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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호리 Aug 05. 2015

#1.우산외상(雨傘外上) 이야기

낭만적 신용사회

새벽에 내린 비 때문에 

잠을 설치느라 어렵게 기상했다.

분주한 출근 준비를 끝내고,

창 밖으로 손을 내밀었을 때만 해도 

빗방울이 손에 맞지 않아서 

밤새 비가 그친줄로 알고 그냥 집을 나섰다.


현관을 지나 지상으로 빠져나오는 순간

멀리 아스팔트에 고인 물에 비치는 작은 파동으로

보슬비가 내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다시 올라갈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산들이 모두 차안에 있었다..

집에 가서 차키를 갖고 주차장을 갔다가, 우산을 빼들고 다시 지상으로..

머리속이 복잡하게 움직였다.


그냥..

그러지 않기로 했다.


막연한 믿음이 생겼다.

비는 곧 그치리라.


버스정류장까지 빠른 걸음으로 10분..

10분 동안 보슬비 쯤이야.. 괜찮을거야.

머리에 바른 왁스가 좀 녹아서 두피에 좀 베여도.

.. 그래.. 오늘 밤에 깨끗히 씻어내지 뭐..

약간 여드름 생겨도 뭐.. 며칠이면 없어지니까..


종종 걸음으로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한 300미터쯤 걸었을까.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쳤다.

그리고


 '후두둑' '후두둑'..


그때.. 난 그냥 그것이 바람 때문에 

나무나 건물에 맺혔던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라고 생각 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소리가 달라졌다. '쏴...' 

그것은 세찬 빗줄기의 소리는 아니었지만,

이것이 곧 굵어질것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을만한 소리였다.

마치 전주곡에서 심벌즈 트레몰로가 약하게 울릴때 

우리는 곧 웅장한 크레센도의 합주가 나올 복선임을 깨닫게 되는것처럼..


뛰었다.

버스정류장에 빨리 도착해서 버스에 타버려야겠다고..

하지만, 내 운동화가 타버릴 정도로 힘차게 뛸 체력이 없었다.

허리부터 전해져오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근육들은

나를 강하게 잡아 당기고 있었다. '가지말라고..' '헛수고라고..'


'無理です!(무리데스!)'


조금 뛰는 척을 해보려다.. 

길가 쪽으로 방향을 비틀어 

근처 초등학교 앞의 '문방구' 천막 밑으로 들어갔다.

일단.. 비는 피했는데.. 이제 어떡하지?

'뭐.. ' 어떡하라고..


'우산.우산.우산...'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우산'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집과 버스정류장의 한 중간의 위치에 있는 상황.

어디로 뛰어 가던 비는 홀딱 맞게 생겼다.


단언컨데..

지금은 '우산'만이 나에게 완벽한 물질이란 것을..


'두리번....'

'아.. 그래! 내가 서있는 이곳.. 문방구라면.. 우산이 있을꺼야..'


그리고 곧 생각이 났다.

내 지갑 속에 '현금'이 한 푼도 없다는 것을.

그리고 생각했다. '아.. 카드는 안받겠지?'


"ふるい" 


이곳은 너무 낡았다.. 

1986년.. 내가 국민학교를 다닐때 보았던.. 

친구 아버지가 운영하던.. 그런 느낌의 문방구다.

'이곳에서 절대 신용카드 따윌 받을리 없어!!


 단지 코흘리개 아이들이 깐돌이나 사먹고

 지점토나 샤프심이나 사는 그런 곳이라구!!'


매직으로 삐뚤빼뚤하게 '오늘의 준비물'이 적힌 코팅지가 

머리 위에서 모빌처럼 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빌 뒤에.. 우산 3개가 걸려있었다.

검은색 장우산. 분홍 3단 우산. 야광 어린이 우산.


혹시나 했다. 그래도.. '요즘.. 카드기 안쓰면 안되잖아?' 라고

'잠시.. 국세청에 아는 사람이 누구였더....'  -_-;; 이런;


잠시 생각했다..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정의를 위해서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우산을 훔쳐서 뛰어볼까!? 라고... 


...


각종 조잡한 장난감과 문구류가 뒤섞여 있는 짐을 비집고 통로로 들어갔다.


"저기.. 카드 안받죠?"


저쪽 어두침침한 곳에 늘어진 흰색 티셔츠를 입은 47세 정도 되는 아저씨가

천장에 주렁주렁 달린 곤충 채집통을 헤집으며 얼굴을 내밀었다.


