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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호리 Feb 12. 2019

일상 같은 여행, 더 특별한

나는 왜 치앙마이에서 커피사진을 찍고 있나..


외국에서의 ‘일상(日常)’,

꽤 오래전부터 꿈꿨던 로망이다.


한자 그대로 ‘항상 常’


이방인의 신분으로 경험하는

가공되고 차별된 문화와 체험이 아니라,

원래의 날 것 그대로, 항상 그랬던 것처럼

아무런 이질감 없이 현지에 섞여서 사는 상태.


진짜배기, Genuine, 真的, ほんもの

완전 ‘쌩깡 레어 레알 하드코어 로컬라이프’ 말이다.


‘한달살기’가 트렌드가 된 것도,

아마 타국에서의 ‘진짜 일상’을 경험해 보고 싶은

여행자들의 로망 같은 것이 아닐까?


‘특별하지 않아서 더 특별한’


하늘이 멋져도, 그냥 뭐 쿨하게 “음... 해가 떴네 ..”


내 나라의 복잡한 정치, 경제, 사회 뉴스나

가족과 직장, 공동체와의 대소사들을

그러든지 말든지 나 몰라라 뒷전에 두고

‘이 장소, 이 시간’에 온전히 충실해 보는 것.

마치 이곳 사람인 듯.


하루하루 보람찬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여행자로서의 목적성이나 강박, 욕심

일정에 대한 조바심이 없는 그런 상태로 말이다.



여행자인 주제에..


하지만,

다들 그런 마음이 한편에 있더라도

실상은 쉽지 않다.


짧은 휴가 일정, 촉박한 귀국일을 앞두면

누구든지 시간에 쫓겨 두리번두리번

구석구석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사지 않아도 되는 물건들을 구경하고

해봐야 뻔한 투어에 참여하고,


남는게 사진이고, 인증샷을 찍어야 다녀온거니..

구글과 인스타에 널리고 널린 사진을

똑같은 배경에 똑같은 포즈로 찍어 올리고,

예쁜 음식, 예쁜 커피, 예쁜 빵, 예쁜... 예쁜..


저녁에 되어 야시장에서 맥주를 마시고,

유명 로컬 푸드를 먹고 편의점이나 마트에 들려

또다시 두리번두리번...


귀한 시간 짜낸

5박 6일, 7박 8일짜리 여행자에게는

벗어나려야 방도가 없는 당연한 선택이다.


너무나도 뻔하고 뻔한 블로그에서 봤던

그 이야기가 우리의 여행 이야기다.


그런 지적을 하고 있는..

나마저도 여느 여행자와 다를 바 없는

하나도 특별하지 않은 해쉬태그 5만개의

’그러그러한’ 여행을 똑같이 하고 있다.


“내가 커피를 왜 찍고 있지? 어쩌라고?”


나도 너도 중국인도 미국인도 영국인도

일본인도 캐나다인도 네덜란드인도..

우주인도 외계인도.. 다 그렇게 여행하고 있다.


트립어드바이저를 뒤지고

구글맵의 별점을 확인하고

‘혹시나 여긴 미지의 가게겠지.. ’라고 기대하면,

“짜란~” 어김없이 어딘가에 후기가 대기하고 있다.


한국인의 후기가 많은 곳은

어김없이 한국인의 성지가 되어있다.


“저기 선풍기 이쪽으로 좀 돌려도 되나요?”

“아.. 저희는 괜찮아요..”


이런 대화가 오간다. ‘여기 태국인데요..’




그래서 이번엔 매우 간절했다.

20박 21일, 내 인생 최장의 휴가다.


이 정도 일정이면, 조바심 내지 않고

하루 이틀 정도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되지 않겠나.

걍 여기 사는 사람처럼... ‘일상’ 말이다.


저녁 6시에 숙소로 들어와서

굳이 라면을 찾아 끓여먹고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애들과 탕후루(과일사탕?)를 만들어 먹었다.

그리고는 각자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오늘은 그러고 싶었다.

그냥 상황이 그렇게 되었다.

내일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루하루가 아까워서 미친 듯이 검색을 하고,

혹시나 내가 보지 못해, 하지 못해, 먹지 못해..

