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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 진 Jul 03. 2021

때론, 분노에너지도 도움이 됩니다.

분노에너지를 긍정에너지로 바꿀 수 있을까?

요즘 가장 가까운 가족과 갈등을 겪고 있다.

첫 만남부터 현재까지 함께한 시간 20년,

나는 정말 뜨겁게 그를 사랑했다. 

이 사실만큼은 언제나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사랑했다라는 과거형이지만... 

사랑이 늘 현재형 일 수는 없다는 것을 알만큼 어른이 되었다.

분명 20년 전에 우리는 삶에 대한 태도와 방향이 닮아있었다.

강산이 두 번 변하는 사이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그는 안정을 추구하고 나는 변화를 추구한다. 

나는 성장하고 싶고 새롭게 접한 세계에서 할 수 있는 한 

마음껏나를 펼쳐내고 싶다. 

그는 나의 변화에 굉장히 당황하는 것을 넘어서서 

이제는 화를 내고 있다.

우리는 갈등의 꼭지점을 지나고 있는 중이다. 


"문화지체...내가 그런 것 같아. 

너가 변하는 속도가 너무 빠르니까 

나는 따라갈 수도 없고, 많이 힘들어."


"우리는 지금 전혀 다른 삶의 가치를 가지고 있어. 

우리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당신과 나, 둘다 불안하고 힘들고 

그 감정과 집안의 분위기가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것이, 슬퍼."


"나를 존중해 주면 좋겠어. 

내가 원하는 것을 이해하려고 하고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좋겠어."


"너는 나를 존중해주냐? 

나도 존중받는 느낌 못받아!"


좋게 시작한 대화도 늘 쳇바퀴를 돌며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다'로 끝을 맺는다.


극심한 갈등의 끝에 서로에게 해서는 안되는 말까지 쏟아내었다. 

나도 놀라고 그도 놀랐다. 우리는 큰 상처를 남긴 채 문제를 회피했다.

그는 3일간 집을 나갔고, 나는 오히려 편했다. 


밥 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해주는 살림에서

한 명의 무게만큼 일이 줄어들었다. 

그 시간이 힘들지 않았냐고? 

힘들고 신경쓰였으나, 몸은 편했다. 

그리고 이러한 생활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가정이 파탄난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경험해보니 그냥 지나가는 헤프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해보니 알게 되었다. 별일이 아니다.)


내가 스스로 규정한 것 중 하나는,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가족은

한 집에서 운명공동체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특별한 사정에 서로 마음이 맞지 않는 

상황을 포함시키질 못했다. 

이제는 별거든 이혼이든 각 존재자로서의

더 나은 삶은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선택지 중 좀 더 행복하고 싶어서

하나의 선택을 한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늘 잔잔할 순 없지 않은가? 

큰 풍랑이 휘몰아친 후 신중한 고민 끝에 한 선택이라면, 

그 선택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 

설령 그것이 가족의 해체라 하더라도.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찍으면

진짜 남이 되는 사이, 그게 부부이다.)


그와의 갈등이 있은 후 약 열흘이 지났다. 

나는 상처에 아파했고, 

나의 자유를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태어났기 때문에 살았던 삶이 첫 번째 삶이라면,

공황장애 이후 자살충동 속에서

스스로 선택한 두 번째 삶을 나는 즐기기로 다짐했었다. 


그렇게 어렵게 선택한 내 삶을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는 통제권이 있기 위해서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러자 무엇보다 경제적 자립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기본적인 생계유지 이외에도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이 많다는 것은 

선택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선택지가 적은 삶보다 다양한 방향 중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때 만족도가 더 높다.


뻔하면서 당연한 결론에 이르자 

나는 남편의 가출(?)에 대한 분노에너지를 

나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노력에너지로 바꿔쓸 수 있었다.


사실 나는 '돈'을 좋아하면서도 

다른 말을 했었다는 걸 알았다.


내가 가르치는 교과의 일부내용에는 

현대사회의 문제로 '가치전도현상'과 '물질만능주의'를 꼽는다. 

이것은 '생명경시풍조'와 연결되어있고 

자연과 동물에 대한 시각과도 맞닿아있다.


 이 도덕교과서의 내용이 

내 삶에서 내가 찾은 정답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돈이 없다면 물질만능주의에 대해 

생각하기 조차 힘들다는 것을 안다. 

절대적 빈곤은 사람을 얼마든지 악하게 만들 수 있다. 


김승호회장님의 <돈의 속성>을 읽으면서 

돈에 대한 개념이 조금 바뀌었었고 

지금은 돈을 신봉하지는 않지만 돈을 존중하기로 했다. 

(돈이면 다된다는 아니라는 말이다)

돈을 귀하게 대하고 적절하게 사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경제적자립을 위한 공부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결론은 무엇이냐고? 

그와 나는 아직 냉전 중이다. 




나의 변화에 가장 큰 계기가 된 것은 질병이었고, 

스스로 규정했던 수많은 규칙들을 깨야만 살 수 있었다.


지난 주, 몇 달 만에 발작을 경험하며 

나의 트라우마가 '학교'라는 공간과 조직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

벽을 마주할 때 공황발작이 찾아 온다는 것을 알았다.


첫 발작이 학교현장에서 교권침해를 당하고 

이에 대한 교권보호위원회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트라우마의 원인을 '학교'로 한정시키고 있었다. 


나는 발병이후 근무했던 학교가 있는 동네조차도 가질 못했다. 


그리고 어제 그 동네에 갔다. 

(주치의선생님이 내주신 과제를 수행했다.

참 고무적인 일이다.)


경제적 자립을 위해 제일 먼저 내 소득을 알고 싶었고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을 떼러 갔다.

(홈택스 조회가 안된건 우연이었을까...?)


물론, 학교 건물 안으로는 들어가질 못했다. 

행정실 주무관님의 배려로 

주차장에서 서류를 받고 나의 소득을 확인했다.

(자신의 소득을 정확히 모를 정도로 

나는 경제적 부분에 무관심했다.) 


남편과의 갈등, 경제적 자립에 대한 욕구, 그리고 트라우마 공간의

(사건발생 학교) 방문이 일주일 안에 이루어졌다. 


분노로 인해 지금 나에게 필요한 우선순위와 간절함이

트라우마와 대면할 용기가 되어준것이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부정적에너지로 생각했던 분노에너지 덕분에

트라우마 공간을 방문한 것이다!!!

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동일한 에너지라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고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갈등을 통해

내가 경험주의자라는 것이 다시금 상기된다.


이러한 갈등도 트라우마 장소의 방문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나치게 솔직한 글,

그러나 지금 내 상황에 대한 날 것의 이야기...

(남편이 안읽기를 바라며)

시간이 지나고 이 글을 다시 꺼내볼 때, 

나는 삭제하고 싶을까, 

이 과정을 웃으며 기억하게 될까?

아니면, 그리운 시간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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