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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호리 Sep 07. 2015

#7.카모메 식당 가는 길

핀란드에서 나는 부자가 되었다


지난해 가을, 핀란드로 여행을 떠났다.


떠나기 전 핀란드를 배경으로 한 일본 영화 <카모메식당, かもめ食堂>을 찾아봤다. 카모메식당은 내 표현으로 '기-승-무-결(起承無結)'의  영화다. 클라이막스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다 할 사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큰 여운이 남는 영화다. 영화를 보고 나면 가상의 식당인줄 알면서도 그 곳을 찾아 나서고 싶어진다.


카모메식당.2006


나만 그런것이 아니었다. 핀란드를 찾는 일본, 한국인 여행객들에게 <카모메식당>은 이미 필수방문 코스가 되어 있었다. 영화의 배경 장소로 사용된 카빌라 수오미(Kahvila Suomi) 식당은 영화와는 다르게 일식(日食)이 아닌 현지식을 판매하고 있다. 그나마 영화에서 눈길을 끌었던 '시나몬롤'이 관광객의 아쉬운 발길을 달래주었다. (사실 시나몬롤은 이웃나라 스웨덴에서 발명한 국민빵이다.)


나는 영화를 만든 '오기가미 나오코(荻上直子)' 감독이 궁금해서 그가 제작한 거의 모든 작품을 찾아봤다.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토일렛>, <안경>, <요시노 이발관> 등이다.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와비사비(わび・さび)'한 느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와비사비란 일본 전통의 미적(美的) 관념인데 쉽게 말하자면 '한적함의 멋' 쯤이 될까. 한국에서는 이들 영화에 '슬로우 라이프 무비', '힐링 무비'라는 이름을 붙였다.



<카모메식당>을 찾기로 했다.


원래 핀란드를 가는 목적은 오로라를 보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의 바람이 아니라 아내의 바람이었다. "살아생전 반드시 오로라를 보고싶어!" 아내는 오로라를 볼 생각에 아이처럼 매우 들떠 있었다. 나 역시 자연다큐에서나 볼 줄 알았던 '오로라'를 직접 보러 간다는 것이 설레었다. 하지만, 실제로 더 보고 싶은 것은 '카모메식당'이었다. 그곳에서 '코피루왁(Kopi Luwak)'과 시나몬롤을 먹게 된다면 진심으로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코피루왁'이라는 주문을 외면 커피가 맛있어진다고 한다


핀란드 여행의 첫 일정은 <카모메 식당>의 오프닝을 장식한 헬싱키 항구였다.


"핀란드의 갈매기는 뚱뚱하다.

 비대한 몸으로

 항구를 뒤뚱뒤뚱 걷는 꼴을 보면

 초등학생 때 키우던

 고양이 나나오가 생각난다."

- 영화 <카모메 식당> 오프닝 中


핀란드의 갈매기 ⓒ dooholee


나는 그 갈매기가 보고 싶었다. 뚱보 갈매기. 그리고 사치에가 장을 보던 재래시장. 처음 와본 곳이었지만,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하지만 직접 본 실제의 항구 앞 '광장시장'은 너무 추워서인지 사람들도 별로 없었고 약간의 시장형태만 있을 뿐 영화에서 처럼 햇살 따뜻한 곳에 정감이 오가는 그런 풍경이 아니었다. 사실 갈매기도 특별히 뚱뚱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한국 갈매기가 새우깡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더 뚱뚱한거 같기도 하고... 여하튼 나에게 거의 핀란드의 국조(國鳥)같이 여겨지는 갈매기를 보고나니 드디어 영화 속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은 들었다.


항구 앞의 청어가게 ⓒ dooholee


아내는 나의 이런 '망상(妄想)'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자신에게는 핀란드의 갈매기나 항구 따위가 그리 감흥을 주는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인천의 '소래포구'보다 못한 이 별볼일 없고 추운 항구를 빨리 떠나자고 재촉했다.


헬싱키 시내 여행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명소란 곳은 사실 도보로 1~2시간 정도 둘러보면 모두 가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 둘을 데리고 도보 여행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아이들을 쉽게 데리고 다니기 위해 가져왔던 '웨곤(wagon)'은 울퉁불퉁한 돌바닥이나 계단, 경사 등을 만나면서 애물단지가 되었다.


여행내내 웨곤을 타고다닌 아이들


가장 유명하다는 헬싱키대성당과 광장 등 핵심적인 명소만 둘러보고 식당으로 갔다. 비싸고 맛있었다.(정말 너무 맛있었는데 많이 비쌌다) 아이들은 울퉁불퉁한 거리를 온 몸으로 느껴서 그런지 식사 후 바로 잠이 들었다. 웨곤에 눕혔다. 웨곤을 굴리기에 거리 여건이 좋지 않았지만, 이마저도 없었다면 업고 다녔어야할 판이니 감사했다.


헬싱키 대성당 ⓒ dooholee


핀란드는 추웠다. 우리가 간 시기가 10월 초순이었는데도 두꺼운 옷을 입지 않으면 안됐다. 10월 평균기온이 5.6도라고 하니 한국의 초겨울 기온과 비슷하다. 저녁시간이 가까워오자 기온은 더 떨어졌다. 대략 2도 정도. 우리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웨곤에 비닐 바람막을 둘렀다.


