유럽인의 특권을 잠깐 빌려 낭만이 가득한 곳들을 아무 때나 눈에 담을 수 있었다. 타지 생활 중 마음고생이 많았지만 그만큼 눈이 호강해서 돌아보면 다 행복했던 것만 같다.




그중 잊지 못할 오스트리아 국내여행은 그라츠다. 그라츠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지만,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을 이어 2번째로 큰 도시이다. 그리고 현지인들이 많이 사는 것 같다. 외지인에 대한 따가운 시선이 꾸준히 느껴졌다. 그중 악의가 있는 차별도 있었지만, 관광객이 낯설어서 보내는 경계도 많았다. 니하오를 넘어 칭챙총을 직접 당한 건 그라츠에서 처음이었고, 거리의 할아버지들은 아주 호탕하게 우리를 비웃기도 했다. 이래서 유명한 관광지들이 시민의식을 강조하는 걸까. 내 집 같은 편안함은 아니더라도 남집같은 불편함은 주지 않는 건 바로 시민의식에 달려있다. 그리고 그 시민의식이 없는 곳이 그라츠다.


그럼에도 그라츠를 미워할 수 없다. 그라츠를 가본 용기를 인정받은 것처럼 선물 같은 노을을 마주했다. 불타는듯한 하늘과 저 멀리까지 이어지는 주황 지붕들을 잊지 못한다. 이런 하늘이 있을 수 있고 또 내가 그걸 볼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황홀한 노을이었다. 내내 흐린 유럽의 겨울에 기대 없이 만난 노을이라 깜짝 선물 같았다. 다신 못 볼 노을과 하나같이 맛있던 음식들, 그리고 같이 있었던 친구까지 더할 나위 없는 여행이었다.




그래서 다음에 기회가 생기더라도 선뜻 그라츠를 다시 가기 꺼져진다. 더 좋은 기억을 남기기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너무 행복해서 어디에든 뽐내고 싶을 정도.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가 날씨와 사람인데, 그라츠 여행은 이를 모두 충족했다.


덕분에 나는 그라츠에 다녀온 누구보다도 그 도시를 예쁘고 빛나게 기억하고 있다.




이맘때 나는 파리행 비행기를 타러 빈 공항에 갔다가 그대로 기숙사로 돌아왔다. 여러 이유들이 있었지만 돌아보면 사람 때문이었다. 파리를 가려고 한건 도시가 주는 낭만도 있었지만 파리에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친구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같이 파리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내가 파리에 가도 그 친구를 편하게 볼 수 없게 되었고 그럼에도 파리에 가려는 마음에 공항까지 갔다.


 파리는 나에게 꿈의 도시였고 지금도 그렇다. 유럽에서의 교환학생을 꿈꾸게 만든 것도 파리였고 프랑스어를 공부한 이유도 파리 때문이다. 이후에 처음 에펠탑을 마주했을 때는 눈물이 날 정도로 벅차올랐다. 파리는 나에게 그런 도시다. 그리고 그런 파리 여행을 내 의지로 포기하게 만든 건 사람이다. 좋은 여행을 결정하는 두 가지 중 하나가 사라졌으니까 그 여행은 가지 않는 게 당연했다.


좋은 사람이 좋은 여행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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