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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얌전한고양이 Aug 18. 2021

장기출장을 권유받았다.

그날 나는 고비 하나를 넘겼다.

우리 측량 회사에는 상수도 측량, 한전 측량, 도로 측량, 그 외 잡다한 수준측량, 하수 조사 등의 업무가 있다. 그리고 강원도나 충청도, 아니면 경남권인데 회사로부터 가는 거리가 꽤 돼서 업무를 원활하게 하려면 해당 지역에서의 숙박이 불가피한 현장으로 가는 것을 장기출장이라고 한다. 장기출장을 가면 도로를 모양 따라 측량하고, 도로 위의 모든 시설물들을 측량하고 조사하는 업무, 하수 조사 등의 업무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출장인원들로 구성된 장기출장팀이 있는데, 장기출장팀은 J이사가 팀장인 팀(편의 상 J팀), H팀장이 팀장인 팀(편의 상 H팀) 등 총 2개가 있다. 마침  H팀에 한 명이 휴가를 갔고, 나는 늘 가던 현장 작업이 끝난 상태였다. 그리고 H팀은 마침 산청군에서 측량을 다 끝내고 놓친 몇 군데만 마저 채우는 '보완 측량'을 장기출장이 아닌 당일치기로 할 예정이었다. 그래서 그런 건지 그 팀에 내가 끼워졌다.


나는 여기서 무언가를 느꼈다. 최근에 장기출장 인원이 부족하다는데, 마침 나는 하던 일이 끝나서 마땅히 할 일이 없다. 왠지 H팀장이 측량 중에 또는 사무실로 복귀했을 때 L 이사가 나에게 장기출장을 권유할 거 같은 느낌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산청군으로 가는 차에 탑승했을 때부터 장기출장을 못하는 이유를 만들어두고 있었다.


차에는 H팀장, J사원, 최근에 입사한 Z사원, 그리고 내가 탔다. 까무잡잡하고 까칠한 인상의 J사원은 겉모습과는 다르게 친절한 어투로 나에 대해 계속 물어봤다. 몇 살인지, 회사 오기 전에 뭐 했는지, 군대 어디서 복무했는지, 여자 친구 있는지 등등.. 하지만 그 사람이 대화를 이어나갈 껀덕지를 못 찾기도 했고, 나도 이 사람들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게 편하겠다 싶어서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으니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약 한 시간 반 뒤, 우리는 산청군에 도착했다. VRS와 야장을 꺼내 들고, 측량을 하지 못했던 곳을 측량했다. 벤치, 신문 통, 옹벽, 그 외 별에 별 걸 다 측량했다. 내가 J사원이 측량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자 J사원은 친절하게 이것저것 다 알려줬다. 그리고 '장기출장 한 번 다녀오면 업무 실력이 확 오른다'라고 얘기했다. 나중에는 H팀장이 카페에서 음료수를 사줬다. 그리고 점심 먹기 전에 또 한 번 사줬다.


점심시간이 돼서 낙지덮밥을 먹으러 갔는데, 계산할 때 내가 카드를 꺼내고 있으니 H팀장이 나보고 카드 집어넣으라고 하고 또 본인이 사줬다. 슬슬 부담스럽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심 먹고 나서 또 한 번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줬다. 다들 편의점 벤치에서 음료를 마실 때 H팀장이 나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봤다. 부모님 뭐하시는지, 형제 있는지, 회사 다니는데 힘든 건 없는지, K주임이 잘 가르쳐 주는지 등등 말이다.


그러다 뜬금없이 장기출장 생각 있냐고 물어봤다. 이미 대답할 내용들이 준비되어있던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00이 혹시 장기출장 생각 있니?", "제가 차멀미가 심하기도 하고, 얼마 전에 아빠가 술 드시고 넘어지셔서 팔 다치는 바람에 밥을 못 해 드십니다. 제가 해 드려야 합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J사원은 '출장 인원 부족할 때 여행 한 번 한다고 생각하고 지원해달라'라고 했다.


그 뒤부터 해가 쨍쨍해지기도 했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땡볕에서 하수맨홀 열고 시설물 위치의 좌표를 취득하고 뭐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었는데, 매우 힘들었다. 오전부터 힘들게 했으면 내가 장기출장 안 한다고 할까 봐 조절했었는데, 내가 거절하니까 인정사정없이 했던 건 아닐까 싶다. 사실 나는 옆에서 거들기만 했지만 날이 너무 더워서 어지럽고, 머리가 아팠다. 장기출장 가겠다고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그 뒤 겨우겨우 일 다 꺼내고 사무실로 복귀했다. 오후 6시 거의 맞춰서 오니 K주임이 있었다. K주임은 내 몰골을 보더니 고생했다고 했다. 내가 K주임에게 다시 상수도 측량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이젠 상수도 하면 큰일 난다고, 이유는 월요일에 알려주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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