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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얌전한고양이 Aug 18. 2021

K주임에 대해

나에게 업무를 가장 많이 가르쳐 준 사람

K주임은 내가 입사한 첫날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업무를 가장 많이 가르쳐 준 사람이다. 사수와 부사수 같은 개념이다. 나는 아직도 그와 만났던 첫날이 꽤 생생하다. 면접을 본 이후 처음 회사에 출근한 날이었는데, 첫날은 사무실 분위기에 적응하라고 자리를 지정해주고 매뉴얼만 주고 아무것도 안 시켰다. 그때는 다들 본인들 일 하느라 나에게 전혀 관심을 안 줬다. 사무실을 관찰하고 업무 매뉴얼도 여러 번 보고 나니 슬슬 무료해지던 찰나에 현장에 작업 나갔던 그가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는 내 옆 옆자리였는데, 그와 그의 동료가 직원들 중에서 유일하게 나에게 말을 걸어줬다. 하지만 퇴근 시간 거의 다 돼서 온 거라서 얘기는 얼마 못했고 일단 퇴근하는데, 그가 날 불러 세우더니 본인 명함을 꺼내서 쓱 건네주며 조용히 말했다. "퇴사하는 건 괜찮은데 최소한 그만두기 하루 전에는 말해주세요"


지금도 가끔 그와 그때 얘기를 하곤 한다. 본인 말로는 내가 입사하기 전에 다른 신입사원 한 명이 입사했는데, 말도 없이 바로 관둔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특징이 꽤 많다. 그중 하나는 식사를 굉장히 신속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게 어느 정도냐면, 한 번은 이런 경우가 있었다. 나와 K주임은 점심시간에 야외작업을 대강 마무리하고 점심 먹으러 갔다. 작업 현장 근처의 꽤 유명한 중화요리 식당이었는데, 점심시간이 되면 주차장에 차가 꽉 차서 중고차 매매단지처럼 되고, 가게 앞에 번호표를 들고 기다리는 사람이 넘쳐서 하나의 시장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점심시간 10~15분 전에 미리 식당에 가 있는다. 그러면 그 중고차 매매단지와 시장의 현장을 피할 수 있다. 식당에 들어간 우리는 둘 다 짬뽕을 주문했다. 여기서 K주임은 공깃밥을 하나 추가했다. 저번에 내가 짬뽕밥 주문하는 걸 보고 본인도 주문해서 먹었었는데 괜찮았던 모양이었다. 잠시 후 짬뽕 두 그릇과 공깃밥 하나가 나오고 우리는 동시에 식사를 시작했다. 맞은편에서 전투적인 소리가 들린다. K주임이 전투적으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잠시 후, 내가 짬뽕을 절반 정도 먹었을 때 그는 이미 짬뽕면을 다 먹고 국물에 말아놓은 밥까지 다 먹은 상태였다.


또 한 번은 돼지국밥을 먹으러 갔을 때인데, 식당 아주머니가 친절하시게도 우리 테이블에 공깃밥 하나를 더 주셨다. 나는 돼지 국에 밥 하나면 배가 불러서 나머지 공깃밥 하나는 그에게 양보했다. 그는 '아~ 나도 공깃밥 2개는 좀 힘들 것 같은데?'라고 하더니 이내 돌변해서 돼지 국에 공깃밥 2개를 넣고 급하게 먹기 시작했다. 내가 국에 말아놓은 밥을 거의 다 먹을 때쯤 그는 이미 뚝배기 속 국물과 밥 2개를 싹 비운 상태였다. 나는 그의 식사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나름 노력을 했었지만, 가끔은 노력으로도 안 되는 게 있다고 인정했다.


특이한 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책도 좀 읽는 편이다.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에는 거의 대부분 경제, 자기 계발에 대한 책을 찍은 사진이 올라온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나에게 빌붙는 친구를 손절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일을 K주임에게 얘기해줬다. 그는 내 얘기를 잠자코 듣더니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을 읽다가 알게 된 일화가 하나 있는데, 이 얘기를 듣다 보니 생각났다며 들려주기 시작했다. 핵심은 사람은 늘 자기를 도와주는 사람보다는 늘 자신이 도와주던 사람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내가 손절한 친구는 늘 자기 후배들한테만 밥을 사주고 늘 자기에게 밥을 사주는 나에게는 당연한 듯 얻어먹기만 했다. 이렇듯 그는 꽤 교양이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가 그는 이 회사 사람들과 한솥밥을 먹으며 같은 소속 취급받는 것에 대해 통탄하는 거 같았다.


그 외에도 나름 커피에 관심이 많아서 나에게 10%사에서 파는 산미가 들어간 아메리카노와 스타벅스 오늘의 커피 숏 사이즈를 추천하기도 했고, 브레이브걸스의 노래와 그 그룹의 '왕눈좌'라는 멤버를 좋아하며 회사 내에 '가난하다 가난해'라는 유행어를 퍼뜨리기도 하고, 한사랑 산악회라는 유튜브 콘텐츠를 소비한다는 점이 있다.


경력직으로 이 회사에 입사한 지 1년이 다 되어가서 조만간 퇴직금 받고 퇴사할 계획이라던데 아쉬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K주임님! 좋은 회사도 가시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열정! 열정!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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