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 스스로 '자' 불 땔 '취'.
"손수 밥을 지어 먹으면서 생활함" - 표준국어대사전 참고.
직장인인 나는 최근에 자취를 시작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 계기는 아주 사소했다. 야외 작업을 하고 차에서 쉬던 중이었다. 더위에 시달리면서도 무료해진 나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정리해봤다. "9시까지 출근, 이렇게 땀 뻘뻘 흘리며 실컷 일하고 6시에 퇴근, 약 50분 운전 후 7시에 집에 도착, 지친 상태에서 글쓰기 후 11~12시 취침.." 그러다 나는 문득 하루, 그리고 한 달에 출퇴근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무작정 계산해봤다.
하루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은 왕복 기준으로 출퇴근 거리 약 80km, 소요시간 1시간 20분, 교통비 11,200원(하이패스 2,200원, 주유비 9,000원)이다. 그렇다면 한 달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은? 주 5일 출근 총 20일이라고 가정하면 출퇴근 거리 1600km, 소요시간 26.7시간, 교통비 224,000원(하이패스 44,000원, 주유비 180,000원)이다. 결코 적은 비용이 아니다. 특히 아직 수습기간이라서 한 달 실수령 200도 안 되는 나에게는 매우 치명적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굳이 집에서 출퇴근을 해야 하나?", "자취를 해도 비슷한 비용이 들 거 같은데?", "만약 집에서 출퇴근하는 비용보다 자취 비용이 더 들더라도, 집에서 출퇴근할 때 소요되는 시간과 체력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데?", "정 돈이 많이 들면 식비, 커피값 아끼면 되잖아?", "내가 직접 돈 벌고 생활비 충당하면 경제관념, 자립성도 생기니 나쁘지 않은데?"
이때부터 내 눈에 자취에 대한 콩깍지? 가 껴버렸다. 이유가 있어서 자취를 하려기보다 자취를 하고 싶어서 이유를 만드는 느낌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생각해낸 이유들은 다 타당성이 있고, 진정한 성인이 되기 위해서라면 자취라는 것은 한 번은 꼭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즉시 휴대폰에 부동산 중개 앱을 설치하고 직장 근방의 월세 매물을 찾았다. 마침 딱 두 군데가 있었다. 심지어 두 매물 다 직장에서 도보로 12분 거리에 위치했다. 내가 평소에 집에서 피시방이나 카페 가던 거리다.
두 매물 중 하나는 보증금과 월세가 좀 비싸고 옵션도 적지만 남향이고, 다른 하나는 보증금과 월세가 앞의 매물보다 저렴하고 옵션이 더 많지만 동향이다. 사실 나는 햇빛 별로 안 좋아해서 일조권을 포기하고 후자를 택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몇 달 전에 손절했던 '친구였던 놈'이 자취방 구할 때 같이 다니며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몇 달 전, 내가 그놈과 방을 찾으러 돌아다니다가 '굳이 남향 아니어도 방 값싼 거 구하면 땡이지 않냐'라고 물어보니까 '방에 볕이 쬐어줘야지 곰팡이가 잘 안 생기고 꿉꿉한 냄새도 안 난다'라고 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냥 일조권을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내가 지금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자취를 할 이유는 생겼다. 구체적으로 정하자면 1. 갈 예정인 곳들 임장 하기, 2. 생활비 계산, 3. 임장한 매물들 비교해보고 확정하기, 4. 필요한 짐 정리, 5. 마지막으로 자취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오레오 맵으로 정리해서 글로 작성 후 부모님 설득하기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