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얌전한고양이 Aug 24. 2021

식혜를 먹을 수 없는 이유

자주 가는 국밥집에서 일어난 일

가격이 적당하고 맛도 괜찮아서 내가 자주 가는 국밥집이 있다. 요즘 안 간지 오래돼서 한 번 가 봤다.

-체온 측정해주시고 이 번호로 전화 한 번 부탁드립니다.

원래 서빙하시던 아주머니가 그만두셔서 낯선 아주머니가 주문을 받았다. 쌍꺼풀 없는 선명한 눈매가 꽤 매력적이었다.

-돼지국밥 하나 주세요

원하는 대로 해주고 자리에 앉아서 바로 주문했다.


잠시 후 국밥이 나왔다.

-국밥은 이미 간이 되어 있고요~ 김치는 곧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깍두기는 셀프코너에서 드시면 돼요!

서빙해준 아주머니는 나에게 이것저것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온 지 얼마 안 돼서 내가 단골인 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가게 운영은 부부가 하는데, 마침 부엌에서 일하고 있던 사장 아내가 서빙하는 아주머니와 대화하고 있었다. 사장 아내는 상당한 미인이다. 평소에는 가게에서 애들을 돌보며 일하는데 오늘은 평일이라서 학교나 유치원에 보낸 거 같았다. 서빙 아주머니는 사장 아내에게 휴대폰으로 뉴스속보를 보여주고 있었다. 서로 반말하는 걸로 미루어 보아 둘이 원래 아는 사이거나 동갑일 것이다.


국밥을 먹으며 그들이 대화하는 걸 보고 있는데 사장이 들어왔다. 양손 가득 먹을 걸 사들고 온 이 사장은 옷차림이 힙? 했다. 좀 젊게 입는 편이다. 그러고 보니 식당에서 나오는 노래도 전부 멜론 차트 상위권에 나올만한 노래들이었다. 사장이 고른 거 같다. 오늘은 검은색 야구모자를 쓰고 검정 배경에 화려한 무늬의 박스티, 화려한 무늬의 와이드 슬랙스를 입고 왔었다. 늘 웃는 상인 그는 내가 국밥을 먹고 결제할 때마다 친절한 미소를 날리고는 하는데, 이번에는 국밥 먹는 나랑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날리며 인사를 했다. 나는 안경을 벗고 있어서 나한테 인사하는 걸 몰랐다가 뒤늦게 알고 인사했다.


사장 부부와 서빙 아주머니는 셋이서 사장이 사 온 밀면을 먹고 있었다. 내가 다 먹고 계산하려고 계산대로 가니 서빙 아주머니가 계산을 해줬다.

-저 쪽에 식혜 있으니 드시고 가세요~

제일 난감한 순간이 왔다.

사실 나는 식혜를 굉장히 좋아한다. 하지만 이 가게 식혜는 먹지 않는다. 약 1년 전에 굉장히 충격적인 것을 봤기 때문이다.


이 가게 식혜는 스테인리스 재질의 원통형 통에 담겨 있었다. 그리고 식혜를 퍼갈 수 있도록 통 안에 국자가 놓여 있었고, 국자 손잡이 끝에 고리가 있어서 식혜 통 끝에 걸어서 국자가 가라앉지 않게 되어 있었다. 나는 늘 국밥을 먹고 그 식혜를 먹어왔었다. 하지만 어느 날 평소처럼 식혜를 먹기 위해 통에 다가가서 뚜껑을 연 나는 충격적인 것을 봤다. 식혜가 스테인리스 통에 꽉 차서 손잡이까지 차 올라와 있던 것이다! 사람들의 손이 닿는 손잡이가 식혜에 잠긴 걸 본 나는 그 뒤로 이 국밥집 식혜를 먹지 못했다. 물론 이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작가의 이전글 기름종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