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 공감력

by 두버지

1.

나는 공감이 부족한 사람이다.

이건 우리 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문제였다.

나는 왜 여자 친구의 감정이나 마음을 온전히 공감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리고 매번 이 일로 여자 친구를 속상하게 하면서도 개선이 안 되는 것일까 생각해 봤다.


2.

나는 내가 경험해 본 것이나 배운 것을 바탕으로 판단을 내리는 타입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똘똘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반대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많이 만났다.

즐거운 일도 짜증스러운 일도 많이 있었다.

뭔가 이런 경험은 나의 리미트와 인내심을 높이게 되었고,

이 리미트보다 낮은 일에 대해서는 딱히 어려울 게 없다는 생각을 했다.


3.

여자 친구는 나보다 9살이 어리다.

나이 차이를 보니 내가 군대에 갔을 때 여자친구는 초등학생이었다.

자주 들었던 노래, 유행, 음식, 문화에서부터 세대 차이가 느껴지곤 했다.

경험치도 차이가 나다 보니, 여자 친구가 힘들어하는 상황에 대해서 나는 공감하기 힘들 때가 종종 있었다.


4.

여자 친구는 공감과 인정에 대해서 나에게 상세히 말해주었다.

답을 내기보다는 상황을 이해하는 것, 감정을 공유하는 것,

내가 너였다면, 네가 나였다면 그때 어떤 기분이었을까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것.

인공 공감력을 기르는 것은 힘들었지만 보람찬 일이었다.

(티가 나는 인공 공감은 카운터가 들어올 수 있다)


5.

어느 날인가, 결혼반지가 잘못 제작됐지만, 업체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는 문제가 생겼다.

나는 좀 둔한 구석이 있어서, 반지를 받았을 때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고,

여자 친구는 곧바로 캐치를 했다.

여자 친구는 이 문제를 나와 논의했고, 소소한 불똥이 튀긴 했지만,

어쨌든 재제작을 하는 걸로 잘 해결이 됐다.

며칠을 고민하면서 이것저것 검색하던 여자 친구는

결혼 관련 업종에서 행해지는 불쾌한 현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손해를 보는 신혼부부도 많았고, 소송으로 가면서 힘겹게 싸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6.

나도 결혼은 처음이다 보니,

이런저런 사기꾼이 많고, 처음 조건과 다르게 추가금을 요구하는 행태를 들은 적은 있지만,

상세한 내용은 잘 몰랐다.

그날 밤, 나는 퇴근 후 결혼 관련 사기/소송에 대해서 검색을 해보았다.

민사 소송, 한국소비자원 관련 무수히 많은 사건이 나왔고, 방송/기사도 있었다.

하나하나 읽다 보니, 우리도 충분히 당할 수 있는 일들이 있었고,

계약 당시에 미리 체크하지 않았던 부분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걱정이 생겼다.


7.

세상에 나쁜 사람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트렌드를 파악하려고 검색했던 게 2시간이 지나 있었고,

나는 여자 친구에게 너무 걱정이 되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여자 친구도 내 말에 공감을 해주면서, 자기도 걱정이 너무 많았고

더 꼼꼼히 계약할 걸, 미리 좀 알아볼 걸 하면서 후회도 했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자연스럽게 공감을 느꼈다.

아마 여자 친구도 느꼈을 거 같다.


8.

내가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것과 무뚝뚝한 것이 문제의 핵심이긴 하지만,

어쩌면 우리의 경험 차이도 원인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겪은 일, 사람, 상황들은 많이 달랐지만,

함께 처음 겪는 일에는 인공이 아닌 자연 공감을 한다는 것을 보면서,

이 문제가 더 이상 길어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9.

여자 친구와 나는 살아온 세월이 많이 다르지만,

앞으로는 같은 세월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내가 몰랐던 것과,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여자 친구와 함께 겪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공감하지 못해서 미안했지만,

앞으로는 잘 공감해 줄 수 있을 거 같아서 기뻤다.


10.

여자 친구가 원하는 공감은,

상황을 분석하고, 학습된 리액션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 순간 내가 여자 친구에 빙의되어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를 공감하거나

내가 느낀 감정이 여자 친구가 느낌 감정과 동일선에 놓일 때를 말하는 것 같다.


11.

나는 여자 친구와 공감/감정 영역에서는 참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인공/자연 공감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서,

자연 공감에서는 우리가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앞으로 함께 살아가면서 둘 다 처음인 일들을 많이 겪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도 여자 친구에게 공감을 잘해주는 남자가 될 수 있을 거 같다.


째끄마, 굳이 공감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공감하게 되는 순간이 늘어나게 될 거란다.

우리 앞으로를 기대하면서 잘 지내보자!



- 끝.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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