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몸에 열이 많은 편이다.
겨울에도 손발은 장갑을 안 껴도 따듯하고,
잘 때는 창문을 살짝 열어서
찬바람이 들어오게 해 놓고 잤다.
땀도 많이 나는 편이라 여름은 정말 고역이었다.
2.
항상 여름인 말레이시아의 더위에 적응하느라 꽤 힘들었다.
코로나가 찾아오고 재택근무를 했을 땐,
하루에 여섯 번 정도 샤워를 했다.
에어컨을 켜놔도 의자에 닿는 부분에나 목 뒤나 무릎 안쪽에서 계속 땀이 났기 때문이다.
3.
나와는 반대로 여자친구는 더위를 잘 안 타고 오히려 추위에 약했다.
땀도 거의 흘리지 않는 편이었다.
데이트를 하다가 여자친구는 멀쩡한데 나만 더위를 먹어서 힘들어할 때가 종종 있었다.
4.
나는 잘 때 에어컨을 켜놓고 잤는데,
같이 잘 때는 여자친구가 너무 추워해서 그러지 못했다.
(여자 친구는 말레이시아에서 겨울 이불을 덮고 잔다)
나는 탁상용 선풍기를 사서 내쪽으로만 바람이 가도록 틀어 놓고 자게 됐다.
5.
우리는 수면의 온도가 너무 달랐다.
여자 친구에게 방 온도를 맞추면
나는 땀을 뻘뻘 흘렸고,
나한테 온도를 맞추면
여자친구는 오한 걸린 것처럼 벌벌 떨었다.
6.
너무도 다른 온도 차이가
과연 좁혀질까 걱정도 했었다.
신기한 건 이것도 어느 정도는 맞춰진다는 거였다.
1-2년 정도 지나니깐
샤워도 두 번 정도만 해도 됐고,
더위도 덜 타면서 땀도 줄었다.
다만 추위를 좀 타게 된 것도 있었다.
(한국 겨울에 예전과 달리 벌벌 떨었다)
7.
예전에 조금만 더워도 쉽게 짜증내거나 지쳤는데,
그게 우리 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여자 친구가 괜히 눈치 보게 만드는 게 싫어서,
덥더라도 좀 참고 견디다 보니
더위에 대한 인내심이 길러진 것 같았다.
8.
더 시간이 흐르고 나니
억지로 참는 게 아니라
정말로 더위를 예전보다 덜 느끼게 된 거 같았다.
수련을 하다 보니 내공이 쌓인 건지
한서불침까진 아니어도 것 비슷하게 됐다.
9.
우리는 비슷한 면도 있지만
다른 면도 참 많다
그게 불편할 때도 있고,
억지로 참고 넘어가거나 맞춰 줄 때도 있다.
수면의 온도가 점점 맞아가는 것처럼
우리의 수많은 온도차는
처음엔 억지로 참고 인내를 해야겠지만,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평형 상태에 이르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10.
신기한 건 체온계로 재보면
여자 친구가 항상 나보다 체온이 높게 나온다는 것이다.
더위를 잘 탄다고 체온이 높은 건 아닌가 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