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12 이스탄불에서의 새해, 아테네에서의 수다
이 글은 파리를 떠나 암스테르담, 이스탄불, 아테네 그리고 모로코로 향한 여행의 이야기이다. 긴 여행을 무탈하게 마치고 남은 행복한 기억들을 찬찬히 정리해서 빛나는 추억으로 만들어놓으려는 노력이다.
2020년 1월 1일
지난 10년과 앞으로의 10년을 생각했다.
행복함을 잊지 않기.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기.
건강하기 위해 노력하기.
하고 싶은 일을 쉽게 포기하지 않기. 사랑하기.
거창하진 않아도 근사한 사람 되기.
2020년은 터키 이스탄불 탁심광장에서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인파에 우리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중동인이던 마지막 밤. 부끄럽지만 난 그들을 구분하는 능력이 없고 내 눈엔 다 똑같이 생긴 적당한 키에 진한 수염과 눈썹, 검정머리 남성들이었다. 3년 전 같은 곳에서의 총격 난사로 40여 명이 다쳤었다. 그래서 골목에서 경찰들은 보안검색에 열을 올렸고 분주한 그들을 보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때때로 소리를 지르고 파키스탄을 외치고 사진을 찍고 노래를 부르며 새해를 기다렸고 새해가 되니 불꽃놀이가 있었다. 한강 같은 바다를 건너 숙소로 돌아왔다.
아테네에서는 말이 참 많았다. 많이 듣고 많이 말하고 그보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도시. 이때 함께한 친구들이 모두 정치학도였기 때문일까, 옛 도시의 느낌을 머금은 아테네 때문일까. 파르테논 신전 보다 그곳에서 내려보는 아테네가 엄청났다. 신전 앞에 있는 신들만이 지나가는 신의 문, 그 앞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앉아 많은 이야기를 했다.
아테네 민주정과 지금의 민주주의는 같은 것일까. 민주주의는 종교일까. 그리스에서 민주정이 시작된 이유에는 로마신화가 있을까. 아테네인들에게 그리스 로마 신들은 종교인가. 종교에 대한 맹목적 신뢰는 옳은가. 종교는 철학과 무엇이 다른가.
분명한 것은 우리가 만화책으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들은 캐릭터에 불과하지만, 실제로는 사회의 규범과 구성원 간의 신뢰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한 실존적 존재였다. 지금의 '신'과는 전혀 다른 개념. 마치 이곳의 '민주정'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다른 것처럼. 그냥 같은 이름일 뿐인 것들.
정치학에 대한 자부심도 느꼈다. 아테네 학당 앞에 세워진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석상 사이에서 과외를 받는 상상. 고대부터 몇 안 되는 가르침의 분야로 존재해온 정치학 안에 내가 속해있어 뿌듯했다.
결국엔 오래 살아남는 것이 승자인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