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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호리 Nov 19. 2015

꼰대 주의보

수평적 호칭문화 이대로 좋은가!

직장내 'OO님' 호칭문화. 이제는 IT기업들에게  예삿일이 되었지만 도입 당시는 굉장히 파격적인 일이었다. 'OO님' 문화의 시조새 격인 <DAUM>과 합병한 <Kakao>에서는 앞으로 아예 '영어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헤이 존슨! 로버트 존슨님" 아마도 미드나 구글 홍보 영상에 나오는 그들의 문화가 굉장히  '쿨'해 보였던 것이라 생각된다.


직급에서 오는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상명하달(上命下達)의 소통문화를 없애고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했고 일견 변화하는 시대에 적절한 처사라고 생각했다. 심리적으로 계급장을 떼는 효과가 있어서 보고 체계가 단축될 것으로 기대했고, 특히 하위 직급자에게는 자유로운 소통의 기회를 준 것이라고 느껴졌다. 뭔가 우리가 고대하고 그리던 서양식 업무 문화를 도입하는 단초라고 생각했다.


이런 판단에서인지 많은 기업들이 수평적 호칭을 도입했다.  IT기업에겐 '이름+님'이 보통의 문화가 되었고, 보수적인 대기업들도 '혁신'이라는 바람을 타고 각종 '듣보' 직함들을 우후준숙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매니저', '프로', '어소시에이트'...


하지만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유교적 관행이 저변에 깔려있는 한국의 조직 문화에서 'OO님' 도입이 유연한 소통을 만드는 정확한 솔루션은 아니었다. 실제로  OO님으로 부르다가 다시 원래 직급 호칭으로 변경한 KT나 해태제과 등은 호칭만 바뀌었지 실제 위계나 업무방식은 바뀌지는 않았다며 실패담(?)을 늘어놨다. (주간조선)


IT를 다루는 신생 기업들의 직원들이야 어차피 '뉴밀레니엄' 세대로서 기존 관행이 학습되지 않은 터라  '신호칭(新呼稱)'을 쉽게 수용한다손 치더라도 '노인공경'을 최고의 윤리이자 덕목으로 배워온 70년대 아니 80년대 이전 태생들에게는 어색해도 너무 어색한 것이다.(나만 구닥다린가)


하지만, 요즘 세상에는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지는' 거니까.. 일단 받아들여 본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그렇지 않더라도 '일단' 이것이 시대의 변화구나라고 이해하고 본다.


하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even though 말이다...


이런 너희들만의 조직 문화를 '그렇지 않은 조직원'에게 사용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것은 수평 호칭 문화의 도입배경을 잘못 이해하는 것에서 오는 것이다. 수평 호칭문화는 내부 조직원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할 목적으로 조직 내에서만 통용돼야 하는 규약이다. 그것을 그대로 가지고 나와서 위계 질서를 강하게 의식하는 '수직형 조직'의 구성원에게  자신들의 편한 호칭을 그대로 응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또한 그것을 불쾌하게 여기는 것을  못마땅해해서도 안된다. 그것은 자신들의 문화에 대한 '강요'다. 물론 편하게 술을 마시거나 밥을 먹는 사석이라면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비즈니스 관계라면, 특히나 상대가 클라이언트라면 이름을 쉽게 부르는 것을 기분좋게 들을리 만무하다.


오늘 오전에 있었던 일이다.


"네 누구시라고요?"

"저 OOO  이두호입니다"

"아~ 두호 차장님"


상대는 겨우 서너 차례 업무차 만난 용역업체의 나이 어린 노무 시.. 직원이다. 당황스러웠다. 보통 이런 관계에서는 '성(姓)+직급'을 부르는 것이 익숙하고 일반적인게 아닌가. 처음에는 당황스러워 '빡' 아니...  확 지를뻔 했는데, 나는 멋쟁이 지성인이므로 아무렇지 않은 태도로 쿨하게 더욱 깍듯이 그를 대했다.


전화를 끊고 옆 직원에게  이야기했더니 무슨 그런 사람들이 있냐며 맞장구를 쳐줬다. 나는 후배에게 아량이 넓은 '신세기 매너 지성인'으로 보이기 위해서 심지어  그들을 이해시키려 했다.


"아.. 생각해보니 그 사람들 미팅하면서 자신들의 사장 이름도 OO님이 라며 막 부르더라고~"

"아! 인터넷 기업!"(척!하면 척! 우리 회사 후배는 이 정도다)


그런데, 아무리 IT 기업이라도 비즈니스 매너는 좀 교육을 받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아직 그런 것이 익숙하지 않은 '인류'들이 절반은 넘는다. 아무렇지 않게 받기에는 너무 갑작스럽다. 특히 고객사를 대면해 상품을 팔거나, 용역을 제공하는 B2B 업체는 내부의 조직문화는 그대로 지키되 외부에 나와서 고객의 이름을 쉽게 부르는 것은 실례가 아닌가 생각된다. 아니 그건 실례다. 실례맞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꼰대가 되어가는 건가..'


나는 아직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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