한국에 가서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 있을지

찾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은 이렇게 글도 쓰고,

우롱차도 끓여 마시고,

이어폰으로 음악도 듣고,

간지러운지도 몰랐던 왼쪽 다리 종아리 상부에

벌레 물린데 바르는 약도 구석구석 발라줬다.


여유가 있다.

동네 한량의 저녁이다.


이제서야 ‘그러그러한’ 여행이 아니다.

뭔가 이벤트가 없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게 여행인지 일상인지.

일상이 여행같고, 여행이 일상 같은 상태.

뭔가 이것이 진정한 초고도의 경지 같다.


그래서 뭔가 더 보람차다랄까.

아무것도 안한게 자랑.

일종의 ‘여행 허세’ 같은 건가?


그래서 오늘 나에게 있었던

당신이 굳이 몰라도 되는

아무일도 아닌 일상을 공유해 보고 싶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일을 쓰는 주제에...

글이 쓸데 없이 길다..


‘모두 잠든 후에~ ‘ 글쓰는 아저씨







[부록] 일상이 호들갑 <치앙마이 편>
Episode 1. <등교 : 갑작스러운 하루>


오늘의 시작은 아침이 아닌 새벽이었다.

어제 둘째가 뭘 줍다가 팔꿈치 인대가 삐끗했는데,

팔이 빠진 줄 알고 응급실을 갔더랬다.


팔이 빠지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인데,

통증이 있으니 1주~2주 동안 슬링(지지대)을 하고

자기 전에 얼음찜질을 해주라는 처방이 있었다.


“응급실이라니.. 이런것도 일상의 범주지만.. 로망은 아니다.”


애가 놀라고 긴장했던 탓인지,

새벽 2시에 갑자기 깨어나서는

“아빠 얼음 찜질 좀 해주세요” 하는 게 아닌가.


내가 그렇게 부성애가 있는지 몰랐는데,

나는 벌떡 일어나 냉동실에 있던 얼은 물병으로

아이의 엘보를 조심스럽게 마사지해줬다.


확실히 잠결에 한 일이라,

하는지 마는지, 하는 것 같기도 하면서도,

딱히 또 열심히 했다고는 보기 어려운 수준으로

마사지를 해줬다. 여하튼 해줬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그래서 내가 잠을 잘 못 잤다는 것이다.


그런 상태로 아침 7시에 알람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보통의 여행 같으면, 알람을 7시로 해두지 않는다.

조식에 너무 늦지 않을 정도인 8시 30분쯤이

바람직한 알람 시간이다.


에어비앤비 숙소 풍경 “넘나 아침이 밝았다. 어머나 싱그러워라”


그런데,

이번에는 여행이 긴 만큼 애들도 심심해 할듯해,

‘이곳의 일상’이자 특별한 경험을 해보는 차원에서

현지 다중언어학교(bilingual school)에 등록한 탓에

등교를 위해서 7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하지만, 30분 간의 뒤척임은

‘다음 알람’을 맞이하는 알람에 대한 예의인바..

진짜 데드라인인 7시 30분에 일어나 이를 닦고

분주하게 애들을 챙겼다.


오늘은 처음으로 엄마를 집에 두고

나 혼자 애 둘을 데리고 길을 나섰다.


잘 갔다.

운전도 손에 익어서

요조와 장기하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미끄러지듯 등굣길을 밟았다.


‘(노래) 그냥 니 갈길 가~  이사람 저사람~’


흥겹고도 매끈하게 학교에 잘 도착했는데,

반짝반짝 즐거운 톤으로 인사하는 첫째와 달리,

이마에 ‘나 안 갈래’가 적힌 만 6세 둘째 어린이가..

얼음이 된 상태로 징징이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


이걸 어떻게 달래지..

뭔 상황인지는 알겠다.

주말이 지나고 팔에 슬링을 달고 왔으니,

애들이 한 번씩 쳐다볼 테고,

영어 아저씨가 ‘웟해픈’하고 물어볼 테고...


그래서 내가 아침에 교육을 시켰더랬다.

