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06 세계 3대 크리스마스 마켓에서의 시간들
2019년 12월 25일
나를 포함해서 아무도 아무것도 안 변하고 그대로 있으면 좋겠다. 시간도 안 갔으면 좋겠고.
내가 좋아하는 이 사람들과 이 시간들은 꼭꼭 눌러 담아놨다가 나중에 꺼내어도 그대로면 좋겠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상황이 달라지는 것에 슬퍼한다. 학교를 졸업한다든지 이사를 간다든지 기숙사를 떠난다든지 식의 변화가 힘들었다. 당연한데 당연하지 않고 다들 겪지만 그럼에도 나는 쉽지 않은 그런 변화들.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는 것들을 의연하게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그래서 더 이렇게 차곡차곡 쌓이는 기록에 마음을 쓰는 것일 수도.
같이 한 학기를 보낸 친구를 배웅을 하고 혼자 돌아오는 길, 엄청난 달무리를 봤다. 구름이 엄청 빨리 지나가서 보는 중에 새까만 밤하늘이 되어 별들이 많이 보였다. 쓸쓸해할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파리에서도 그랬다. 날 보러 유럽까지 온 친구를 기차역으로 배웅하고 돌아오는 새벽 5시. 그때도 하늘이 참 예뻤다. 파리의 건물들 사이로 보이던 일출. 타지 생활에 지쳐있는 나에게 한국에서 온 친구들과의 한 달 여행은 문득 올려다본 하늘이 예쁜 순간이었다. 그래, 시간 지나 달라지는 것들에 속상할 필요 없어. 예쁜 하늘 보면 기분 좋고 그리고 여기는 그 하늘이 있는 유럽이니까.
여기는 그 하늘이 있는 유럽이니까
오스트리아 대학에는 크리스마스 휴가가 있다. 크리스마스가 있는 주부터 3주간 휴식을 갖고 다시 1월 말까지 가을학기가 이어진다. 이 시기에 누구와 어디에 있을지 고민하다가 충동적으로 친구와 세계 3대 크리스마스 마켓을 돌아보기로 했다. 3대 크리스마스 마켓은 오스트리아 빈 Wien, 독일 뉘른베르크 Nürnberg,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Strasbourg로 운이 좋게도 린츠에서 멀지 않은 동네들이었다. 그렇게 친구는 2주의 크리스마스를 위해 한국에서 먼 길을 날아왔다. 덕분에 빈에서 시작해서 파리까지 2주를 크리스마스로 가득 채웠다. 그리고 이어지는 2주는 또 다른 친구들과, 꼬박 4주를 여행했고 이때가 내 유럽 생활의 반환점이었다.
3대 크리스마켓 도장깨기를 마치는 소감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을 리 없다는 것. 도시마다, 심지어는 거리마다 다른 마켓의 분위기에 매료되었고 해가 일찍 지는 유럽의 겨울이라 오후 4시부터 반짝이는 트리 장식을 볼 수 있어 행복했다. 어딜 가나 사람이 많았고 아이들이 많았고 웃음이 많았다. 그리고 이 정도로 많이 보니까 이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가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았다. 매년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트리 장식을 사모으고 각자 집의 트리를 꾸미는데 12월을 다 쓰는 이곳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부러웠다. 성탄절이 아니더라도 평화롭고 따뜻하고 행복하기만 한 날이 있고 그날을 기다리는 마음들이 부러웠다.
설명하기엔 모호하고 무시하기엔 분명한,
어쩔 수 없는 그들만의 문화
국제학생 수업 중 서구화에 대해 토론했다. 할로윈을 챙기고 영어를 배우고 아이들을 키우는 과정이 결국 서구화된 세상에 적합한 인재를 기르는 것이며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또 서구화를 추구한다는 주장이었다. 맛있고 안 비싼 커피집은 망하고 맛없고 비싼 스타벅스는 왜 자꾸 생기는지 아느냐고 묻는데 답할 수 없었다. 온 나라가 크리스마스만을 기다리는 12월은 서구화의 예시일까.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내가 보고 느낀 이곳의 크리스마스는 한국의 것과는 깊이가 다르다. 단순히 좋아 보여서 따라 할 수 없을 만큼 깊은 곳에서 나오는 무언가, 어쩔 수 없는 그들만의 문화.
공중화장실이 유료라고 정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파리 시내 맥도날드에서는 앞사람이 다음 사람이 올 때까지 문을 잡아주기 때문에 사실상 화장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복잡한 파리 시내의 도로에서는 우버에 합승 기능이 있다. 자동으로 어디서 픽업하고 어디서 내려줄지를 계산해서 차량을 호출하고 그대로 가면 요금은 절반이고 복잡한 도로에 자동차도 몇 대 줄일 수 있다. 늘 이런 식이다. 각자 사는 방법이 있다.
설명하기엔 모호하고 무시하기엔 분명한,
그래서 결코 따라 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그들만의 문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