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윤 진 Jun 16. 2021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멸망하지 않고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서 더, 
내려갈 곳이 있나요?

어떻게 더 열심히 살지?
어떻게 살아야 하지?




깊은 내면에서 빠져나왔을 때,

삶은 실타래처럼 엉망진창으로 얽혀버려 있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수십만번도 더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을 외쳤다!

세상에 소리쳐보기도 하고, 

신에게 원망도 해보았다. 

그러나,

되돌아오는 것은 늘 고요한 메아리였다.


어째서 삶은

사소한 것조차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것이냐며,

오기로 이를 악물며 버티기도 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새를 둘러 싼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된다. 

<데미안>, 헤르만 헤세



하나의 벽을 깨고 나오면,

또 의기양양하게 버티고 있는 또 다른 벽을

마주할 때의 헛헛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결승점까지만 가면 나아질거라고

생각하고 간신히 달려왔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허덕이면서도

두 다리를 질질 끌며 목표점을 향했다.


삶은 번번히 나를 비웃었다.

여기가 끝인줄 알았지?

자, 이제부터 시작이야!


모든 일이 그러했다.

끝과 시작이 맞물려 있었다.


결혼은 연애의 끝인 동시에 새로운 세계의 시작이었다.

시월드는 내 상상을 뛰어넘었고, 

나는 전혀 다른 세상에 적응해내야 했다.


엄청난 경쟁을 뚫고 임용고시에 패스했을 땐,

지긋지긋한 경쟁과 시험의 끝이라고 기뻐했지만,

경쟁에 학생들을 몰아넣고 시험을 출제하며

존재를 숫자로 평가하는

공장 노동자로서의 삶의 시작이었다.


지옥같은 공황발작이 나를 지배했을 땐,

어째서 이렇게까지 극단으로 치닫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

불안한 공포 속에 마지막을 선택하고 싶었다.


그런데,

공황장애는 이전 세계의 끝인 동시에,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게한 시작이 되었다.


나에게 더 나은 삶의 시작일거라 기대했던 것들은

생각지도 못한 시련을 가져다 주었고,

존재를 이어갈 이유를 찾아 헤매게 한 질병은

오히려 나의 편협한 세계를 벗어나게 해준 시작이 되었다.


마터피스타로 검8


최근, 타로를 배우면서 알게 되었다.

벽은 뚫어버리는 게 아니라

뛰어 넘는 것이었다.


계단처럼 차근차근 밟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바짝 움츠린 후 도약하는 개구리처럼

자기 세계의 울타리를 뛰어넘어야 한다.


내 세계는 그러했다.


단계를 밟아가는 고운 길이 아니라

아무도 가지 않은 거친 벌판에

새로운 길을 내는 삶이었다.


나는 그렇게 담금질 되는 삶을

더이상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모든 순간의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얽힌 실타래를 더이상 풀지 않기로 했다.

가위로 싹둑 잘라버리기로 결정했다.



의미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새로이 창조하는 것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당연히 얽힌 실타래는 풀어서 써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끊어내버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조차 못했다.
기존의 질서에 단 한 번 의문조차 없었던 삶이었다.

두번 째 삶에는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의미를 부여하면 되는 것이다.




행복한 삶의 3가지 유형


1. 즐거운 삶(Pleasant Life)

본능과 욕구에 충실한 삶으로, 즐거움을 통해 기쁨을 누리고자 한다.


2. 좋은 삶(Good Life)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하는 삶이다.

자신의 강점과 미덕을 바탕으로 현재의 욕구만을 충족하는 걸 넘어

장기적인 미래 목표에 집중함으로써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 노력한다.


3. 의미 있는 삶(Meaningful Life)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영향력을 인지하고 의미를 찾는 삶이다.

지향하는 가치와 목표가 일관되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 행동한다.

개인을 넘어 주변 사람, 지역 사회 그리고 미래 세대와 함께

인생의 가치를 나눈다.

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의 삶도 변화시킬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진 삶이다.


<긍정 심리학>, 마틴 셀리그만, 행복의 3가지 길





과거의 나는 의미 있는 삶을 원했다. 이 삶은 당장은 아니지만 엄청난 보람이라는 큰 선물을 기대할 수 있다. 반면에 희생과 내면의 그림자를 품고 갈 수 있을만큼 단단한 사람이어야 한다. 부끄럽게도 자만했었다. 나의 그릇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몰입과 성장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삶도 매력적이다. 그러나 미래를 위해 현재의 욕구를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하는 삶이다. 자아 실현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겠지만, 더이상 행복을 유보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저, 지금 이 순간 즐거운 것이다! 즐거운 삶은 굉장히 단순하다. 순간의 만족에 큰 의미를 두기 때문에 소소한 행복의 무한 반복을 위한 선택을 하면 된다. 아직 오지 않은 먼 미래를 미리 생각하고 불안해 할 필요가 없다. 자칫 쾌락의 쳇바퀴에 빠지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지금 이 순간이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때문에 모든 순간이 즐거운 삶을 살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즐거울테니까)


사람에게 가장 큰 공포는 예측할 수 없음이다. 예측할 수 없기에 통제능력을 상실하고 머릿속으로 고민하다가 실천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곤 한다. 혹시 모를 손실을 막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기에 머릿속으로 계속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죽도 밥도 짓지 못하게 된다. 모든 것은 실행했을 때에 비로소 그 결과를 알 수 있다. 즉 행복도 불행도 경험을 통해 오감으로 느끼는 것이다. 머릿속으로 상상한 미래의 행복이 아니라 지금 이 곳에 있는 나의 몸과 마음이 동시에 기쁜 만족감에 취할 수 있기를 원한다. 


대학생이 되면, 취업을 하면,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으면... 생의 어떤 목표를 이루었을 때를 상상하며, 행복을 꿈꾸는 세계는 점프하여 뛰어넘어보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충분히 자고, 먹고, 즐기는 본능적 욕구에 귀를 기울이고 충실한 것이다. 인간이 생각보다 동물적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기 전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진정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게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내려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