“로운아 선생님이 뭐라 뭐라 하면

  ‘스프레인(sprain, 삐다), 스프레인’ 그러면 돼”


“니맘 다 알겠어..”


애는 뭔가 그런 낯선 상황을 맞이 하고 싶지

않았을 듯하다. 그것도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역시나

애가 안가겠다고 땡깡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 ’


“로운아, 여기 2분밖에 정차 못해”

“뒤에 차들이 밀리고 있잖아”


우리 아이는

공공(公共)을 위해 땡깡을 잠시 접어둘 줄 아는

상식적인 사회인이 아니었다.


아이는 못 배운 티를 내며

2분만 정차할 수 있는 학교 입구 일방도로에서

‘시져시져’를 시전 하며 땡깡의 강도를 높여갔다.


이를 어쩌나.. ㅜㅜ


하지만, 나는 공중도덕을 배운 지성인인 바..

정차한 지 3분 52초를 넘길 무렵,

첩첩이 길어져가는 대기줄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아이를 태운채로 핸들을 돌려

학교 밖 주차장을로 향했다.


아이의 눈은 이미 X자가 되어

절대 가지 않겠다는 표시를 하고 있었다.


단것을 좋아하면서 꿀들어간 아이스크림을 안먹겠다고 땡강


‘달래야 한다. 반드시 달래야 한다’

큰소리를 내거나 윽박지르거나,

공중도덕이나 학생으로서의 의무 따위를

가르치려 해서는 안된다. 만 6세다.

늘 예상치 못한 포인트에서 터진다.


하지만, 딱히 얼르고 달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로운아.. 이대로 집에 가면 너무 심심할 텐데..

 집에 간다고 팔이 아파서 수영도 못하고,

 유튜브나 닌텐도를 시켜줄 수도 없어..

 엄마 아빠 따라 재미없는 쇼핑몰을 가거나

 차를 오랫동안 지겹게 타고 다녀야 해..

 너, 어제 엄청 더웠잖아.. “


“시져 시져”


욱.


“로운아.. 네가 선택해.. 잘 생각해봐..

 학교 가면 네가 좋아하는 그 도하 형인가 뭔가..

 그 형아가 잘 챙겨줄 거야..

 누나한테도 이야기하고..

 오늘은 좀 더 일찍 데려올게..”


“재미없어. 안 갈래.”


아... 이 자식이.. 뉘 집 자슥이고..


“아니.. 로운아..

 너 7시간을 어떻게 보낼라고..

 아니.. 닌텐도도 유튜브도 못한다니까..”


“끝말잇기 하면 되지”


끝말.. 같은 소리..


“아니.. 로운아.. 끝말을 잘 잇지도 못하잖아”


“그림 그리고 있으면 되지”


“너 어제 그림 그리는 거 한 20분 했니?”


“그래도 안 갈래. 가만히 있을래”


아.. 논리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아이다.

참 잘 크고 있다. 어린애가 상식이 통하면 안 되지.


“그래.. 한 30분은 그린것 같기도 하고”


YOU WIN!


9시. 차를 돌렸다.

아내가 문자를 보내왔다.


“애들 잘 들어갔어?”


그 문자를 집에 도착해서야 봤다.

9시 30분이다.


“그냥 데려오면 어떡해..

  아.. 내가 같이 갔어야 했는데..”


나는 포기했다는 표정으로 침대에 누웠다.

아내의 달램과 회유가 시작됐다.


그녀는 최대한 아이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상냥하게 애를 썼지만 그의 말투와 숨소리에는

깊은 ‘빡침’이 어려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무슨 딜(Deal)이 있었는지,

애가 밝아져 있다. 학교에 가겠단다...

‘뭐지.. 이 마더스 매직은?’


‘아...-’


갈 거면서 왜 오자고 한 거야.. 왜 때문인 것.

왜 아무 일도 없는 듯 밝은 느낌으로 가는 건데..


,

,

,


아침인데 나의 얼굴은 새벽 3시 정도에

깨어있는 사람처럼 지쳐있었다.


10시. 아직도 면도도 안 한 아저씨는

데쟈뷔처럼 다시 차를 몰고 길을 나섰다.

영문도 모른채..


갑자기 하루를 시작해버린 아저씨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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