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나요?
별 일 없이 살았어. 내가 굴곡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는 게 장점이면서도 어떨 땐 아쉬운 부분이기도 한 거 같아. 내가 상담을 하면 자연스럽게 과거에 슬픈 일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잖아. 근데 내가 그걸 겪지 않았으니까 상상이 잘 안 가기도 하거든. ‘나도 비슷한 일이 있었으면 상담을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이런 생각이 들어서 아쉬워. 대신 좋은 점은 그만큼 내가 무의 상태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걸 잘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거. 편견이나 이미 갖고 있던 느낌에 갇히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점은 장점이라고 생각해.
정석대로 살았다는 느낌, 그게 내가 집단상담을 가면 항상 느껴. 여러 사람이 모여서 자기 얘기를 하는 시간인데 듣다 보면 진짜 힘들게 살아온 사람들이 많거든. 당연히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고 싶은데 내 얘기를 하기가 좀 어려워. 그 사람이 말하는 힘든 일이랑 내가 말하는 힘든 일이 누가 봐도 차이가 너무 커서 내가 힘들었던 걸 말하면 조그매서 말하기가 좀 부끄러운.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일 힘들었을 때가 논문 쓸 때거든(웃음).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게 제일 힘들었고 스트레스였는데 이 얘기를 하면 귀엽게 보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근데 웃긴 게 내가 심심하단 말을 진짜 많이 하거든. 내가 어떤 사람한테 “저 요즘 인생 권태기다, 너무 심심하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너 맨날 그 소리 한다. 너는 너무 인생에 큰 걸 있길 바라는 거 같다”라고 하더라고. 그 말을 듣고 뭔가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어. ‘하루하루에도 굴곡이 있을 텐데 내가 그걸 다 느끼지 않고 살았나?’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그래서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 ‘열심히’라는 게 열심히 느끼고 열심히 생각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너무 내 삶을 한 발자국 떨어져서 사는 느낌? 여기에 푹 빠지지 못하고.
‘난 그냥 많이 경험하지 않아도 되고 새로운 걸 원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구나’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어. 대신에 만약에 기회가 오거나 다른 사람이 자기 세계로 초대했을 때는 망설이지는 말자.
-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요?
일이 내 삶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생각보다 크잖아. 나는 이런 면에서 되게 운이 좋다고 느껴. 심리학과는 그냥 재밌어 보여서 선택한 건데 막상 갔는데 너무 잘 맞는 거야. 근데 상담을 하려면 꼭 대학원을 가야 되니까 가서 공부하고 상담 시작한 것도 너무 재밌었어.
일을 할 때도 물론 하기 싫은 일이 있지만 어쨌든 상담을 하다 보면 갑자기 힘이 나기도 해. 주로 애들이 늦게 끝나니까 밤에 상담을 한단 말이야. 6시에서 8시. 끝나면 오히려 힘 얻고 집에 갈 때도 있고 어떨 때는 고민거리가 생길 때도 있지만 그 고민도 행복하다고 해야 하나. 내가 얻는 게 많고 성장하는 느낌이 많이 드니 그건 되게 좋아. 근데 이렇게 들인 노력에 비해서 월급이 들어올 때는 약간 현타가 오면서 ‘내가 이거 받으려고 이렇게 열심히 했나’ 이런 생각이 들지만 그런 부분에선 잘 선택한 거 같아. 계속 내가 커가는 느낌이 들어.
그래서 지금 어떻게 살고 있냐고 물으면, 계속 성장해가면서 살고 있다. 나도 몰랐는데 자소서를 쓸 때 그게 꼭 들어가. ‘좋은 상담자가 되고 싶다.’ 상담자일 때도 그렇고 내 삶에 있어서도 항상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거야. 이게 나의 큰 가치관인데 이걸 잘 실현시켜주는 게 지금 일인 것 같아. 딱 맞아서 좋은 것 같아.
-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나요?
앞으로 계속 더 나은 사람, 더 나은 상담자가 되고 싶어. ‘스스로 계속 성장하고 있구나’ 이런 걸 느끼고 싶어. 나한테 되게 중요한 것 같아. 상담도 더 잘했으면 좋겠고 인격적으로도 더 좋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고. 내가 더 잘 즐길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그런 사람 보면 되게 멋있는 거야. 자기를 되게 잘 아는 사람. 근데 그게 100퍼센트 다 아는 게 아니라 그냥 어느 정도의 자기를 잘 알아서 잘 설명하고 잘 받아들이고 그런 사람이 있는데 난 그게 되게 멋있어 보이더라.
- 스스로 생각하는 더 나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요?
말하기 어려운 것도 있고 나는 딱 정해놓고 싶지 않은 게 있어. 나은 사람이라는 걸 정하면 그쪽으로 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너무 크게 들어서 그냥 정하지 않고 뭐가 됐든 계속 성장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게 계속 달라질 것 같아 살아가면서. 어쨌든 어느 쪽으로든 한 발 나아갔다는 게 중요한 거잖아. 예를 들면 내가 요가를 시작했는데 난 이것도 나한테 되게 큰 성장이거든. 뭔가 하나를 시작하기를 어려워하는데 어쨌든 시작했고 잘하고 있으니까.
상담할 때 그 얘기 되게 자주 해. “뭔가 변화했을 땐 그건 한 발짝 나아간 거다. 자부심 가져도 된다. 그걸로 충분하다”라고. 이런 걸 크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훨씬 많잖아. 근데 충분히 칭찬해 주고 그래야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 나는.
-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진짜 간단한데, 호기심이랑 질문. 난 이 두 가지만 있으면 뭐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
옛날에 내가 공감이 어떤 건지 진짜 모르겠는 거야. 그때 어떤 교수님이 “내 신을 벗고 남의 신을 신고 걸어보는 게 공감이다.”라는 말을 했어. 근데 ‘그래서 공감할 때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궁금함이 계속 드는 거야(웃음). 그러다 수련 받을 때 멘토 선생님이 “그냥 계속 물어보는 거다.”라고 했는데 난 그 말이 너무 와닿는 거야. 도움이 많이 됐어. 상담하면서 누군가가 너무 이해가 안 갈 때는 물어보면 돼. 물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