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나요?
저는 살면서 크게 힘들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항상 내가 하고 싶은 걸 웬만하면 다 해왔고, 원하는 게 있으면 가졌던 것 같고. 저는 사람을 진짜 좋아하거든요. 친구들이 저한테 제 이상형은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고 얘기할 정도로 좋아하는데, 좋아하면 다 주는 편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내가 앞뒤 안 가리고 잘해주는 거에 비해서 나중에 상처받는 일들이 꼭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예전보다 많이 조심스러워졌고 내 경계선 안으로 사람을 들이는 거에 있어서 조심스러워요.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을 좋아하고, 가끔씩 행복하면서 살고 있어요. 저는 행복은 상태가 아니라 어떤 순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오늘 걸어 나오는데 행복했어요. 바람이 좋더라고요.
- 왜 새로운 사람을 좋아하세요?
재밌잖아요. 서로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얘기하는 것도 재밌고 새로 관계를 쌓아나가는 게 재밌어요. 저 사람 앞에서 내가 이때까지와는 다른 모습이어도 되잖아요. 그래서 여행을 좋아해요. 여행 가서 사람들도 잘 만나는 편이고요.
- 혼자 있는 것도 좋아하세요?
엄청 좋아해요. 저는 집에서 읽는 책하고 밖에서 읽는 책이 달라요. 돌아다닐 때는 미니북 들고 다니고 웬만하면 집이나 카페에서 읽어요. 옛날엔 책을 진짜 잘 읽었거든요. 근데 작년 8월부터 제가 머지맨션이라는 게임을 시작했어요. 이거 완전 중독이에요. 할머니의 유산인 맨션이 있는데 그 맨션을 수리하는 거예요. 아이템 눌러서 물컵이 두 개가 나오면 합쳐요. 그럼 얘가 텀블러가 돼. 텀블러 두 개를 합치면 물병이 돼서 필요한 걸 공급해 주는 거예요. 전략 하나도 없고 맨날 누르고 있는데 너무 재밌어요. 약간 뇌를 녹이면서 아드레날린을 분비하는 것 같아요. 지금 저는 테니스장을 수리 중이에요. 이제 거의 1년이 되어 갑니다.
-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요?
흘러가는 대로 살고 있는 거 같기는 해요. 여태까지 잘 살아왔다면 지금이 정체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회사가 내 모든 기분이나 태도의 키가 되는 느낌이라 그게 신경 쓰여요. 지금은 그래서 조금 여유로워지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생활이 크게 바뀌지는 않거든요. 마음가짐만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회사와의 거리 두기를) 예전엔 진짜 잘했는데 확실히 코로나로 재택근무 하면서 그게 너무 안 돼서 더 힘들어진 것도 있어요. 사실 9시에 일어나도 바쁘면 새벽까지 일할 때도 있고 급한 일이 있으면 그걸 못 놔요. 예전에는 내가 내 삶을 살았다면 지금은 회사가 너무 중심이 되어버린 느낌이라고 할까요. 나이가 들면서 불안해서 그러는 것도 있을 거예요. 점점 나는 회사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니까 더 열심히 책임감 있게 내 자리를 만들어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 때문인가 싶어요. 왜냐면 저는 어렸을 때부터 결혼을 안 하고 싶다고 말해와서 나 혼자의 삶을 구축해 나가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까 더 회사에 매몰되는 것도 있을 거예요.
원래 고등학교 때는 정치외교학과에 가고 싶었어요. 저는 국제경영학과를 나왔거든요. 그것도 비슷한 과니까 정치외교학과 쓰면서 국제경영학과도 썼는데 덜컥 붙어버린 거예요. 근데 막상 가서 공부해 보니까 재밌었어요. 저는 지루하고 반복적인 걸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라서 무역 쪽이 재밌겠다 싶었어요. 맨날 사고 나거든요. 날씨가 안 좋아서 사고 나고 어디가 명절이라고 쉬고 그런 거 해결하는 것도 재밌고, 정치나 경제도 그렇고 여러 가지가 겹쳐있는 직업군이거든요. 그래서 선택했어요.
-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나요?
크게 꿈꾸는 건 있어요. 나이 들었을 때 여유롭고 친절한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저는 밀라논나를 되게 좋아하거든요. 밀라논나처럼 남한테 오지랖 안 부리고 내 삶이 단단하게 서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요. 노년으로 가지 않는다면 책 읽는 공간이 있는 카페를 하고 싶어요. 한참 코로나 시작하기 직전까지 2~3년 동안 독서 모임을 했었거든요. 그때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카페를 책 읽는 사람들이 같이 얘기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그리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평생 행복하지 않아도. 계속 혼자 살고 싶다고 생각하면 ‘내가 어떻게 살고 싶지?’를 많이 고민하게 돼요. 왜냐면 물어보는 사람이 정말 많거든요. 이제는 조금 많아진 선택이긴 한데, 그래도 아직은 생소한 선택에 대해서 왜 그렇게 생각하냐부터 시작해서 그럼 늙어서는 어떻게 할 거냐까지 물어봐요. 제 주변에는 결혼을 늦게까지 안 한 여자 어른이 얼마 없거든요. 우리 주변에 결혼을 안 한 여자들이 많긴 해도 다 평범하지 않은 직군들이잖아요. 연예인, 모델처럼 TV에서 보거나 인플루언서, 유튜버 이런 사람들이니까. 누군가 결혼을 안 하겠다고 얘기했을 때 제가 ‘저 언니도 저렇게 사네’라고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거든요. 그냥 평범한 직장생활 하면서 혼자 살아도 행복할 수 있지 않나.
-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졌던 시기가 있나요?
사실 저는 취미생활이나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했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대신 사람한테 진짜 잘 질리는 편이에요. 진짜 좋아하는데 잘 질려해요. 그게 제 큰 단점이기는 한데 그런 변덕 부리는 게 다 사람한테 가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너무 오래 보고 자주 보면 갑자기 확 식어버리는 느낌. 갑자기 더 이상 흥미가 안 생기고 얘기해도 예전처럼 재밌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근데 이제는 그렇진 않고 무뎌진 것 같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