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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 진 Dec 03. 2021

스트레스성 공황장애

치유의 글쓰기 1.


2019년 뜻하지 않는 사고로 공황장애를 앓게 된 지, 벌써 2년 반이 흘러가고 있어요. '마흔앓이'라는 말로 불리는 40대의 언저리, 저는 사십춘기보다 질병이 먼저 찾아왔어요. 그것도 단 한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형태로 제 일상을 지배했습니다. 생을 저버리고 싶을만큼 큰 좌절의 시간이 한번쯤 찾아올 수 있지요. 단지 그게 알 수 없는 시간에 예측하지 못한 사건으로 찾아오기에 우리는 미리 백신을 맞을 수 조차 없어요. 



저에게 찾아온 교권침해 사고도 마찬가지였어요. 저를 위협한 학생보다 동료교사들의 "용서하고 넘어가라."는 말한마디 한마디와 태도가 저를 무너지게 했습니다. 교권보호위원회를 원한다는 피해자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로 흩어져버렸으니까요. 믿었던 동료들의 태도는 그 간의 정때문에 지독히도 아팠고, 사건 발생 일주일 후 학교현장에서 공황발작이 일어나면서 저의 삶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일은 내가 속해 있는 조직(가정, 직장, 친구) 내에서 일어날 확률이 높아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처럼, 마음을 내어 준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는 무심하게 흘려보내기가 무척 힘들어요.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잘 알지 못하면서 내뱉는 말과는 완전히 다르지요. 나를 아니까, 공감해주기를 기대했지만, 상대의 냉정한 태도는 배신처럼 큰 아픔으로 가슴에 꽂힙니다. 




예민해서라구요?

아니에요. 사람마다 급소가 다른데, 급소가 찔린 것 뿐이에요. 누군가의 아픈이야기를, 사람들은 너무 쉽게 뱉어내더군요. 적어도 제가 겪은 사건이 술안주로 씹혀서 사라지는 헤프닝이 되지않기를 바랬어요. 공감받지 못해서 쓰러진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가 위로받기를 기도했어요. 



그리고...

저는 발작이 일어나기 전에 불면증, 악몽, 가슴통증, 하혈 등 다양한 신체 증상이 있었어요. 몸이 저에게 계속 신호를 보냈어요. 하지만 저는 이 신호를 무시했어요.




책임감


담임을 맡고 있기 때문에, 나에게 맡겨진 업무가 많기 때문에 저에게 집중하지 못했어요. 그 당시 상황과 사람들보다 가장 슬픈 일은 제가 스스로를 돌보지 못했다는 사실이에요. 저는 저보다 저에게 맡겨진 역할들에 더 집중했습니다. 어리석었던 저를 직면하고 인정하는 일이, 그 누구를 탓하기 전에 스스로를 제대로 사랑해주지 않은 저를 알아차려야 했어요. 


성실, 근면, 책임... 얼마나 중요하게 배웠던 가치들인가요...?

아무리 중요한 가치더라도 나를 놓치면서까지 지켜야하는 것일까? 어째서 내 삶의 중심에 '나'를 두지 못했던 것일까?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는가? 아니면 성공에 대한 욕심이 나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던 걸까? 어쩌면 '좋은 교사'라는 평을 듣고 싶어서 하루 하루가 무너져내리는 줄 알면서도 일을 했던 것은 아닐지, 심연으로 내려가 제 안의 욕망을 마주하기도 했습니다.








설리의 죽음 소식을 듣고, 베란다로 나가 아파트 바닥을 내려다 본 순간, 극심한 공황발작이 찾아왔어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과 달리 몸은 생존 본능, 삶을 향한 강한 의지를 저에게 발작이라는 형태로 신호를 보냈습니다.


그제서야 스스로에게 몰입하고 대면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간 다음에야 다시 위로 올라오고 싶은 강한 욕망과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이대로는 살 수 없었기에 변화를 원하게 되었고 나를 이 바닥에서 끌어내 줄 곳으로 찾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나를 놓친 채 살아가던 사람의 이야기, 스트레스성 공황장애를 앓게 된 사람의 치유의 글씨기에서부터,

거기에서부터 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스스로를 치유하는 힘을 안내합니다, 정윤 진 작가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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