비닐막을 두루고 온갖 짐을 넣었더니 뭔가 집 없는 부랑자들이 끌고다니는 짐차처럼 보여 약간 신경이 쓰였다. 이 에피소드는 뒤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자


날씨가 너무 추워져 바람막을 둘렀다.


저녁이 가까워오자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나의 염원이던 <카모메식당>을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오로라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하루라도 헬싱키가 아닌 북극지방에 머물기를 원했고, 헬싱키는 단지 로바니에미(북극지방 도시)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경유하는 도시일 뿐이었다.


나는 <카모메식당>을 꼭 가야 한다고 했다. 아내는 잠든 아이들과 추워지는 날씨가 걱정되는 눈치였지만, 남편이 애타하는 것을 느꼈는지 식당을 찾아 가는것을 허락했다. 구글맵으로 검색해보니 도보로 20분 정도 떨어진 위치에 가게가 있었다.




 여보.. 이 길로 가면
작은 공원이 하나 나오는데,
거기에서 10분만 가면
'카모메식당'이야.


구글맵이 가르쳐주는 방향대로 가니 작은 공원이 하나 나왔다.(Gamla kyrkoparken) 공원을 지나는데 교회에서 전도 활동을 나온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며 따뜻한 코코아와 쿠키를 먹고 가라고 했다. 춥고 배가 고팠던 탓에 코코아가 간절하기도 했지만, 낯설기도 하고 코코아를 마시면서 무슨 대화를 나누기도 어려워 미소와 함께 손사래를 날리고 지나쳤다. 무엇보다 식당을 찾는것이 급선무여서 공원에 일행을 안내하고 나는 빨리 자리를 뜰 생각이었다.


공원 벤치에 웨곤을 세워두고 자리를 뜨려는 찰나 한 청년이 뛰어와 코코아와 쿠키를 전해주고 웃으며 말을 걸었다. 무슨 이야기를 한참 했는데 잘 기억은 안나고. 대략 "God Bless you"류의 이야기였다. 아! 이 착한 사람들 같으니라구. 나는 코코아를 받아 아내에게 건네주고 식당으로 발길을 재촉했다.(나중에 코코아를 건네준 교회청년이 생각날 일이 생긴다.)


Gamla kyrkoparken


"여보! 공원에 있으면,
금방가서 사진만 찍고 올게!"
"그래. 시나몬롤 포장해와~"



구글 덕에 쉽게 찾아가나 했던 <카모메식당>...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다.


갑자기 핸드폰이 위치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알고보니 하나의 핸드폰에 유럽 USIM을 꽂아서 태더링으로 데이터를 쓰고 있었는데, 다른 핸드폰을 가지고 온 것이다. 아뿔사... 이미 시간은 십여분이 흘렀다. 다시 돌아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돌아오면 거의 왕복 30분은 걸릴 것이고.. 갈수록 추워지는 날씨에 역정을 내며 못가게 할 것이 뻔했다.


최대한 찾아보기로 했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 왠걸.. <카모메식당>의 모습은 쉽게 보이지 않았고, 이러다 내가 온 길까지 잃어버릴수 있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영화를 떠올렸다. '아.. 경사진 2차선 길이었는데...' 하지만 눈에 익은 길은 나오지 않았다. 옆으로 '고베'라는 일본 식당이 있었는데, 들어가서 물어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일본인이라면 알수도 있어...' '아노.. 에가노 <카모메쇼쿠도>오 싯떼이마스까'  준비멘트를 연습하며 창문 밖에서 서성여 봤지만, 그곳의 종업원들은 모두 핀란드인들이었다. '난다요'.


카모메식당을 찾아가는 길 ⓒ dooholee


밖은 더 어두워졌다. 내 앞에 'International Film maker Academy'라는 곳이 보였는데, 혹시 이곳에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이 공부를 한 것은 아닌지.. 여기가서 '음.. 두유노 오기가미 나오코'라고 물어보면 될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그런 허튼 짓은 하지 않았지만.


젠장. 발길을 돌렸다.


아쉬웠다. 너무 아쉬웠다. 헬싱키까지 와서 <카모메식당>을 보지 못하고 가는 바보라니. 심지어 바빠서가 아니라, 찬바람 부는 공원에 일행을 남겨 둔 채  자기 혼자 빠져있는 영화에 나온 가상의 식당 따위나 찾아 떠났다가 길을 헤매고 겨우 돌아온 멍청한 '오타쿠'라니. 슬펐다. 핀란드에 오기 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카모메식당>을 찾아 갈 것이라고 선전하고 다녔던 장면들이 기억나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아.. 또 하나의 '이불킥'을 남기는 것인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공원으로 열심히 걸었다. 공원에 다다를 무렵 한국인을 발견했다. 핀란드에 와서 처음으로 본 한국인이었다. 심지어 딸과 함께 달걀을 사서 가는 모습을 보니 분명 이곳에 사는 사람 같았다.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용기를 냈다.