그는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라도 들은듯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본능적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통로를 나가기도 전에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돌아서 설명을 했다.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정신만..

아니 여튼 또박또박 잘 설명하자..


"저기... 제가 우산을.. 안 갖고 나왔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요..

 그런데 제가 ... 현금이 없어서 그런데...

 신분증 확인하고 명함 맡기고 우산.... 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 아저씨는.....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며

너의 꾀에 속아넘어가지 않겠다고 생각한것인지..


너무나 엉뚱하게도 

"집에 가는 길이면 그냥 뛰어가면 되잖아요"


'No!!!


 나 지금 출근중이라구!!!

 이렇게 깔끔하게 왁스까지 바르고 깨끗한 옷을입고

 직장인들이나 메고 다니는 가방을 멘것이 안보이냐긔!!'


그는.. 왜.. 내가 .. 

아침 7시 30분경에 집에 들어간다라고 생각한걸까..

엉뚱한 암초를 만났다.


지스큘피(disculper)

프랑스어로 결백을 증명하다라는 뜻이다.


졸지에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란 것을 증명해야 하는 위치에 놓였다.


'어버버..'


"아니. 그게 아니구요. 나가는 길인데.. 

 아니. 제가 요 앞에 아파트에.. 사는데..

 제가 밖으로 손을 내밀었는데.. 비가.."


구구절절 했다...

내면의 소리가 들렸다

'이 교수! 더이상 구질구질하게 이야기 하면 안된다오! 하지 말게나! 멈춰!!'.. 라고..

 (↑ 때때로 불리는 나의 소셜포지션 )

했지만.. 나는 계속 나를 설명하고 있었다.

강력한 자기방어기제 발동..


어느덧 내 손에는 지갑이 들려 있었다.

나는 신용카드가 수두룩 꽂혀 있는 지갑을 열어 보여주며

심지어 돈을 넣는 포켓에 신세계상품권과 현대백화점 주차권 밖에 없음을 보여줬다.. 

찌질했다. 이것은. 


현대카드 골드프렌드쉽 회원인데. 포인트로 유럽왕복도 가능한데..

신한카드 플래티늄 회원인데... 호텔가면 막 발렛파킹도 무룐데...

현실은 몇 천원짜리 우산 하나 살 현금이 없는 


'거러지..'

(알겠지만.. 거지라는 뜻)

아저씨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신분증과 명함을 꺼냈다.

그리고 이름을 대조해서 보여줬다.


밖에 비는 조금 더 굵어졌다.


나는 가방속에 있는 아이폰과 갤럭시노트를 양손에 꺼내 들고

명함 속에 있는 전화번호로 다이얼을 눌렀다.

"저.. 여기 이 번호.."


아저씨는 이 거지같은 내 모습이 불쌍해 보였는지..

뭔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있었다.


"몇 시에 퇴근해요?"


"여!! 여섯시요!!"

"아! 제가 오면 한 7시나 7시 반쯤 될테니.. 

 그때 꼭 갖다 드릴게요!"


"어떤 걸로 하실래요"


' 그가.. 결정했다... '


문방구 주인님께서..

외상을 받아주셨다!!!


신시기 서울땅에서 외상이라니....

이같은 신용사회를 봤나!


"오천 오백원!! 오천 오백원 맞죠"


상냥하게 말했다. 

난... 난... 그럴수 있는 사람이니까....

자..자존심따위 그게뭔데.. 개나 줘버려..


포장지를 떼고, 상표를 떼고 우산을 펼쳐들었다.

'자동우산이네!!'


'아 좋으다!! 비를 다 막아준다!! 디게 좋다!!'

론리아일랜드(The Lonely Island)의 'I'm on a boat'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I'm put up an umbrella. motherfucker, take a look at me

You can't stop me motherfucker. cause I'm hold an umbrella

Take a picture, trick, I'm on a boat, bitch

getting everybody all wet.

I'm put up an umbrella, motherfucker

I'm the king of the world, on a boat like Leo

Get the fuck up, this umbrella is real


문방구 주인님 짱짱! 

아저씨가 내 뒤를 배웅해 줬다.

나는 다시한번 내가 출근길임을 증명이라도 하는듯..

버스정류장 방향을 향해 뛰었다..


'나 출근중예요! 아즈씨. 나 꼭 일곱시 반에 오천오백원 들고 여기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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