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CEO 이야기 : 이소영
과거의 경험에서 지금의 열쇠를 찾으세요
부엌을 만난 큐레이터
쿠킹클래스와 요리 메뉴 개발, 출판, 컨설팅 등 식문화 전반에 걸친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라퀴진의 이소영 대표는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원에서 박물관학(Museum studies)을 공부한 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장기 인턴으로 일하며 큐레이터의 꿈을 키웠다.
한국으로 귀국한 시점에 리빙 관련 사업을 하던 아버지로부터 뜻밖의 요청이 있었다. 매장 안에 부엌을 차려두고 리빙샵이 취급하는 식기들을 활용해 요리 수업을 진행하면 더 많은 매출을 기대할 수 있으니, 수업을 기획하고 운영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보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잠깐만 하고 이미 취업이 확정된 큐레이터의 길을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애초에 아무런 프로그램이나 방향성 없이 추진됐던 탓에 모든 일은 그녀의 몫이 되었다.
큐레이터를 준비해 왔던 그녀가 떠올린 아이디어는 부엌을 박물관이나 갤러리처럼 운영하는 것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부엌에 큐레이터 역할을 하는 요리 전문가를 초빙해 음식을 매개로 한 특별한 이벤트를 기획하고 제공하는 것이다. 2000년 당시, 단지 음식을 만드는 공간으로만 여겨졌던 ‘부엌’의 이미지를 생각해 볼 때 매우 신선한 발상이었다. 이 대표는 여기에 프랑스어로 부엌을 뜻하는 ‘라 퀴진(la cuisin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소영 대표는 자신의 전공이 가져다준 색다른 발상으로 요리에 관한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다양한 음식 전문가를 초빙해 요리를 가르치고, 트렌디한 푸드 스타일링을 끊임없이 고민해 만들어냈다. 이렇게 쌓인 푸드 레시피와 스타일은 국내 유수의 식품 회사와 카페, 레스토랑의 메뉴 개발과 비주얼 컨설팅 사업으로 이어졌다. 최근에는 요리 동영상 제작, 출판 등 콘텐츠 사업으로까지 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다. 라퀴진이 운영하는 푸드 코디네이터 아카데미(FCA)는 설립 후 15년간 많은 졸업생을 배출했고, 이들은 현재 유명 푸드스타일리스트, 전문 매체 기자, 식음료 마케터 등으로 활동 중이다.
라퀴진의 목표는 누구든지 요리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여, 요리의 전 과정을 즐기도록 만드는 데 있다. 이런 까닭에 아카데미에서는 모든 요리를 잘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도 제대로 된 조리법을 코칭해 적어도 그 요리에 있어서만은 자신 있고 즐겁게 요리할 수 있도록 특별한 세프를 길러내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다시 보면 새롭다
경영이나 요리와는 전혀 무관한 분야를 전공한 탓에 초창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가령 강사를 섭외하는 것만 해도, 네트워크가 없어 일일이 유명 잡지에서 요리 기사를 뒤져 전문가를 찾고 어렵게 연락처를 알아내 섭외해야 했다. 경영도 쉽지 않았다. 박물관학은 비영리적인 운영방식을 배우는 것이었기 때문에 비즈니스를 알아가는 데는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된 페이스북 마케팅 강의는 라퀴진을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으로의 이끄는 커다란 이정표가 되었다. 이 대표는 강의를 들은 후 페이스북을 개설하고 ‘100자 레시피’라는 콘텐츠를 연재했다. 예상외의 좋은 반응이 있자, 이를 계기로 온라인에 요리와 관련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해 판매하는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또한, 포털사이트 등 다양한 미디어와 채널에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라퀴진의 브랜드를 알리는 기회를 만들었다. 흔한 블로그도 한번 운영해보지 않았던 그녀가 페이스북을 알고부터 콘텐츠 비즈니스에 눈을 뜨게 된 셈이다. 라퀴진은 페이스북에 꾸준히 ‘오늘의 요리팁’, ‘레시피 동영상’ 등 유익한 정보를 게시하고, ‘쿠킹클래스’, ‘FCA 수업 현장’, ‘수강생 모집’ 등을 공유하며 비즈니스에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이 대표는 사업으로 인해 시간이 부족하지만, 개인적인 삶의 영역도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균형을 맞춰가고 있다. 적어도 1주일에 두 번은 온전히 자신을 위해 투자하고, 가족들과는 사업장에서 만나 자연스럽게 음식을 나누며 즐긴다. 육아에 있어서는 ‘엄마는 마냥 희생하고 주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주체로서 열심히 일하고 즐기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 최대한 독립적으로 생활하도록 가르친다. 딸도 엄마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즐기면서 살아가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녀는 창업을 준비하는 여성들에게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과거의 경험에서 지금의 열쇠를 찾아보라’고 조언했다. 아울러 ‘똑같은 것도 다른 시각으로 다시 보면 새롭게 보인다’며,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자신만이 가진 ‘고유한 관점’을 적극 활용할 것을 주문했다.
이 대표는 조만간 한남동에 라퀴진이 직접 써보고 추천하는 제품들을 제안하는 새로운 개념의 공간인 ‘labo’를 오픈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더 많은 이들이 라퀴진의 제안을 접할 수 있도록 ‘온라인 큐레이션 몰’을 열 생각이다. 그녀의 색다른 안목과 즐거운 상상력으로 많은 사람들의 요리 생활이 더욱 즐겁고 풍부해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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