"저.. 저기 한국인이시죠"


발길을 멈춘 여자는 한국인이었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아.. 그게 아니고.. 혹시 영화 <카모메식당>이라고 아시나요? 거기 식당이 유명해서..그.."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영화를 모른다고 했다. 주변에 사람들이 찾는 모습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절망적이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50분이 지났다. 모든 것을 단념하고 공원으로 뛰었다. 아내가 왜 이리 늦었냐며 뭐하고 온것이냐고 추궁했다. 혹시 커피라도 한잔하고 왔냐며. 시나몬롤은 어딨냐고 했다.


나는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 싶었지만, 너무 부끄러운 일이었다. 나란사람.. 뭔가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확실히 떨어진 기온 때문은 아니었다. 서먹하다. 아내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웨곤의 손잡이를 넘겨받았다. 추웠다. 우리는 빠르게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기온은 더 떨어져 옷깃을 여며야 했다.


아내는 숙소까지 택시라도 타길 간절히 원했지만 구글 지도에는 약 1km 남짓으로 걸어가도 충분한 거리라고 나왔다. 사실 하루뿐인 헬싱키의 풍경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싶어 '곧 도착한다'는 말로 달랬다. 하지만, 숙소는 금방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미 꽤 걸어버렸는데 중간에 택시를 타는 것도 뭔가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분위기가 더 안좋아졌다. 우리는 말 없이 거리를 두고 걸었다.


이게 대체 뭔가. 춥고, 배고프고, 카모메식당도 못보고, 분위기도 안좋아지고, 한참 걷고, 다리도 아프고, 숙소는 안나오고..


이 와중에,
헬싱키의 저녁은 아름다웠다


은은한 오렌지 빛 조명, 낯선 도로와 신호등, 트램, 세련된 간판과 도시의 빌딩들 사이로 흡사 모델포스를 풍기는 핀란드의 흔한 '일반인'들이 지나는 모습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운 부자도시의 야경을 만들었다.


'이것봐! 행복지수 1위! 북유럽의 밤이라구!'



그때였다. 굳은 얼굴을 한채 두리번 거리며 거리를 걷는 나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고개를 돌렸더니 검은 코트에 단발 머리를 한 중년 여성이 나에게 밝은 미소를 지으며 뭐라고 이야기 하고 있었다. 나는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What? pardon?"


그녀는 내 눈을 마주치며 또박또박 말해줬다.


You are a richman



이건 또 무슨 뜬금포인가. 길가는 외국인에게 느닷없이 '당신은 부자예요'라니.. 뭐지? '니들 같은 동양인들이 핀란드에 다오다니 부자로구나' 이런 뜻은 아닐테고.. 내가 너무 '부티'나 보였나... '아.. 나란사람..훗.'


영문모를 표정으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물었다.


"Oh.. richman...

 What's means? Wh..Why?"


그녀는 몰라서 묻냐는 표정으로 구깃구깃한 바람막을 한 '웨곤'에서 뒤죽박죽 엉켜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두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Your children

그녀는 그 말을 남기고 사라져 갔다. 뭔가.. 뭔가.. 뭔가... 당혹스러웠다. 이건 뭔가 명백히 불쌍한 사람을 동정하고 힘내라고 응원하는 메시지였다. 의역하자면..


'당신에게는 이 아름다운
아이들이 있잖아요..
당신은 진정한 부자예요!
힘내세요!!'



Hahahahahah. 나 그지 취급 당한거야? ㅎㅎㅎ 그래 뭐 나 딱히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래도. 나 직장도 있고, 집도 있고, 차도 있고.. 가끔 소고기도 구우면서 사는 사람이라고!!! 가족들 데리고 북유럽 여행까지 와서  <카모메식당>을 못 찾은것 뿐이지.. 그런 동정따위 받을 사람은 아니란 말이다 ㅜㅜ.(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나의 행색은 어쩌면 헬싱키역 앞에서 봤던 난민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필 소매가 헤어진듯한 빈티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이 정체모를 '리어카'와.. 비닐막 사이로 오늘 한끼만 먹고 쓰러져 누운듯한 아이들. 왜 하필 '노스코리아풍'의 국방색 누빔잠바와 소매가 헤진 빈티지풍의 옷을 매치시켜.. 영락 없는 거지 꼴을 하고 있었을까.


마침 손잡이의 연결부위가 부서져 노끈으로 칭칭 휘감아 둔 웨곤의 모습은 내가 '외국인 부랑자'라는 심증을 굳혀주고 있었다.


'아.. 저기.. 이거 아베크롬비 티셔츠구요..

 이 누빔잠바..

 아니 퀼팅자켓은 랄프로렌이라구요.

 이거 200유로도 넘어요.

 이거 한국 가면 먹어주는데.'


이미 늦었다. 찌질하다.

어차피 영어로 설명도 못한다.


찬바람이 불었다.


문득 공원에서 쿠키와 코코아를 들고 뛰어왔던 교회 청년이 떠올랐다. '그래.... 그렇게 보였던거구나'


코코아. 맛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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